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16과 다투지도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읽을말씀 : 마 12:19-20
외울말씀 : 마 12:19-20

이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누군가의 사랑을 받는 위치에 들어가기도 하고 어떤 조직 안에서 머리가 되거나 특별한 직분을 받기도 합니다. 이러한 경우 어떤 사람은 바른 마음으로 바르게 행하여 더욱 사랑을 받고 인정을 받는 반면, 어떤 사람은 잘못 처신하여 오히려 그와 반대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 다투거나 들레는 사람들의 결과
   
   본문을 보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예수님께서 얼마나 순전하신 분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와도 다투지 아니하시고 들레지도 아니하셨으며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을 정도로 조용히 행하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주변을 보면 사소한 일로 다투고 들레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요. 성경에도 다투거나 들레는 장면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중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여종이었던 하갈을 들 수 있지요(창 16장).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자손의 축복을 약속받은 후 10년이 되어도 자녀를 얻지 못하자 아내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자기 여종인 하갈을 통해 자녀를 얻을 것을 권유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내의 요청대로 하갈과 동침하여 아이를 갖게 되었는데 여기에서 문제가 생겼지요. 여종 하갈이 자신의 잉태 사실을 알고는 주인 사라를 멸시하였던 것입니다. 사랑받는 위치에 들어가자 이내 들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사라는 자신의 불편한 마음을 아브라함에게 말하게 되었고 아브라함은 조금도 치우침이 없이 사라에게 여주인으로서의 권리를 행하도록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사라는 오만한 하갈을 학대하였고 하갈은 이를 이기지 못해 스스로 도망하여야 했습니다.
   하갈은 도중에 여호와의 사자를 만나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이런 일을 겪은 것은 자신이 올바로 처신하지 못한 결과이지요. 이처럼 다투거나 들레는 사람들의 결과가 어떠한가를 깨달아 주님처럼 다투지도 아니하고 들레지도 아니해야 하겠습니다.
   
   2. 사랑을 받거나 직분을 가진 사람이 주의해야 할 점
   
   우리 주변을 보면 열심히 의를 행해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처럼 다투고 들레는 마음으로 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적인 면에서 그런 문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랑을 받고 직분이 높아짐에 따라 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면이 드러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랑을 받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나 직분을 가진 사람이 주의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1) 다투거나 들레지 말아야 합니다
   먼저, 사랑을 받음으로 인해 문제가 생긴 경우가 있는데 에스더 1장에 나오는 아하수에로 왕의 왕비 와스디를 들 수 있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은 모든 방백과 신복을 위해 베푼 잔치에서 뭇사람들 앞에 왕비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내시들을 명하여 왕후 와스디로 하여금 왕후의 면류관을 정제하고 왕의 앞에 나아오게 하라고 명하였습니다.
   그런데 왕후 와스디가 왕명을 듣고도 잔치 자리에 오기를 싫어하니 왕은 민망한 나머지 진노하여 마음이 불붙는 듯하였고 결국 규례와 법률을 아는 박사들의 의견에 따라 와스디를 폐위시키고 맙니다. 왕의 사랑을 받는다 하여 교만해진 와스디는 왕의 뜻에 순복하지 않다가 이런 불행한 결과를 맞이했던 것입니다.
   다음에, 직분으로 인한 경우로는 아하수에로 왕의 신하였던 하만을 들 수 있습니다. 하만은 아하수에로 왕의 신임을 받아 지위가 높아지자 누구든지 자기 앞에 꿇어 절하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유독 유다인인 모르드개만은 절하지 않자 하만은 심히 노하여 모르드개뿐만 아니라 유다 민족 전체를 몰살시키고자 합니다. 사랑을 입고 지위가 높아질수록 모든 것을 더 온전케 행해야 될 터인데 그렇지 못했던 것이지요.
   그러면 우리가 사랑받는 위치에 있을 때의 마음가짐은 어떠해야 할까요? 바로 성경에 나오는 에스더와 같아야 합니다. 에스더는 왕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왕후의 위치에 있었지만 함부로 들레지 아니하였고 법도를 존중하였을 뿐 아니라 왕 앞에 나아감에 있어서도 정성을 다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에스더 2장을 보면 왕후 와스디가 폐위된 후 아하수에로 왕이 새로운 왕후를 간택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후보 중의 한 사람으로 뽑힌 에스더는 궁녀를 주관하는 내시가 정해 주는 것 외에는 별도로 치장하는 것들을 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보는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는 사촌 오빠 모르드개로부터 진리와 율법으로 잘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이지요.
   또한 왕비로 간택된 에스더는 악한 하만으로 인해 자기 민족이 멸절의 위기에 처한 것을 알고서도 섣불리 나서지 않았습니다. 왕이 부르기 전에 규례를 어기고 함부로 왕 앞에 나갔다가는 죽임을 당할 수도 있다는 궁궐 내의 법도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모르드개가 간청을 하자 에스더는 3일을 금식하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뢰하고 정성을 다하여 의관을 정제한 후 왕 앞에 나아갑니다.
   이때 왕은 에스더가 너무 사랑스러우니 오히려 소원이 무엇인지 물으며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고 했습니다. 에스더는 이때에도 경거망동하지 않고 지혜롭고 신중하게 모든 절차를 밟고 또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결국은 유다 민족을 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육적인 사람은 사랑을 받거나 어느 정도의 위치에 섰을 때 금방 들레지만 영적인 사람들은 상대의 시기심이나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고 더 낮아지고 섬기며 순종하는 마음으로 행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의 도리요, 직분을 가진 사람의 본분인 것입니다.
   
   2)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해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사랑을 받고 직분을 얻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와 반대로 낮아지고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도 있는데 바로 이런 사람들이 상한 갈대요, 꺼져 가는 심지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더욱 몸부림치며 은총을 입는 사람들에 대해서 허물을 잡거나 악을 발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그것조차 꺾으려 한다면 이 역시 악한 마음입니다.
   진정 영적인 사람이라면 설령 허물을 잡고 나무라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그것에 대해 흑백을 가리려하지 않고 또한 옳고 그름을 논쟁하여 그를 무너뜨리려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진실과 사랑으로 선대함으로써 악으로 나오는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고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그리스도의 마음이요, 양선의 마음이지요.
   구약성경에 나오는 다윗 역시 그러한 마음을 소유했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과의 전쟁에서 공을 세우고 돌아올 때에 사울 왕은 백성들이 자기보다 다윗을 더 높여 주니 시기하는 마음이 생겨 어떻게든 다윗을 죽이고자 합니다. 그런데 오히려 다윗 편에서 사울 왕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다윗은 왕을 해할 마음이 전혀 없다는 것을 왕에게 알려 조금이라도 왕의 마음을 평안케 해 주려 하였습니다.
   사울 왕의 아들이지만 선한 마음을 가졌던 요나단은 다윗의 그런 중심을 잘 알고 있었기에 오히려 다윗을 격려하여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되리라" 하며 서로 아름다운 우정을 나누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 역시 그러한 마음이었기에 요나단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심히 통곡하였지요.
   다윗은 왕이 된 후에도 죽은 요나단과의 우정에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애써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찾아 왕자 중 하나처럼 왕의 상에서 먹도록 배려해 주는 등 극진히 대우해 주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이처럼 다윗의 마음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는 마음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가룟 유다가 자기를 팔 자인 줄 아시면서 민망하게 지적하거나 책망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선대하며 품어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의롭고 고운 마음이 되었을 때에 어느 누구에게도 상처 주지 않으며 참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3) 높은 직분을 받고 사랑을 받을수록 더욱 처신을 잘해야 합니다
   한편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은 왕이 되기 전에는 겸손하며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그는 육적인 사람으로 머물렀기에 나중에 엄청난 죄를 범하는 사람으로 변하고 말았지요.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울의 중심을 아시기에 그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던 악이 드러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블레셋과 전쟁을 앞두고 사무엘 선지자가 번제를 드려 주어야 하는 상황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사무엘 선지자가 정한 기한 내에 오지 않자 마음이 다급해진 사울은 제사장만이 드릴 수 있는 번제를 자신이 드리는 잘못을 범하고 말았습니다. 또한 제사가 끝난 후 사무엘이 도착하여 연유를 물을 때에도 회개하기는커녕 어쩔 수 없어 그렇게 했다고 변명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말렉과의 전쟁에서는 하나님께서 아말렉의 남녀노소, 가축들까지 진멸하라고 명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아말렉 왕 아각을 죽이지 않고 사로잡았고 우양의 모든 좋은 것들도 진멸하지 않고 가치 없고 낮은 것만 진멸하였습니다. 이때에도 사울 왕은 좋은 것으로 하나님께 제사 드리기 위해 양과 소를 가져왔다고 변명을 하였지요.
   그 후에도 사울의 악함은 더하여 자기를 도와준 생명의 은인과도 같은 다윗을 시기하고 미워하며 죽이려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 부어 세우신 것을 알고 위기의식을 느꼈기 때문이지요. 심지어 다윗을 도와준 제사장들의 성읍을 멸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서슴지 않았던 사울은 결국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육을 버리고 영으로 들어가지 않으면 누구든지 사울 왕과 같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음이 선과 진리로 변화되어야만 사랑을 받고 지위를 얻게 되어도 변함없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속히 주님처럼 다투지도 아니하고 들레지도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고 꺼져 가는 심지도 끄지 아니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일구어 영의 사람으로서 마음껏 하나님께 영광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5-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