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누군가에게 은혜를 입었다면 이를 갚고자 하는 것이 당연한 도리일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의 도리를 잊고 아예 모른 체 하거나 어느 정도 갚다가 '내가 할 바는 다 했다'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선한 사람은 한번 받은 바 은혜를 영원히 잊지 아니하며 그 마음이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7장을 보면 한 촌에서 문둥병자 열 명이 예수님께 치료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 중에서 사마리아인 한 사람만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구원해 주신 예수님께 나아와 사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받은 바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선인 것이지요.
그러면 구원의 은총을 입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크신 사랑과 축복을 받을 수 있을까요?
1. 향유 옥합을 깨뜨린 막달라 마리아
누가복음 7:36-38을 보면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셨을 때 일어난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뒤로 막달라 마리아라는 한 여인이 향유를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막달라 마리아는 어떤 여인일까요? '막달라'라는 곳은 갈릴리 호수의 서쪽 게네사렛 평원의 남단에 위치하고 있는데 그 곳 주민들은 대부분이 이방신을 섬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마을 전체가 우상 숭배에 깊이 빠져 있음으로 인해 어둠이 완전히 그 마을을 사로잡고 있는 곳에서 막달라 마리아는 태어났던 것입니다.
누가복음 8:2을 보면 "또한 악귀를 쫓아내심과 병 고침을 받은 어떤 여자들 곧 일곱 귀신이 나간 자 막달라인이라 하는 마리아"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도 역시 귀신으로부터 많은 고통을 받았던 것입니다.
귀신에게 고통받는 경우를 보면 개인적으로 귀신에게 고통받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한 가정이, 또는 마을 전체가 귀신에게 사로잡히는 경우가 있지요. 한 개인이 귀신에게 사로잡혔을 경우에는 귀신이 사람의 몸 안에 상주하여 그의 마음을 온전히 빼앗아 버립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가 일곱 귀신에게 고통받았다는 것은 그런 의미가 아니라 대대로 우상 숭배에 찌들어 하나님을 완전히 떠난 가정에서 태어남으로 그 가정에 임한 저주들로 인해 많은 고통을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이런 환경에서 많은 질병과 가난으로 고통받으며 모든 사람들에게 소외당하고 멸시당하는 등 아무 소망이 없는 삶을 살아갔던 것입니다. 그런데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벙어리를 말하게 하며 각색 병자를 고치시는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마음이 선한 막달라 마리아는 '나도 그분을 만나면 모든 질병을 고침받고 어둠의 세력에게 시달리는 고통에서도 벗어날 수 있을 텐데' 생각하며 예수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사모했지요.
마침내 예수님께서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 들어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막달라 마리아는 자기에게 있는 가장 귀한 것을 드리고 싶어 향유가 담긴 옥합을 가지고 시몬의 집으로 갑니다. 너무도 귀한 분이시기에 감히 예수님 앞으로는 나아갈 수 없어서 예수님의 뒤로, 그 발 곁에 섰는데 복받치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이 예수님의 발을 적셨고 마리아는 몸을 굽혀 자신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겨 드리고 가져온 향유를 그 발에 부어 드렸지요.
예수님께서는 막달라 마리아의 행함을 보시고 질병을 고쳐 주시며 천국 소망과 참된 사랑을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 때문에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고 하루하루가 고통이 아닌 기쁨과 행복의 시간들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체험한 막달라 마리아는 남은 인생을 예수님을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은혜를 체험했던 다른 여인들과 함께 예수님 곁을 떠나지 않고 지극한 희생과 사랑으로 섬겼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에도 제자들은 무서워 도망하였지만 막달라 마리아는 마지막 운명하시는 시간까지 십자가 곁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안식 후 첫날 새벽 미명에 예수님의 시신이 놓인 무덤으로 간 마리아는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으로 뵙는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마리아에게 처음으로 보이신 것은 우연이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가 얼마나 예수님을 사랑하고 사랑받은 사람이었는지를 능히 짐작하게 하는 것입니다.
2.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부어 드린 영적인 의미
그러면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을 눈물로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옥합을 깨뜨려 향유를 부어 드린 데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이는 자신의 몸과 함께 마음과 정성을 예수님께 모두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먼저, 옥합이라는 것은 향유를 담았던 아주 특별한 그릇입니다. 우리가 평소 귀하게 여기는 물건이나 보물은 아무 데나 담아 두지 않는 것과 같이 마리아가 예수님께 부어 드린 향유는 매우 귀하고 값진 것이었으므로 그것을 담은 옥합 역시 아주 좋은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옥합은 영적으로 몸을 상징하며 옥합을 깨뜨린다는 것은 예수님께 자기 몸을 드려 헌신한다는 뜻입니다. 아무리 값비싼 향유일지라도 그것은 옥합을 깨뜨려야 부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권위나 체면을 개의치 않고 온전히 자기를 포기할 때 비로소 이러한 헌신이 가능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때는 생각이 동원되어 "이렇게 하면 남이 흉보거나 수군거리지 않을까?" 하는 외식이 있기 때문에 온전한 헌신이 나오지 못합니다. 자기의 몸, 겉껍질, 즉 외식과 가식을 깨뜨려 버릴 때 비로소 마음 중심에서 온전한 사랑과 헌신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옥합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더 귀한 것은 그 안에 담긴 향유입니다. 마리아는 옥합을 깨뜨려 귀한 향유를 예수님 발에 부어드렸는데 이는 마음속에 있는 진정과 모든 정성을 드렸다는 의미입니다. 즉 육체의 소욕을 벗어 버리고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할 때 진정한 사랑이 나온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드리는 정성과 사랑도 아름답거니와 당시 여인들은 사람들 앞에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때임에도 불구하고 체면이나 위신을 전혀 생각지 않고 예수님 앞에 나아와 발에 입맞추고 머리카락으로 씻어 드리는 마음이 얼마나 어린아이같이 맑고 깨끗한지요. 더구나 여인에게 있어서 머리카락은 매우 소중한 것인데 그러한 머리털로 발을 씻었다는 것은 온전히 낮아지는 겸손의 마음으로 예수님을 섬기려는 간절한 헌신과 사랑의 표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마리아가 가장 귀한 것을 드리며 정성을 다해 예수님을 사랑했던 것처럼 자존심이나 교만 등 모든 육적인 것, 곧 내 안에 있는 모든 비진리를 발견하여 버림으로 가장 값진 마음과 진정을 주님께 드려야 하겠습니다.
3. 받은 바 은혜를 갚는 것이 하나님의 선(善)
사람들 중에는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도 자기 생각이나 나름대로 닦여진 교양으로 인해 그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선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우쳐야 합니다.
만일 막달라 마리아가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만 있었다면 어찌 예수님의 기쁨이 되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첫 대면하는 여인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예수님께 대한 자신의 사랑을 담대하게 표현했기에 오늘날까지도 그 영적인 사랑의 향기가 전해져 오는 것입니다. 이는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부어 드리는 것을 이상히 여긴 한 바리새인에 대한 예수님의 대화를 통해 더 잘 알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이 마음에 이르기를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더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눅 7:39)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벌써 그의 마음을 아시고 한 가지 비유를 들어 깨우쳐 주십니다. "시몬아,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저를 더 사랑하겠느냐" 하고 물으시니 시몬이 "제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네 판단이 옳다.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 오매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씻었으며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저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받은 바 은혜를 잊지 않고 갚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며 이를 행했을 때 하나님의 기뻐하심을 입게 되고 더 나아가 이러한 마음씀과 행함이 변함없어야 온전한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질병을 치료받거나 기도에 응답받아 문제가 해결되면 뜨거웠던 마음이 식어지고 변질되어 버리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응답받고 치료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영혼의 구원 문제는 더더욱 중요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마음의 악을 발견하여 버리며, 지옥의 꺼지지 않는 불 속에서 영원히 고통받아야 할 영혼이 행복이 가득한 천국으로 옮기워졌다는 사실은 질병을 치료받은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큰 은혜인 것입니다.
저도 7년간의 병고 끝에 하나님께서 저를 만나 주시고 단번에 치료해 주셨을 때 살아 계신 하나님을 100% 믿게 되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버리겠다는 각오를 했습니다. 잠언 8:17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는 말씀대로 열심히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사랑받기를 원했고 하나님을 간절히 찾아서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온전히 깨우치기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대로 진리를 좇아 행해 나갔더니 하나님께서는 항상 저를 만나 주시고 기도와 간구에 응답해 주시며 모든 분야에 부족한 것이 없도록 채워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막달라 마리아를 칭찬하신 것도 예수님을 향한 영적인 사랑과 정성과 헌신에 대한 진실의 본을 보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위해 전 생애를 헌신한 이러한 모습을 하나님께서는 선하게 여기시는 것이며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복을 받고 어떤 문제라도 해결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번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변함없는 선의 행함으로 나아온 마리아와 같은 영적인 사랑을 소유하여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심으로 항상 축복된 삶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5-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