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다양한 만남을 경험합니다. 한 권의 좋은 책을 만남으로 삶의 전환점을 맞는가 하면, 좋은 스승을 만나 인생의 향방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수많은 만남 중에서 가장 특별하고도 소중한 만남을 꼽으라면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일 것입니다.
요한복음 9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길을 가시다가 날 때부터 소경 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제자들은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이까, 자기오니이까, 그 부모오니이까?”라고 여쭙지요. 예수님께서는 누구의 죄로 인함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함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른 뒤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명하십니다. 그가 순종하니 눈이 밝아져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가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순종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진흙을 눈에 바른 후 물로 씻는다고 보지 못하던 사람이 보게 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더구나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그런 처방을 받는다면 자신을 놀린다고 화를 낼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소경 되었던 사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실로암 물가로 가서 눈을 씻었습니다. 이렇게 순종했을 때 날 때부터 보지 못했던 눈이 밝아졌지요.
여기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혹여 하나님 말씀이 내 상식과 경험에 맞지 않다 해도 소경과 같이 겸손한 마음으로 믿고 순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 은혜가 임하며 소경이 눈을 뜬 것처럼 놀라운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둘째, 진리를 분별할 수 있는 영적인 눈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이 그에게 어떻게 보게 되었느냐고 물을 때에 “그 사람이 진흙을 내 눈에 바르매 내가 씻고 보나이다.”라고 담대히 답변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이를 믿지 못하고 어찌하든 트집을 잡고자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고 다시 묻지요. 그때에도 그는 굴하지 않고 “선지자니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유대인들이 다시 그를 불러 “너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우리는 저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하며 어리석은 말을 합니다. 하지만 소경 되었던 사람은 그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히 진실을 말하였습니다(요 9:31-33).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틀과 악함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보아도 믿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정죄했습니다. 그러나 소경 되었던 사람은 선한 양심 가운데 하나님께서 죄인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는 진리를 알았습니다. 눈을 뜨게 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임을 깨우친 것이지요.
셋째, 은혜를 받은 후 새로운 삶을 결단했기 때문입니다.
“치료해 주시면 오직 주를 위해 살겠습니다.”라고 기도하지만 정작 건강을 회복하고 나면 은혜를 저버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 소경은 예수님께서 “네가 인자를 믿느냐” 물으시며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고 깨우쳐 주시자 “주여 내가 믿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이는 단순히 믿는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그분의 뜻을 좇아 살겠다는 신앙의 고백이지요.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려면 소경 되었던 사람처럼 선한 마음으로 하나님 역사를 인정하며 사모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응답받을 수 있는 그릇을 얼마나 준비했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행한 대로 갚아 주시며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함으로 권능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특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리심을 보이시리니”(시편 18:25-26)
2024-01-26 | 기독선교신문 [등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