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순복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룬 동정녀 마리아
동정녀 마리아는 갈릴리 나사렛이란 동네에 살고 있었는데 요셉과 정혼한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마리아에게 가브리엘 천사가 찾아와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 1:31) 하는 놀라운 소식을 전하였습니다.
아직 결혼하지 않은 그녀가 아이를 성령으로 잉태할 것이라는 참으로 기이한 소식이었습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곧 언약하신 메시야를 낳을 것이라는 복된 소식이었지요. 하지만 아무리 복된 소식이라 해도 처녀가 아들을 낳는다면 어느 누가 이해하고 용납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의 수태를 중심에서 기쁨과 감사로 받아들였습니다. 육적인 생각을 동원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섭리가 자신에게 임한 것을 감사하여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지요(눅 1:49-50). 또한 하나님께서 계집종의 비천함을 돌아보셨다고 고백함으로 자신을 겸손히 낮추며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음을 중심에서 믿고 말씀대로 자신에게 이루어질 것을 기쁨으로 고백하였습니다.
이러한 마리아의 고백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졌으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인류 구원의 역사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온전히 이룰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동정녀 마리아처럼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순복할 자세를 가진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복하는 사람이란 과연 어떠한 사람일까요? 크게 세 가지 분야로 구분하여 살펴보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순복하는 사람이 되면
1) 동정녀 마리아의 고백처럼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정혼한 마리아의 입장에서 보면 처녀의 몸으로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참으로 당황스러운 일이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이스라엘의 사회적 통념으로는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어떤 이유를 대거나 변명하지 않고 오직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고백하였습니다.
이처럼 순종하는 믿음에는 어떠한 이유나 변명이 필요치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아멘' 하고 순종하면 하나님께서는 입술의 고백대로 보장해 주시며 말씀대로 이루어 주십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팡이로 홍해를 가르라 하시고 여호수아에게 여리고 성을 7일 동안 돌고 외치라 명하실 때에 인간적인 생각이나 지식을 동원하지 않고 그대로 순종하니 홍해가 갈라지고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순종할 수 없는 것에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행할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믿는다 하는 사람들조차도 자기 생각과 일치되어야만 순종하고 순종할 수 있는 것에만 순종하려 하며 심지어는 당연히 순종할 수 있는 것도 게을러서 순종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한다 하면서도 자신의 생각대로 일을 처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요.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진실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순종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감정과 생각에 맞추어 순종하려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그대로 믿는 것이 참된 믿음이며 사람의 논리와 이성으로는 도무지 순종할 수 없는 것이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이 참된 순종입니다.
이러한 순종이 참으로 값진 것이며 축복받는 길인 줄 알면서도 막상 어떤 상황을 만나면 순종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사람들에게 각자 자기적인 틀이 있기 때문이요, 육신의 생각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생각이 동원되어 불순종하는 예를 살펴보면 자기 능력이 미치지 못하므로 불순종하는 경우, 배우면 순종할 수 있는데 굳이 하지 않는 경우, 자기가 하지 못하니 그대로 일을 멈춰 버리는 경우, 자신의 생각에 맞지 않으므로 불순종하는 경우, 자기 생각에 맞추어서 일을 엉뚱하게 만들어 놓는 경우, 자기감정에 거스리므로 불순종하는 경우, 순종할 마음 자체가 없는 경우 등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6:22-23에 나오는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를 보면 순종의 진정한 의미를 깨우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때가 되자 자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하며 예수님을 붙들고 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육적으로 볼 때는 이것이 마땅한 도리일 것 같으나 영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지요. 바로 그것이 인류의 구속사업이라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이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깨우쳐야 할 것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려면 반드시 자신의 방법이나 생각 또는 이론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대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좇아 행하는 것이 인간적으로 볼 때에는 답답하고 어리석어 보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생각을 깨뜨리고 하나님의 방법대로 순종하여 행하기만 하면 그 결과는 참으로 온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라, 원수도 사랑하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 속옷을 달라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주라,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돌려 대라" 말씀하십니다. 이런 모든 말씀들이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지만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일단 믿음으로 행하게 되면 반드시 아름다운 열매가 맺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겸허한 자세로 순종과 질서를 좇아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는 믿음의 고백이 마리아에게 그대로 임했던 것처럼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축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2) 행함의 온전함을 위해 달려갑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중심이 의롭고 행함이 온전한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지고 바로 서는 것입니다. 흠도 점도 없으신 하나님 앞에서 행함이 온전하기 위해서는 먼저 속마음이 온전해야 하고 더불어 믿음과 사랑, 베푸는 마음, 영적인 담대함, 곧고 진실함, 온유함, 열심과 충성됨, 화평함, 책임감, 지식과 지혜 등 모든 면에 온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모든 면을 완벽히 만족시킬 만한 이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없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평가하실 때에 각 사람의 중심이 어떠한가, 곧 그 사람의 중심이 얼마나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가 하는 것을 봅니다. 즉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자기 삶 전체를 드려서라도 그것을 온전히 이루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중요하다는 말이지요.
잠언 11:5을 보면 "완전한 자는 그 의로 인하여 그 길이 곧게 되려니와" 말씀한 대로 이렇게 완전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 결과가 바르고 곧게 되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나 요셉,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자신들의 의로 인해 그 길이 곧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그 마음중심이 온전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모든 것을 아셨기에 조금도 막힐 것이 없었고 불가능한 것이 없었으며 종국에는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시는 일까지도 곧게 하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든 행함 자체가 사랑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 사랑은 용서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걸리거나 맺힐 일이 없었으며, 이와 더불어 모든 일을 명확하게 행하심으로 주어진 사명을 온전히 이루어 나가셨습니다. 즉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심으로 모든 일이 형통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상에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은 믿음의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환경이나 조건에 굴하지 않고 오직 정직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맡은 본분을 충성되이 감당해 나가니 그 의로 인해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어 놀라운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온전한 사람이 되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선지자 사무엘도 처음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기 전에는 여러 가지를 보고 들으면서 스스로 깨우침을 받아 나갔습니다. 그러다가 부르심을 입고 난 후에는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이끌어 가시니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순복할 자세를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법대로 그릇을 만들어 가십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버리라' 하신 것은 버리고 '옳다' 하신 것은 반드시 행하며 조금도 자기의 생각이 없이 오직 진리만을 좇아 나가므로 하나님께서 그 순간순간 역사해 나가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명심해야 할 것은 행함의 온전함을 이루기 위해서는 정한 마음과 더 깊은 차원의 지혜를 받아 나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고 돼지가 깨끗하게 씻겨 주어도 다시 더러운 곳에 가서 뒹구는 것과 같이 우리가 죄를 짓고 회개한 후 다시 죄를 짓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한 번 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마음에 명심하여 지켜 행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정한 마음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정한 마음을 가지고 자기를 갈고 닦은 사람은 필요한 것을 마음에 새겨 행하니 한 가지를 들으면 열 가지를 깨우치고 그 이상을 행할 수 있는 지혜가 오므로 존귀히 여김을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하나를 깨우쳤으면 스스로 노력하여 뭇 사람의 기대 이상으로 열매를 내니 그 지혜대로 칭찬을 받아 나가는 것입니다.
3) 자신이 목적한 바를 그대로 이루게 됩니다
이사야 7:14을 보면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로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약의 예언대로 때가 되매 이 땅에 오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좇아 온전히 행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는 열두 살의 어린 나이에도 어떻게 행하셨습니까? 누가복음 2:41 이하를 보면 예루살렘 성전에서 아이 예수님이 선생들 중에 앉아 저희에게 듣기도 하시고 묻기도 하시며 가르침을 베풀고 계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가르침이 얼마나 권세가 있었던지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히 여기더라"(눅 2:47)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것이나 행하시는 것이 다 온전하셨으므로 그 권세가 현저히 나타났던 것입니다. 예수를 찾던 부모가 이를 보고 놀라며 그 모친이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하고 말하자 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고 깨우침을 주셨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을 좇아 행하셨을 뿐 아니라 그 행함이 온전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심으로 그 뜻을 온전히 이루셨고 그 결과 모든 사람들의 죄를 대속해 주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마다 영생의 길로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그 모든 일을 목적한 바대로 이루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순복할 자세를 가진 사람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를 자신의 목표로 삼아 그것을 향해 열심히 달려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목적한 바를 향해 자기를 꾸준히 발전시켜 나가고 닦아 나가면 결국 그 목적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지켜 행하여 빛 가운데 거하는 사람, 즉 진리의 사람을 기뻐하시고 간구와 기도에 응답으로 축복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복하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여러분의 삶에 은혜와 축복이 넘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5-04-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