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5과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리라

읽을말씀 : 마 13:49-50
외울말씀 : 마 13:49-50

어린아이가 태어나면 정상적으로 성장하여 어른이 되어야 사회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듯이 주 안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사함을 받고 의인이라 칭함을 받은 후에는 악을 버리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야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3:49-50을 통하여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말씀하시며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의인과 악인은 어떤 사람일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혹여 내가 의인인줄 알았는데 악인은 아닌가?' 점검하면서 영과 육을 구분하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이 되고자 힘써야 하겠습니다.
   그동안 의인이 되기 위해 열심히 달려온 분이나 스스로 의인이라 생각하는 분이라 할지라도 '내 속에도 이런 악이 있었구나!' 깨우치며 철저히 육을 발견하여 벗어 버리고 영으로 들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1. 결코 소인배의 행동을 하지 않는 의인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은 결코 소인배의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다윗 왕과 우리아의 경우를 살펴보지요. 어느 날 저녁, 다윗 왕은 왕궁 지붕 위를 거닐다가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가 목욕하는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다윗 왕이 그 여인의 아름다운 모습에 마음이 동하여 데려와 동침을 하였는데 공교롭게도 여인이 아이를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다윗 왕은 자신이 저지른 일이 드러날까봐 전쟁터에 나가 있는 우리아를 불러 집으로 돌아가 쉬었다가 전쟁터로 가라고 권합니다. 하지만 우리아는 전쟁터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니 혼자 집에 가서 편히 쉴 수 없다는 이유로 집으로 가지 않고 왕궁 문에서 왕의 신복들과 더불어 잠을 잤지요.
   다윗 왕은 자신의 계획이 실패하자, 이번에는 우리아 편으로 전쟁터에 있는 요압 장군에게 편지를 보내었지요. 우리아를 전선의 최전방에 앞세워 전사하도록 만들라는 것이었습니다. 다윗 왕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서 하나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실 만한 중심을 소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죄를 지으니 이를 감추기 위해 소인배의 모습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우리아는 왕을 섬기는 신하로서 도리를 다해 충성하고자 육적인 정과 욕심을 끊고 마음을 지킴으로써 대인의 모습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아가 다윗 왕보다 낫다는 것은 아닙니다. 한 분야에 있어 죄를 범하니 그 죄로 인해 다윗 왕이 소인배의 마음이 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죄가 없으면 대인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진리 안에서 그 뜻을 크게 이룰 수 있습니다. 진리로 비춰 보아 내 마음에 거리낄 것이 없으면, 즉 진리 가운데, 빛 가운데 살면 하나님 앞에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요일 3:21-22).
   결국 다윗 왕은 자신의 죄에 대한 보응으로 엄청난 연단을 받게 됩니다. 밧세바를 통해 얻은 아들이 죽고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 왕궁을 떠나 쫓겨다니며 수많은 백성들이 전쟁으로 죽어 가는 등 철저한 연단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인정하시는 큰사람일수록 티끌 같은 죄라도 결단코 용납하지 않으시고 연단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큰사람에게는 티끌 같은 죄라도 무서운 것이요, 아주 작은 허물이라도 괴로운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2. 소인배의 여러 가지 유형
   
   열왕기상 21장을 보면 무고한 백성에 대해 거짓 증언을 하는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아합 왕이 나봇의 포도원을 사려고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은 악한 궤계를 꾸몄지요. 바로 비류들을 거짓 증인으로 세워 나봇에게 누명을 씌운 다음 돌에 쳐 죽이게 하였던 것입니다.
   비류란 악한 일을 일삼는 무뢰한이나 깡패와 같은 사람을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돈을 받고 거짓 증인이 되어 주기도 하고 자기를 드러내고자 높은 직책의 사람 등과 가까이 하려고 힘쓰며 그들의 모임에 함께하여 은근히 자기를 과시하려는 모습들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예로, 르호보암 왕의 친구들을 들 수 있습니다. 왕을 등에 업고 모든 것을 함께 누리며 즐거움을 취하고자 했던 이들은 백성들이 르호보암 왕에게 나아와 과중한 세금과 노역을 경감시켜 주기를 청할 때에 '너희의 멍에를 더욱 무겁게 하겠다'라는 악한 말로 대응하도록 사주합니다(왕상 12:10-11). 그 결과 백성들의 마음이 왕에게서 떠나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갈라지는 비극을 낳고 말았지요.
   반면에 대인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모든 크고 작은 일에 공직하고 정당하며 자신의 자리를 변함없이 지켜 나가는 것을 볼 수 있고, 또한 자신의 행한 일에 대해 돌아오는 분깃대로 복을 누리며 그 속에서 의의 행동을 취해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교회 안에서나 일터, 사업터 등 각종 조직 안에서 각각 자기의 본분을 알고 맡겨진 일에 충실해야 합니다. 즉 나와 가까운 사람이 권세나 명예가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의 덕을 입으려 한다거나 더불어 높임을 받으려 해서는 결코 아니되는 것입니다. 세상에도 주인의 명예나 권세를 등에 업고 큰소리치는 사람들이 있지요. 이러한 예는 성경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바로 사라의 여종 하갈을 들 수 있습니다. 한낱 몸종에 지나지 않았던 하갈은 주인 아브라함의 아이를 잉태함으로 인해 스스로 마음이 높아져 여주인 사라를 멸시하기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교만으로 인해 자신의 위치를 지켜 행하지 못함으로 결국은 자신이 누릴 수 있는 복조차 누리지 못한 채 아들과 함께 쫓겨나고 말았지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결코 이러한 악을 행해서는 아니 되며, 무엇보다 먼저 마음의 변화를 입음으로써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질서와 순리를 좇아 모든 일을 정당하게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면 큰 인물들의 수하에서 아랫 사람들 간에 "누구 상전이 높으냐" 하며 다투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이는 윗사람에게 심히 누를 끼치는 행동으로 대인의 마음이 아닌 소인의 모습이지요.
   그러므로 누구든지 윗사람을 섬길 때는 자기 위치 속에서 정도를 좇아 행해야 하며, 소인의 마음으로 유명 인사나 권세가들 사이를 오가면서 함께 높은 체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아무리 훌륭한 사람들이나 권세가 사이에서 그들의 품위를 닮고 교양을 배워 자신을 덧입힌다 해도 그 마음이 바로 서 있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지요.
   신앙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영으로 들어가지 않은 사람이 영적인 사람을 섬기다 보면 말하고 듣고 행하는 모든 것이 자연히 그 사람의 행함을 닮게 됩니다. 그러나 외모와 행함을 닮아 겉으로는 온전한 것 같아도 그 중심이 변화되지 않으면 마음속에 여전히 악의 모양이 남아 있으니, 이와 같은 사람을 의인 중에 악인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무리 지식이 있고 의인의 행동을 할지라도 그 마음에 의를 이루지 않으면 참된 의인이라 할 수 없으니 항상 진리의 말씀으로 자신을 비추어 보아 자신에게 소인의 모습이 있다면 신속히 그 마음을 변화시켜 나가야 하겠습니다.
   
   3. 의인 중에 악인이라는 증거는 소인배의 행동
   
   그러면 의인 중에 악인이라는 것은 무엇으로 분별할 수 있습니까? 일반적으로 소인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더욱 대인답게 보이려고 행동하기 때문에 혹 눈에 보기에는 모양새가 좋고 큰사람같이 여겨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이 아무리 감추려 해도 때에 따라 악함이 드러나게 됨으로 그 결과가 소인배임을 증거해 준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만일 누가 자기에게 해를 끼치거나 감정을 건드리면 용납하지 아니하고 바로 진노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기 마음 또는 유익에 맞지 않거나 자기에게 불순종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 근본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거룩한 의인인 체, 온유하고 교양 있는 체했는데 극한 상황이 되면 혈기를 내거나 악을 발함으로 소인배의 그릇됨을 나타내는 것이지요.
   성경상에서도 이런 예를 찾아볼 수 있는데 바로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입니다. 그는 왕과 나라를 위해 생명을 걸고 싸워 전쟁을 승리로 이끈 다윗이 백성들의 칭송을 받자 이를 시기하고 미워하여 죽이려고 쫓아다닙니다. 근본 마음이 소인이었으므로 사울 왕은 계속해서 악을 행하다 결국 하나님께 버림받고 말지요.
   이처럼 악한 사람은 상대에 대해 미움을 갖게 되면 마음에 품고 있다가 계획을 세워 상대를 곤경에 빠뜨리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모습을 통해 스스로 악한 자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비록 의인인 것처럼 꾸미고 행할지라도 실상은 의인이 아닐 경우, 말씀으로 조명해 보면 낱낱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 외에 의인 중에 악인이란 어떤 경우를 두고 말하는 것일까요? 여기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경우의 사람은 말이나 행동이나 사람을 대하는 모습을 제삼자가 볼 때 겉모양새는 참으로 좋은 대인의 모습이요, 훌륭한 귀인의 상으로 보여지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대인들과 함께 오갈 수 있는 관계의 중간 위치에 자리잡고 있으며 그 상황 속에서 또 다른 대인들을 만나기도 하고, 고위급의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친분을 유지하면서 매개체의 역할을 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문제는 대인이나 귀인들과 함께 있으니 본인도 심중에 그들과 같은 대우를 받기 원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 주어진 위치에서 의인과 만나고 함께하는 가운데 자신이 참으로 옳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 자기 계획 속에서 일들을 이루어 내고 그것에 대해 칭찬 듣기를 원하며, 자기의 유익을 좇아 무엇인가 바라는 마음을 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의인 같지만 진정한 의인이 되지 못하며, 삯을 바라는 사람으로 끝나버리는 것입니다. 삯을 바라다가 저주를 받아 문둥병이 발하였던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바로 그런 예로서, 이런 소인배의 마음을 가진 사람은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은혜를 저버리기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일일이 의인의 모습과 악인의 모습을 설명할 수 없으므로 우리가 분별하기 어려운 몇 가지 예를 들었으니 잘 양식삼고 불같은 기도와 금식을 통해, 또한 성령의 도우심과 위로부터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힘입어 온전한 의인으로 변화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마태복음 7:16-18에 말씀한 대로 아무리 겉으로는 의로워 보이고 거룩해 보일지라도 그 열매가 악하고 추하다면 의인의 옷을 입은 악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소인배의 감정을 벗어 내고 큰마음과 의롭고 진실한 모습으로 참된 의인에 대열에 들어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5-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