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람들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을 하는데 이는 사람의 마음가짐이나 생각이 자신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가난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자랐다 해도 어떤 사람은 자신이 처한 환경을 극복하고 성공하여 자신과 같은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도와주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환경을 비관하여 잘못된 길로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처럼 똑같은 환경 속에서도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나는 것은 각 사람의 마음 중심이 선악 간에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우리 사람 편에서는 선인 것 같으나 하나님 편에서는 선이 아닌 것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진리를 밝히 알지 못하는 입장에서는 분명히 선인 것 같아도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면 악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지요.
오늘은 다윗이라는 인물을 통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은 다윗의 선(善)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이 교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계속 불순종해감으로 하나님께서는 사울을 버리기로 작정하시고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다윗을 왕으로 선택하셨습니다. 다윗은 이새의 여덟 명의 아들 중 말째로서 들에서 양을 치는 목동이었지요.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의 지시를 받은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찾아왔습니다.
사무엘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으로 외모가 뛰어난 다윗의 맏형 엘리압을 주목했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말씀하시며 말째인 다윗에게 기름부을 것을 명하셨습니다(삼상 16장).
그러면 일개 목동에 지나지 않았던 다윗이 이처럼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축복을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다윗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신뢰했습니다.
사무엘상 17장을 보면 소년 다윗과 골리앗이 대결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군대는 이방 족속 블레셋과 서로 대치하여 엘라 골짜기에 진을 치고 있었는데, 이때 이스라엘 군대는 블레셋 장수 골리앗으로 인해 완전히 전의를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골리앗은 키가 3미터에 가까운 거인으로 놋투구와 갑옷과 놋단창으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장수가 나아와 40일을 밤낮으로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며 큰 소리를 치는데도 왕과 이스라엘 군대는 그저 두려워 떨 뿐이었습니다.
바로 이때 전쟁터에 오게 된 소년 다윗은 골리앗이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하는 것을 듣고 분개하여 무장도 하지 않은 채 단지 물맷돌 다섯 개만 들고 담대히 나아갑니다. 그리고 외치기를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하였습니다.
이처럼 다윗은 중심에서 하나님을 믿고 신뢰했기에 모든 백성들과 용사들도 두려워 떠는 거인 골리앗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이 던진 물맷돌은 골리앗의 이마에 적중하여 골리앗은 칼 한 번 제대로 휘둘러보지 못하고 쓰러졌습니다. 비록 다윗은 어린 소년이었지만 하나님을 믿으니 이렇게 놀라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니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실 때 어찌 기쁘고 사랑스럽지 않으시겠습니까? 히브리서 11:6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축복으로 갚아주십니다.
둘째로, 다윗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이 지켜야 할 도리를 어기지 않고 오직 선으로 악을 이겼습니다.
사울 왕은 위기에서 나라를 구한 다윗을 처음에는 매우 기뻐하며 군대의 장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다윗과 사울 왕이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올 때 환영하러 나온 여인들이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며 다윗에게 공을 더 크게 돌리자 이후로 사울은 다윗을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울 왕의 시기심은 날이 갈수록 심해져 급기야는 자신을 위해 수금을 타고 있는 다윗을 향해 두 번씩이나 단창을 던져 죽이려 했지요. 그 후로도 사울 왕의 시기와 두려움은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그래서 다윗에게 자기 딸을 줄 터이니 결혼 예물로 블레셋 사람의 양피 백 개를 가져오라고 요구함으로 블레셋 사람의 손에 다윗을 죽이고자 하기도 했고, 사자들을 다윗의 집에 보내어 죽이라 하는가 하면, 라마로 도망간 다윗을 죽이기 위해 군사를 이끌고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다윗에게 사울 왕을 없앨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습니다. 어느 날, 다윗은 사울 왕이 군사들과 떨어져 자신이 숨어 있는 굴에 들어와 잠을 자고 있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때 마음만 먹는다면 사울 왕을 죽이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었고 설령 죽인다 해도 다윗을 비난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때 다윗의 사람들은 "보소서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붙이리니 네 소견에 선한 대로 그에게 행하라 하시더니 이것이 그 날이니이다"(삼상 24:4)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사울 왕을 이곳까지 이끌어 주신 것은 다윗에게 원수를 죽일 수 있는 기회를 주시고자 함이니 사울 왕을 죽이는 것이 선한 일이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의 마음은 이들과 전혀 달랐습니다. 사울 왕이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든, 백성의 미움을 받든, 악한 임금이든 간에 이미 하나님께서 기름부어 세우신 왕이었기에 죽이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다윗은 가만히 사울 왕의 옷자락만을 베었는데 이 일조차도 마음에 찔려 자기 사람들에게 절대로 사울 왕을 해치지 말라고 명했습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이요, 다윗 자신이 왕으로 섬긴 사람이었기에 도리에 어긋난 행동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다윗은 애매히 고난과 핍박을 받을지라도 자기 감정에 치우쳐 악을 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어떤 것이 옳은 것인가를 분별하여 행했고 오직 하나님을 의뢰함으로 결코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이 바로 다윗의 선이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바가 되었던 것입니다. 더 나아가 다윗은 사울의 마음을 어떻게든 편안하게 해 주려고 애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잠이 깨어 갈 길을 갈 때, 다윗이 멀리서 사울을 부르며 땅에 엎드려 절하고는 "나의 아버지여 보소서 내 손에 있는 왕의 옷자락을 보소서 내가 왕을 죽이지 아니하고 겉옷자락만 베었은즉 나의 손에 악이나 죄과가 없는 줄을 아실지니이다 왕은 내 생명을 찾아 해하려 하시나 나는 왕에게 범죄한 일이 없나이다"(삼상 24:11)라고 고합니다.
다윗은 사울 왕에게 죄없이 쫓겨 다니는 입장에서도 그를 아버지로 여기고 끝까지 자기의 결백한 마음을 전할 정도로 선한 마음을 소유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다윗과 대조적이었던 사울 왕은 어떠하였습니까?
사무엘상 24:16 이하를 보면 사울 왕은 다윗이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상황에서도 놓아 주었다는 사실을 알고 마음에 감동을 받아 소리를 높여 울며 다윗에게 이르되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하며 잘못을 뉘우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동도 잠시뿐 시간이 지나자 다시 다윗을 죽이기 위해 쫓아다닙니다.
이처럼 일시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것 같아도 마음의 악을 온전히 빼내 버리지 못한 상태에서는 어느 순간 사단이 역사하면 또다시 악이 발동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진정 원하시는 것은 마음 안의 악을 뽑아 버린 선한 마음이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과연 우리 안에는 사울과 같은 마음은 없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사울 왕처럼 내 유익에 맞을 때는 무엇이든 상대에게 주고 싶어 하다가도 어느 순간 내 유익에 맞지 않으면 이내 원수를 맺거나 등을 돌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과거 역사뿐만 아니라 오늘날 정치, 경제, 사회 등 여러 분야에서, 또 사람들의 삶 가운데서 이런 악한 모습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런 행함이 나올 수밖에 없는 악의 종류에 대해 성경은 여러 곳에 기록하고 있는데, 로마서 1:29-31을 보면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악을 행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으니 하나님의 자녀들은 악에서 떠나야 합니다.
다윗은 선으로 악을 이기며 속옷을 달라고 하는 사람에게 겉옷까지도 내어 줄 수 있는 마음이 되었기 때문에 이후로도 거듭 자신을 죽이려 한 사울 왕을 용서하고 또 용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중 다윗은 사울 왕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한 후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슬피 울며 금식하였고 사울 왕의 시체를 장사 지내 준 길르앗 사람들에게는 감사를 표하며 그들을 진심으로 축복해 주었습니다. 다윗은 이런 선한 마음을 지녔기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시고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말씀하셨던 것입니다(행 13:22).
오늘 말씀을 통해 여러분도 범사에 자기 소견에 선한 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다윗이 행했던 것처럼 오직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을 좇아 행함으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과 응답을 온전히 소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5-0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