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7과 상대를 위해 살라

읽을말씀 : 마 5:39-41
외울말씀 : 마 5:39

사람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홀로 독단적인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가정이라는 작은 공동체 사회에서부터 시작하여 국가라는 큰 공동체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갑니다. 그런데 상대를 위해 희생하며 선을 행했던 사람은 참으로 형통하고 아름다운 삶을 영위하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칭송을 받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나 늙은 시어머니를 끝까지 봉양했던 룻, 그리고 자기 민족을 구한 에스더만 보아도 잘 알 수 있지요. 특히 아브라함은 모든 사람을 선대하며 오직 상대의 유익을 구해 나갔습니다. 윗사람이면서도 조카 롯에게 땅을 먼저 선택할 수 있도록 양보하였으며 롯이 포로로 잡혀 갔을 때에도 위험을 무릅쓰고 구해 주었지요.
   이같이 아브라함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는 선하고 의로운 삶을 살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경외하였기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고 하나님의 벗이라 칭하시며 범사에 축복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도 상대의 유익을 구하는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영위하며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상대를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느 날, 요셉은 자신의 약혼녀인 마리아가 잉태한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침하지도 않았는데 잉태를 하였으니 요셉의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습니까? 당시 율법에 의하면 간음한 여인은 돌로 쳐 죽이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이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했습니다. 이러한 행함을 볼 때 요셉의 마음이 얼마나 선했는지 잘 알 수 있지요.
   그러니 우리도 누군가의 허물이 발견된다면 다른 사람에게 알리려고 할 것이 아니라, 먼저 당사자를 찾아가서 사랑으로 권면해 주는 것이 옳은 일이라는 사실을 깨우쳐야 합니다. 상대를 판단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상대를 판단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을까요? 하나님만이 사람의 중심을 감찰하실 수 있고 사람은 상대의 마음 중심을 온전히 알 수 없기 때문이지요.
   열왕기하 4장에는 수넴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사 선지자 앞에 나아가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6절 이하를 보면 "여인이 대답하되 평안하다 하고 산에 이르러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그 발을 안은지라 게하시가 가까이 와서 저를 물리치고자 하매 하나님의 사람이 가로되 가만 두라 그 중심에 괴로움이 있다마는 여호와께서 내게 숨기시고 이르지 아니하셨도다" 했습니다. 아무리 영감이 밝은 엘리사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지 않으니 여인의 마음을 알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상대를 함부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요, 만일 자기 생각과 맞지 않는다 해서 남을 판단한다면 서로 화합을 이루지 못하기도 하고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며, 더 발전하면 정죄하기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어떤 경우에도 상대를 판단하지 말고 오직 사랑과 긍휼과 용서의 마음으로 대해야 합니다.
   지구상에는 수십 억의 사람이 살고 있지만, 얼굴 생김새뿐 아니라 마음과 생각이 다 다르며 손가락에 있는 지문까지도 각기 다릅니다. 이렇게 모두가 다른데 어찌 내 생각에 맞지 않는다고 상대를 판단하며 정죄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배우고 아는 것, 내 교양만이 가장 옳은 줄로 생각한다면 그것이 바로 교만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진리의 사람이 되면 모든 것을 너그럽게 포용하고 사랑과 덕으로 용서하고 이해해 줄 수 있기 때문에 결코 남을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습니다. 판단이 나오는 것은 그만큼 진리의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증거이지요. 만일 잘못 판단하면 불화를 가져오기도 하고 아무 잘못도 없는 주위 사람에게 큰 고통을 주기도 하기 때문에 설령 자신의 판단이 맞았다 할지라도 상대를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고보서 4:11을 통하여 판단 자체가 죄요, 판단하는 사람은 스스로 재판자가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결코 판단하는 죄를 범치 말아야 할 것입니다. 상대를 정죄하는 것도 마찬가지이지요.
   정죄란 어떤 것을 듣거나 보았을 때 자기 마음에 느껴지는 것을 배합하여 직접 알아보지도 않고 상대를 죄인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사실이 아닌 것을 판단하여 전하고, 또한 전달받은 것을 자기 느낌과 함께 눈덩이처럼 불려 가니 정죄당하는 사람은 얼마나 고통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가정이나 이웃, 친구 사이에도 서로 판단하고 정죄하며 수군수군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하나님 앞에 큰 죄악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주변에 남의 허물을 전하는 사람이 있다면 함께 말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를 깨우쳐 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 상대를 괴롭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 가운데에는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상대가 고통당하는 것은 생각지 아니하고 무리한 요청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더 여유가 있는데도 상대가 부유해 보이니 도리어 요청하는 경우도 있지요. 상대는 형편이 어려워도 내색하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가는데 이런 사람을 향해 도움을 청하는 것은 악한 모습이지요.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여 도움을 구하기도 합니다. "잠언 28:27에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 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많으리라 했으니 어려움 가운데 있는 자신을 도와 달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는 자신의 유익을 구할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오용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었으니 이중으로 죄를 짓는 것이지요.
   그러나 진정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의 유익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를 도울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행하는 사람에게는 자연히 많은 사람들이 깃들게 되며 오히려 상대편에서 무엇을 도와줄까 하고 도와주기를 자청하게 됩니다. 이렇게 진리대로 행하면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잠 11:25)는 말씀대로 모든 삶이 풍족해지고 윤택해지는 것입니다.
   
   3. 자신의 권세로 남을 희생시키거나 상대를 힘들게 해서는 안 됩니다
   
   상대를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지닌 직분자나 가정의 부모라 할지라도 자기가 속한 조직에서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라고 권세가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질서에 따라서 조직의 안정을 이루고 잘 다스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니 조직 안에서 법도와 질서를 좇되 항상 선 가운데 좇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임금인 사울 왕은 왕권을 잘못 사용하여 백성들을 심히 고통 속에 몰아넣고 나라가 위험에 처하게까지 했습니다. 그러니 머리된 사람은 분명한 질서를 좇아야 하며 월권을 하거나 권력을 남용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혹자는 '나는 왕이 아니고 조직의 머리된 사람도 아니니 상관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람마다 환경은 다를지라도 마음의 근본 비진리의 속성은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사울 왕과 같은 마음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 자체를 빼내야 하는 것이지요.
   세상 사람들 중에는 스스로 높아져서 자기 상사를 놓고 이런저런 허물을 들춰내며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들이 그런 위치에 서면 상대보다 더 잘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머리된 사람일수록 명예나 권세, 그리고 많은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그만큼 마음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사울도 임금이 되기 전에는 남 앞에 나서는 것조차 부끄러워하던 겸손한 사람이었지만 왕이 된 후에는 점점 교만해져 하나님께 불순종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울에게 아말렉을 치라 명하시며 모든 사람과 짐승을 진멸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전쟁에서 승리한 사울 왕은 '아말렉 왕을 사로잡아 오고 소와 양을 죽이지 않고 끌고 가는 것이 더 좋겠다' 하며 자기의 생각을 동원하여 자기 보기에 좋을 대로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사람 편에서 현명하고 좋아 보이는 생각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나면 엄연한 불순종이 됩니다. 계속하여 불순종을 더해 가던 사울은 결국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악신에 시달림을 받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본성 속의 비진리와 악의 모양까지 다 빼내 버리지 않으면 죄의 뿌리가 남아 있기 때문에 권세를 얻거나 명예나 부를 얻게 되면 얼마든지 변질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내 속에 있는 조그만 악의 뿌리라도 완전히 없애지 않으면 세월이 흐르면서, 또는 권세 있는 자리에 올랐을 때 교만해져 얼마든지 사울 왕과 같은 행동이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변질될 수 있는 육의 모습은 온전히 벗어 버려야 합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13:5에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한다고 했으니 영적인 사랑으로 나의 유익보다는 내 형제의 유익, 내 이웃의 유익을 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상대를 위해 살아가는 영적인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며 범사에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과 감사, 평안과 축복이 넘쳐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5-0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