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조건부적인 모습들이 많습니다. 먼저 상대의 유익을 구하고 희생하기보다는 상대가 무엇을 해 주어야 그에 대한 대가를 주겠다는 조건이 붙는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들에도 이런 조건들이 붙는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어떤 유익이 돌아와야 부모를 섬기고 모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조건부적인 것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데 이런 모습들은 하나님 앞에서 결코 선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선이라고 인정하시며 기뻐하시는 모습은 과연 어떠한 것일까요?
1. 생명을 걸고 마땅히 행할 바를 지킨 다니엘의 세 친구
남 왕국 유다가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침입을 받았을 때, 많은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 갔습니다. 바벨론 왕은 포로로 잡혀온 이스라엘의 왕족과 귀족 중에 흠 없고 아름다우며 모든 재주를 통달하고 학문에 익숙한 소년들을 데려다가 3년 동안 갈대아 학문을 배우고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으며 자라게 했습니다.
그 중에는 다니엘과 세 친구들도 있었는데 하나님을 경외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철저히 지키며 살았지요. 왕의 진미에는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이 들어있을 수 있기 때문에 포로로 잡혀 갔지만 채식만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의지하여 오직 말씀대로 행하니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셨고 왕의 총애를 받게 하셨지요. 결국 다니엘은 총리가 되었고 다니엘의 세 친구는 바벨론 도를 다스리는 위치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들에게 큰 시험이 찾아왔습니다. 느부갓네살 왕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어 바벨론 도의 두라 평지에 세우고 방백과 수령 등 각 도 모든 관원들에게 자신이 세운 신상의 낙성예식에 참여하여 절하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신상에 경배하지 않는 사람은 즉시로 극렬히 타는 풀무에 던져 넣겠다고 선포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다니엘의 세 친구는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신상에 절하지 아니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노한 왕 앞에 끌려왔고 극렬히 타는 풀무에 던져질 상황이 되었지요. 왕은 이 순간에 다시 한번 기회를 주면서 만일 이번에도 절하지 아니하면 즉시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던져 넣겠노라고 엄히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조금도 요동하지 않고 오히려 "느부갓네살이여 우리가 이 일에 대하여 왕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나이다" 하면서 풀무에 던져져서 불에 타 죽는다 해도 우상 앞에 결단코 절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그리고는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 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 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라고 말하였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풀무에서 건져 내 주시지 않으실지라도 그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하나님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겠다는 비장한 믿음의 고백을 한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어떤 대가를 바라고 행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평소에 마땅히 할 바를 행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시험이 찾아 온 것에 대해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힘들어하지도 않았습니다. 단지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지키기 위해 기꺼이 자신들의 목숨을 던졌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계명을 지킴에 있어서 어떠한 조건을 달지 않고 자신의 목숨을 버리면서도 자기의 할 도리를 다하는 아름다운 선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영광을 나타내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그러니 어찌 풀무불에 던져진 그들의 목숨을 구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결국 왕이 노하여 칠 배나 더 뜨겁게 달구어진 풀무불 속에 던져진 다니엘의 세 친구들을 신의 아들과 같은 모양의 사람이 함께하며 지켜 주니 불이 능히 그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슬리지 아니하였으며 고의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탄 냄새도 없었습니다(다니엘 3:27).
마침내 왕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백성들에게 조서를 내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다니엘의 세 친구들을 바벨론 도에서 더욱 높여 주었습니다(다니엘 3:28-30). 이처럼 아무 잘못 없이 시험이 왔을 때 믿음으로 이기면 하나님께서 더 큰 축복을 주셔서 더 높은 자리에 오르고 더욱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2. 생명도 기꺼이 줄 수 있는 신앙을 소유하려면
여러분은 과연 다니엘의 세 친구들처럼 하나님 앞에 어떤 조건을 내걸지 않고 믿어 드리며 그분의 뜻에 따라 온전히 행하고 있는지요? 혹 하나님 앞에 할 바를 다하지 못하면서 기도에 응답해 주시지 않는다고 원망 불평하지 않았는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할 바를 어느 정도 했다 해도 그것을 끝까지, 응답될 때까지 했는가 한번 짚어 보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중도에 의심하거나 포기하거나 원망하고 탄식하지 않았는지요. 더욱이 하나님 앞에 어떤 조건을 내걸고 축복이나 문제 해결 받으려는 목적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온다거나 "응답받으면 하나님을 믿겠다" 하는 조건적인 마음이 있다면 철저히 깨뜨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구원해 주심을 감사하며 간구해 나갈 때 응답하여 주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다니엘의 세 친구와 같은 믿음을 소유하여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즉 설령 원하는 것을 응답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끝까지 감사하며 기뻐해야 하는 것입니다.
참된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아 하나님 앞에 통회자복하여 죄의 담을 헐고 성령을 선물로 받았기에 구원받은 기쁨을 누릴 뿐 아니라 평생을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영원한 지옥에서 고통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 영원한 행복이 있는 천국에 가게 되었는데 설령 지금 목숨을 거두어 가신들 무엇을 감사하지 못하겠습니까? 정녕 이런 중심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축복을 받으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만일 사업터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이 문제만 해결받을 수 있다면 신앙생활 열심히 하고 하나님 앞에도 열심히 물질로 심어야지" 하면서 조건부적인 생각과 신앙으로 행한다면 먼저 그러한 생각과 신앙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먼저 열심히 신앙생활하고자 결심하고 "심은 대로 거두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믿음대로 심어 나간다면 이런 사람에게 응답이 오는 것입니다.
질병이나 사업터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혹시 나는 하나님 앞에 이런 조건부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내 가정을 지켜 주시고 기도에 응답해 주실 때만 감사하며 충만해 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그런 조건부적인 신앙이 아니라 목숨을 달라 하셔도 기꺼이 줄 수 있는 신앙이었던 것입니다.
3.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함없는 신앙을 소유한 사도 바울
성경상의 또 다른 인물로서 그러한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는 사도 바울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한번 주님을 만난 후 죽는 날까지 받은 은혜를 간직하며 살았지요. 어떠한 상황에서도 신앙을 지키는 변치 않는 중심이었던 것입니다. 죽을 줄 번연히 알면서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어떤 만류도 다 뿌리쳤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무슨 일을 만날지도 알지 못했을 뿐더러 성령께서도 각 성에서 결박과 환난이 그를 기다린다고 했는데도 사도 바울은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4) 고백했지요.
사도행전 21장을 보면 '아가보'라는 선지자가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바울을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줄 것이라' 하신 성령님의 말씀을 전하자 사도 바울은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받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담대히 말하였습니다. 목숨이 아까워서 믿음이 흔들리거나 타협치 않았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변함없는 중심과 더불어 다니엘의 세 친구들과 같이 조건 없는 신앙을 가졌습니다. 고린도후서 11:23-27에 사도 바울이 고백하기를 "저희가 그리스도의 일꾼이냐 정신없는 말을 하거니와 나도 더욱 그러하도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 데 일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의 위험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신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들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고 애쓰며 여러 번 자지 못하며 주리며 목마르며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하였습니다.
여러분 중에 이러한 사도 바울보다 더한 고난을 받으신 분은 없으실 것입니다. 그러니 사도 바울 앞에서 불평이 나올 수 없고 마음이 변하여 돌아서는 일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하나님께서 직분을 주신 것을 감당함에 있어서 사람으로 인해 걸리거나 믿음이 부족하여 힘들어하고 어려워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변개하는 비진리의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 앞에 조건 없는 신앙이었기에 데살로니가전서 5:16-18에 말씀하신 대로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더욱이 이어지는 28절에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엄청난 고난을 겪으면서도 자신이 힘들었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데 있어서 염려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그 중심이 온전하며 조건 없는 희생과 사랑의 행함을 보인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서 놀라운 권능을 행하여 하나님께 크게 영광돌렸습니다(행 19:12).
우리도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사도 바울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이 없는 선한 중심과 조건 없는 신앙을 소유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과 놀라운 은총을 받으며 축복된 삶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5-06-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