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나 단체의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사람들을 포용해야 합니다. 머리 된 사람이 어떤 일을 추진할 때, 그 조직의 모든 사람이 한마음으로 따라 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있지요. 머리 된 사람이 자신의 의견에 이의를 제기하거나 마음을 함께 모아 주지 않는다 해서 그 사람을 미워하며 점차 소외시켜 버린다면 어떨까요? 결국 곁에 남는 사람은 듣기 좋은 말로 아부하는 사람뿐일 것입니다.
마음의 그릇이 큰 사람은 반대하는 사람까지도 포용하고 품어서 뜻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갑니다.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한 좋은 본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고린도후서 12:20이나, 갈라디아서 5:20에는 “당 짓는 것”에 대해 엄히 경계하는 말씀들이 나옵니다. 주 안에서는 ‘네 파, 내 파’ 하며 파를 나누거나 당을 짓는 것이 결코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초대교회 당시, 고린도 교회 성도들 안에는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며 분쟁이 있었습니다. 그러자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고전 1:13) 하며 특히 자기를 따른다 하는 사람들에게 엄히 경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당대 최고의 권능의 사역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워진 기독교를 정립시키는 데 가장 커다란 공을 세운 인물입니다. 신약 성경 27권 중 14권을 저술했지요. 만약 이러한 사도 바울이 영적인 권위나 영향력을 앞세워 자신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지적하고 내쳐 버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사도 바울은 넓은 마음으로 포용하되, 오직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 되어야 할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기독교를 확립하고 오늘날 전 세계로 기독교가 퍼져 나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자기 생각대로 따라 주지 않을 때 미워하고 멀리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은, 만약 누군가 자신을 지적하면 더욱 그를 미워하고 외면하게 됩니다. 누군가 옳은 말을 해 주고 진리로 충고를 해 주어도, 심지어 윗분이 그러신다 해도 그 말을 듣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미워하기까지 하지요.
사람들 중에는 “제가 고칠 점이 있으면 지적해 주십시오. 책망해 주십시오.” 하며 청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으로 지적해 주면 그 자리에서는 잘 받는 것 같아 보여도 막상 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 상황에서는 이전에 받았던 지적이나 책망에 대한 서운함이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봅니다.
이런 비진리의 마음을 뽑아내고 설령 나와 반대 의견을 내고 마음을 함께해 주지 않는 사람이라도 어찌하든 품어서 하나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 나를 찌르는 말을 하는 사람도 이해하고 넉넉하게 품어 주며, 끝까지 기대하며 기다리며 참아 줄 수 있는 솜털 같은 마음을 소유하시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의견에 동조해 주고 생각대로 좇아 주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 사람만 감싸고 편들어 주며 가까이해서도 안되겠지요. 이 마음의 근본은 편애하는 마음이며 편벽된 마음입니다. 이러한 마음 역시 벗어 버리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상대를 소외시키거나 편애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고루 포용하는 깨끗하고 큰마음을 이룰 때 참된 지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마태복음 23:11)
2024-05-09 | 기독선교신문 [등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