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삶에만 급급할 뿐 다른 사람들에게는 관심조차 두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간혹 자신을 희생하여 다른 사람의 생명을 구한 일들이 알려지면 언론에 크게 보도되고 한동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을 봅니다.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당연한 도리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는 그것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기 때문에 기사거리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침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과연 어떻게 행해야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종 엘리야를 공궤하는 선의 행함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은 사르밧 과부를 통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마지막 남은 음식으로 엘리야를 공궤한 사르밧 과부
이스라엘의 아합 왕 때에 왕과 온 백성이 심히 우상을 숭배하는 죄를 범함으로 수년 동안 비가 오지 않는 하나님의 저주가 임했습니다. 이러한 저주가 임하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종 엘리야를 통해 아합 왕 앞에서 예언케 하셨는데, 회개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전한 엘리야를 미워하여 잡아 죽이려 했습니다. 이러한 것을 미리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요단 앞 그릿 시냇가에 숨으라 명하시고 까마귀를 통해 떡과 고기를 공급해 주셨지요.
얼마 후 가뭄이 극심하여 그릿 시냇물까지 말라 버리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 내가 그곳 과부에게 명하여 너를 공궤하게 하였느니라"(왕상 17:9)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께서 사르밧 과부에게 "내가 내 종 엘리야를 너에게 보낼 터이니 너는 이렇게 공궤하라" 명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 여인의 마음을 주관하여 엘리야를 공궤하도록 하시겠다는 뜻이지요.
이처럼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를 공궤하도록 마음에 주관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사람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선의 마음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엘리야가 행함 하나까지도 인도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예비된 그릇이요, 죽음을 보지 않고 산 채로 들림을 받을 만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함께 동행하시는 종이었습니다. 그래서 갈멜산에서 불의 응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엘리야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숭배하던 이방신인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들 수백 명을 모으고 단신으로 대결하였습니다. 단에 번제물을 놓은 후 각자 섬기는 신에게 기도하여 어떤 신이 하늘로부터 불을 내려 번제물을 태우는가 하는 것으로써 참신을 가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결국 엘리야는 불의 응답을 받아 이를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참신은 오직 한분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알게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귀하게 쓰임 받을 엘리야이기에 까마귀를 통해서도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시고, 사르밧 과부를 통해서도 역사하신 것입니다. 사르밧에 이르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여인을 만난 엘리야는 "청컨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나로 마시게 하라" 부탁하지요. 순순히 물을 가지러 가는 여인을 향해 엘리야는 또다시 "청컨대 네 손에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부탁합니다.
오랜 가뭄으로 물도 구하기 힘든 상황인데 음식까지 달라고 하니 참으로 염치없는 부탁이지만 사르밧 과부는 조금도 화를 내거나 감정을 상하지 않고 오히려 엘리야를 도울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민망하게 여기며 설명하였습니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만일 엘리야가 인간적인 생각을 동원하여 사르밧 과부에게 부탁하지 않았다면 그 여인의 선한 마음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행함으로 드러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의 답변을 들은 엘리야는 "두려워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말합니다.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금보다도 귀한 양식을 달라고 했으니 엘리야의 요청에 순종한다는 것은 보통 사람의 생각으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만일 자기 말대로 그러한 능력이 있다면 왜 나처럼 가난한 과부에게 양식을 달라고 청할까?'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요. 그러나 사르밧 과부는 어떤 이유나 핑계도 대지 않고 순종하였습니다. 이로써 그 여인의 마음이 얼마나 하나님과 하나님의 종을 신뢰하고 있고 마음이 선한지를 알 수 있지요.
2. 모든 것을 아낌없이 줄 수 있는 사람에게 임하는 축복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선한 마음 중심을 아셨기에 많은 사람 중에 사르밧 과부를 통해 하나님의 종 엘리야를 공궤하도록 역사하신 것이요, 이 여인에게도 축복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러니 누구나 하나님의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선으로 들어오면, 즉 영혼이 잘되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요삼 2).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켜 행하면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대로 기도하니 그대로 역사되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17:15-16에 "저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 저와 엘리야와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로 하신 말씀 같이 통의 가루가 다하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 기록된 대로 극심한 가뭄이 다할 때까지 조금도 양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놀라운 축복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본교회에도 사르밧 과부와 같이 하나님 앞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드림으로 영적인 축복과 물질의 축복을 풍성히 받아 가시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사르밧 과부의 선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에게 베풀어졌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야 더할 나위 없지만 바로 각자 자신이 섬기는 교회의 주의 종들을 섬기는 것을 비롯하여 그 외의 사람들을 대함에 있어서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사르밧 과부는 자신을 찾아온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었어도 충분히 이같은 선의 행함을 보일만한 마음이요, 그러한 중심이었지만 상대가 엘리야였기에 축복을 더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자기의 아들이 죽었을 때에도 엘리야를 통해 다시 살아나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다른 방법으로도 엘리야를 먹이실 수 있었지만 사르밧 과부에게 축복을 주시고자 하나님의 보장 받는 엘리야를 여인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만약 사르밧 과부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이기적인 욕심이 있었다면 엘리야의 말에 순종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상대를 위해 베풀 수 있는 선한 마음이 있었기에 순종이 나올 수 있었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의 마음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선이 이루어진 사람이라면 하나님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달라는 대로 줄 수 있는 마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콩 한 쪽도 나누어 먹으라는 말이 있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형제가 한 쪽뿐인 콩을 다 달라 해도 기꺼이 줄 수 있고 달라 하지 않아도 마음에 주관이 있을 때에는 그대로 순종하여 줄 수 있는 선한 마음의 행함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르밧 과부와 같이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마지막 양식으로 다른 사람을 공궤할 수 있는 마음은 참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선의 마음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선의 마음만으로는 축복해 주실 수 없기에 엘리야를 통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행함으로 이끌어 내셨습니다. 마음이 선하다 해서 축복받는 것이 아니라 선을 행함으로 나타낼 때 비로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마음에 참된 선을 이루며 그 선을 행함으로 나타내는 빛의 자녀들이 되어 하나님의 크신 축복을 받으며 마음껏 하나님께 영광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5-07-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