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 마디가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라 하더라도 자신이 어떻게 말하고 행하느냐에 따라 상대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 28절을 보면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했고, 베드로전서 3장 1절에는 “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남편으로서 아내를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에는 순종하지 않으면서 아내에게는 순복하라 하거나, 아내도 자신은 행치 않으면서 남편에게 바라기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 화평이 깨어지고 화목할 수 없게 되지요.
남편이든 아내든 먼저 자기를 낮추고 섬기는 사람이 된다면 이내 화목을 되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먼저 손을 내밀고 자신을 낮추는 것이 자존심이 상하는 일처럼 보이지만 도리어 자신을 큰 그릇으로 만들 수 있는 길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부부 싸움을 한 어느 노부부의 이야기입니다. 화가 난 할머니는 말을 안 하기 시작했습니다. 식사 때가 되자 할아버지에게 상은 차려 주지만 한쪽에 앉아 말없이 바느질만 하고 있었지요. 할아버지는 예전처럼 할머니와 정답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말없이 자기 할 일만 하는 것입니다.
할아버지는 불현듯 일어나서 옷장을 열고 무엇인가 열심히 찾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할머니가 못 본 척 했으나 할아버지가 점점 물건들을 꺼내놓으며 방안을 어지럽히자 결국 궁금증을 견디지 못하고 퉁명스럽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뭘 찾는데 그래요?” 그러자 할아버지가 빙그레 웃으며, “당신의 목소리를 찾았는데 이제야 찾았네.”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감정이란 조금만 자신을 낮추고, 더 상대를 배려해 주면 상하고 얽혔다 하더라도 쉽게 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지 않고 ‘나’라고 하는 자존심을 고집하기 때문에 자신을 낮추는 일이 힘들고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지요.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일이 오해를 낳고 점점 감정의 골이 깊어지기만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 보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진정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헛된 자존심을 버리고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자녀는 부모를, 부모는 자녀를 서로서로 섬겨줄 때 진정한 화목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2025-05-29 | 기독선교신문 [등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