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람의 영과 4차원 세계의 영
첫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영이 죽게 된 인류는 영원히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영이란 '죄성이 없는 깨끗한 상태의 마음'으로, 영이 죽었다는 것은 죄로 인해 영이 가리워져 활동하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지 못하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누구든지 죽었던 영이 살아날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하면 성령을 선물로 주시고 성령으로 영을 낳아 죽었던 영이 살아나게 하시며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와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며 악은 모양이라도 벗어 버린 상태가 되면 비로소 영의 사람이 되어 원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대로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는 권세와 축복을 받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영의 세계인 '4차원'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며, 하나님께서 영안(靈眼)을 열어 주시면 4차원의 세계도 볼 수 있게 되지요(행 7:56).
그런데 4차원인 영의 세계는 지식이나 지혜가 많다고 해서 이해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을 비롯한 선지자나 주님의 일꾼들은 한결같이 세상의 지식과 이론과 경험을 무(無)로 돌리고 영에 속한 지식들로만 채워 나갔던 것입니다(빌 3:8). 또한 영으로 들어가야 이해할 수 있는 세계이므로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 2:13) 말씀하고 있습니다.
2. 육의 차원과 영의 차원의 차이점
1) 육의 차원이 진화라면 영의 차원은 창조입니다
육의 세계는 썩고 변질되고 사라지는 속성이 있습니다. 이러한 육의 차원에 익숙해진 사람들 중에 어떤 이들은 '모든 생물이 이러한 변화 속에서 저절로 진화되어 나타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만일 모든 생물이 진화로 말미암았고, 모든 세계가 저절로 이루어진 우연의 산물이라면 어떻게 우주의 수많은 별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운행될 수 있겠고, 사시사철의 변화 등이 일정한 질서와 법칙에 따라 잘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우주만물에 질서와 조화가 있고 완벽한 법칙에 따라 운행되는 것을 볼 때 누군가의 설계에 의해 창조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육에 속해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육으로 추측하여 진화를 주장하게 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영의 세계의 신령한 일을 분별할 수 있으므로 창조의 섭리를 이해하고 믿을 수 있습니다.
2) 육의 차원은 죽는 것이지만 영의 차원은 산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몸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양식을 먹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이 되살아나면 영적인 생명을 유지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영적인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여기서 영의 양식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양식삼고 지켜 행해야 영이 살아갈 수 있고 영적인 성장을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육의 세계에서 썩어질 육의 양식을 먹고 살면 결국 썩어져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지만, 영의 양식인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을 먹으면 영원히 살게 되는 것입니다(요 6:27).
히브리서 4:12에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생명력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먹을 때 영생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육의 차원은 미움, 다툼, 시기, 질투 등 악의 차원이니 결국 죄의 삯인 사망의 길로 가지만, 영의 차원은 선과 사랑의 차원이요, 희생의 차원이요, 영생으로 가는 생명의 차원이기 때문에 영원히 죽음을 맛보지 아니하고 천국에서 영원히 살게 되는데 이것을 신령한 차원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3) 육의 차원은 무(無)의 차원이고 영의 차원은 유(有)의 차원입니다
육의 차원은 이미 존재하는 것으로부터 여러 가지 형태로 변형되는 것뿐이기에 무(無)의 차원이라 합니다. 그러나 영의 차원은 없는 것도 말씀으로 이루어지는 유(有)의 차원입니다. 히브리서 11:3에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말씀하신 대로 우리 눈에 보이는 삼라만상도 아무것도 없는 가운데 말씀으로 창조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육의 차원과 영의 차원은 근본부터 다르기 때문에 인간적인 생각을 동원하면 결코 영의 차원이 이해되지 않습니다. 육의 사람은 모든 것을 자신의 방법과 시각으로 보기 때문에 한 치 앞도 정확하게 내다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영의 차원에 들어와 영의 방법을 좇아 믿음으로 행하면 누구든지 복을 받을 수 있으며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경우, 나이가 많아 자녀를 낳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뭇별을 보이시며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말씀했을 때 중심에서 믿고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하나님을 온전히 믿어 드리니 결국 백 세에 독자 이삭을 얻었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으며,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았지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상태, 즉 무의 상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니 곧 유가 창조되는 놀라운 역사를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해야
이처럼 육은 우리 눈에 보여야만 믿는 것이지만 영은 보이지 않는 것까지도 믿을 수 있는 것이기에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해야 합니다. 그런데 간혹 육에 거함으로 영의 일을 이해하지 못하고 영의 사람을 오해하고 부딪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러한 현상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영의 사람과는 근본적으로 생각 자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육과 영에 있어서 제일 먼저 부딪힘이 되는 것은 바로 생각의 문제입니다. 즉 육의 사람은 육의 지식에서 비롯된 자기 생각을 동원하여 맞느냐, 틀리냐를 따지기 때문에 이것이 가장 큰 문제이지요.
또한 마음 자체가 육이기 때문에 영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영의 마음은 크고 아름다운 것이며 상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마음이지만, 육의 마음은 자기 것만 알고 상대를 위해 희생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영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의 사람은 어떤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스스로 죽어지고 낮아지며 섬기려 하지만, 육에 속한 사람은 자신이 욕심을 좇아 높아지려 하고 자신의 영광을 구하기 때문에 도무지 영의 사람들과 맞지 않으며 바로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육에 거하는 사람 편에서 마음이 악하므로 빛 앞에 자신의 악이 드러나는 것이며, 그 악으로 인해 본인 스스로 찔림이 되니 큰 소리가 나고 다툼과 싸움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따라서 육에 속한 이론과 생각을 깨뜨리고 신령한 차원에 들어가야 비로소 영에 속한 모든 것을 능히 마음으로 분별하고 깨우칠 수 있는 것입니다.
4. 신령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4차원의 축복
육을 버리고 상대를 섬기며 희생하는 삶을 살아가는 영의 단계에 들어오는 만큼 하나님의 세계가 이해되고 4차원의 축복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곧 진화가 아닌 창조의 역사를 믿을 수 있고, 죽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살게 되며, 무의 차원이 아니라 유의 차원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6:38에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말씀하신 대로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누릴 수 있는 축복의 차원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육에 있는 사람이 영으로 들어가려고 하면 처음에는 더 불행해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과정을 지나서 영으로 온전히 들어오기만 하면 범사에 형통하게 되니 영의 행복이 얼마나 온전하고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것인가를 알게 됩니다.
영에 거하는 사람은 능히 죽음도 이길 수 있고, 무슨 일을 만나든지 진정한 마음의 평안과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또한 영으로 들어가면 하나님의 인정과 사랑을 받게 될 뿐 아니라 그만큼 권세가 주어지고, 구하는 대로 받고, 찾는 대로 찾으며, 두드리는 대로 열리니 부족할 것이 없지요. 창조주 하나님께서 동행해 주시니 범사에 감사와 기쁨이 넘치며 행복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신령한 사람이 되려면 변치 않는 중심을 가지고 영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비록 이 땅에서는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부족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영생을 약속받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만큼 마음의 소원을 응답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은 바로 육에 속해 있기 때문이요, 여전히 비진리에 거하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자기의 고집과 생각이 남아 있으니 신령한 일을 분별하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신령한 복을 받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같은 상황에서도 사람마다 믿음과 신앙의 성장 속도가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각 사람의 마음 중심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마음 중심이 오직 영을 향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고 환경에 따라 좌우로 흔들리고 세상을 바라본다면 결코 신령한 차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그러니 한 번 목표를 정했으면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도전하되 변함없이 달려가야 하며 결코 늦추거나 머뭇거리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므로 우리가 깊은 수렁 가운데 빠진 듯한 어려운 일을 만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비진리의 생각과 지식을 철저히 깨뜨리고 전폭적으로 하나님만 의뢰하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더욱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마음의 소원까지도 응답하시며 만사형통의 축복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신속히 육을 버리고 영의 세계로 들어와 신령한 일을 분별할 수 있는 영의 사람이 되어 구하는 것마다 응답을 받으며 항상 승리하는 삶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5-02-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