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12:48-50을 보면, 많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계신 예수님께 누군가 나아와 예수님의 육적인 가족, 곧 어머니와 동생들이 찾아왔다고 전해 드렸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누가 내 모친이며 내 동생들이냐 …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말씀하셨지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혈연으로 맺어진 육의 형제자매와 부모가 있지만 이는 하나님의 영적인 세계와는 무관한 것으로 이 땅의 육적인 세계에서만 존재하는 관계입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세계에서의 가족 관계는 어떻게 될까요?
1. 참되고 영원한 영적인 가족
인류의 시조인 아담이 사단의 사주를 받은 뱀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 먹는 불순종의 죄를 지음으로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후로 인류는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지게 되었으며 원수 마귀의 자녀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심으로 온 인류의 죄를 대속케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며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형성된 영적인 가족 관계는 이 땅에서의 죽음과 함께 끝나는 육적인 가족 관계와는 달리 영원한 천국에서도 계속되지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에도 처음에는 이러한 것을 마음에 깨닫지 못하고 육의 가족들을 찾게 되지만 믿음이 성장하고 영안이 열리게 되면 진정한 가족이 누구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한 형제자매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 서로 귀히 여기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믿지 않는 형제들을 외면하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에게도 복음을 전해 믿음 안에 들어오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물론 믿음 안에 들어왔다고 해서 다 된 것이 아니라 진정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 변화되어야 영적인 형제자매가 되는 것이요, 영적인 가족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육적인 가족 역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그분의 뜻대로 행할 때 비로소 진정한 영적인 가족이 된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우쳐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2. 영적인 가족이 되려면
1) 영적인 것을 우선으로 여겨야 합니다
영적인 가족을 이루기 위해 중요한 것은 영적인 것을 우선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한 피를 나눈 내 가족이기 때문에 사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누가 더 영적이냐에 따라 그 사람이 더 사랑스러운 것이요 사람들에게 그를 본받도록 권해 주어야 하는 것이지요.
또한 다른 사람이 어떤 잘못을 범했을 때에는 호되게 책망하고 내 가족은 감싸 주는 편협한 행함이 아니라 항상 같은 마음으로 대할 줄 알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일에 관해서든 내 가족이기 때문에 더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라 공명정대하게 행하며 하나님 앞에 어떤 것이 더 옳은지 살펴서 이루어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육에서 떠난 마음이요, 영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그래서 일꾼을 쓰고자 할 때에도 내 가족이기 때문에 쓰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진정 의로운 마음입니다.
2) 마음에서 육적인 감정을 버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마 12:50) 말씀하신 것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면서 사사로운 감정을 철저히 깨뜨려 버려야 합니다.
마태복음 9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세리의 집에서 식사하시는 것을 보고 바리새인들이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하고 따져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하시며 그들의 감정을 건드리지 않으시고 오직 화평 가운데 이루어가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말씀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외식적인 율법이 아니요, 바로 율법의 근본되는 사랑이라는 사실을 위엄있게 가르쳐 주셨던 것입니다.
그 후 예수님께서는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면서 자칭 의인이라 하나 마음속에 악을 감추고 있는 위선적인 그들의 모습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부드럽게 넘어가는 데서 그치지 않고 날선 검과 같은 말씀으로 그들의 심령, 관절, 골수를 찔러 쪼개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통해서도 우리는 모든 사람을 포용하시려는 주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는 어떠했습니까? 그는 3년간이나 예수님과 함께 다니며 같이 생활했던 사람이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가 배신하게 될 줄을 미리 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 베드로가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고백하자 예수님께서는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답변하셨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했지만 결국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3년간 동고동락한 수제자라 할지라도 생명의 위협 앞에서는 자기를 배신하게 될 줄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장점을 보시고 후일에 성령을 받아 변화될 모습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시며 용납하셨고, 또한 가르치셔서 후에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해산의 수고를 하셨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나중에서야 이러한 예수님의 마음을 깨닫고서 얼마나 감격했겠습니까? 이러한 사랑 앞에 생명을 바치는 충성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며, 결국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못박혀 순교하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감정에 치우치는 것이 아니라 장점만 보고 인내하며 오래 참음으로 이루어 가는 것이 큰그릇됨이요, 그 안에 많은 사람들이 깃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마음에 비진리의 감정이 없으니 설령 멸시 천대와 모욕을 당하실지라도 아버지 앞에 받은 바 모든 사명을 변함없는 마음으로 감당하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사사로운 감정이 없는 마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마음이며, 이처럼 비진리의 감정을 버릴 때라야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영적인 형제자매요, 영적인 가족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켜 준행해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인 가족이 되기 위해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내 모친과 동생들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이 사람들이라"(눅 8:21)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섬기라 하셨으니 섬기는 사람이 되고, 낮아지라 하셨으니 낮아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원수를 사랑하라 하셨으니 진정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주는 사람이 복되다 하셨으니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할 때 진정한 형제자매요, 하나님의 참자녀이며 영적인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영적인 일꾼이요 큰그릇이 되는 것이지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지켜 행했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은 삼촌이지만 조카인 롯을 섬겨 주었고 땅을 선택할 때에도 오히려 양보하며 자신의 유익을 조금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유익을 좇아간 롯이 곤경에 처했을 때 구출해 주기도 했지요. 이런 큰그릇이었기에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주님을 만난 후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인도하였습니다. 결국 그는 주님을 닮은 사람이 되었고, 또한 자신을 위해 하나님께서 의의 면류관을 예비해 주셨노라고 당당하게 고백할 수 있을 만큼 영적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참된 자녀가 되기 위하여 영적인 것을 우선으로 여기며 마음에서 육적인 감정을 벗어 버리고 항상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함으로 영적인 일꾼으로서 넘치는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5-02-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