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조지 왕은 갑작스런 선왕의 죽음으로 급히 왕위를 물려받았습니다. 그는 아무런 마음 준비 없이 왕의 자리에 앉아 막중한 책임감과 긴장 속에서 힘든 나날을 보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도자기 공장을 둘러보다가 두 개의 꽃병이 나란히 전시 되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두 개의 꽃병은 같은 모양이지만 그 색깔과 아름다움의 정도는 매우 달랐습니다.
하나는 생동감 넘치는 예술품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으나 또 다른 하나는 투박한 도자기에 불과했습니다. 두 개의 꽃병은 한 사람의 제작자가 같은 모양으로 만들었지만 하나는 아직 불에 구워지지 않은 상태였고 또 하나는 불에 구운 상태였던 것입니다. 불에 굽는 과정을 통해 빛깔과 윤기를 더한 것이지요.
인생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불같은 시련의 시기를 잘 견뎌낸 사람의 삶은 더욱 성숙하고 아름답지요. 조지 왕은 이를 통해 현재 자신의 어려움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성경을 보면 다윗은 이스라엘 왕으로 하나님께서 택하셨지만 왕위에 오르기 전 많은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시기 질투로 인해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니는 사울 왕을 피해 다녀야 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이런 혹독한 시련을 거치면서 다윗은 오히려 백성의 마음을 헤아리며 잘 다스릴 수 있는 그릇과 자질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훗날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 되었지요.
요셉 역시 시련을 겪으며 정금 같은 믿음을 소유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스라엘 조상인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소년 시절 자신이 매우 존귀케 되는 꿈을 꿉니다. 요셉은 그 꿈을 소중히 여겼고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 꿈이 곧바로 실현되지는 않았지요. 오히려 반대로 형들에게 버림받고 이방인에게 팔려 가장 비천한 노예의 신분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노예의 신분이 되었을 때에도 성실하여 집주인의 인정을 받지요. 요셉의 주인은 당시 강대국이던 애굽 시위 대장이었고, 요셉은 그 집의 제반 사항을 맡은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그에게 이런, 저런 어려운 일이 발생했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다 말씀하십니다(창세기 39:2-3).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불통해 보이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형통했다고 하실까요? 바로 이 모든 것이 요셉을 축복의 자리로 이끄시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고난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뜻하지 않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이지요. 비천한 노예에서 죄수라는, 더 낮은 자리에 처한 것이지요. 그래도 요셉은 낙심하지 않고 감옥에서조차 성실히 행하여 인정을 받아 다른 죄수들까지 관리하며 제반 사항을 처리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요셉이 이런 연단의 과정을 잘 밟아 나아가니 하나님께서는 왕이 꾼 꿈을 해석하도록 지혜를 주시고 나라를 위기에서 건질 수 있는 묘책까지 내도록 인도하시지요. 그리고 왕의 큰 신임과 인정을 받아 나이 서른에 일약 애굽 전역을 다스리는 총리에 오릅니다. 하나님께서 13년 전 요셉에게 주신 꿈이 마침내 현실로 이뤄진 것이지요.
뜨거운 불에 도자기가 들어가면 아름다운 예술품으로 나오듯이, 우리 삶 속의 불같은 시련을 하나님을 의지하여 잘 통과하는 이는 빛나는 인생으로 나아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는 복된 자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이사야 48:10)
2025-06-26 | 기독선교신문 [등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