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 중에 으뜸이라 할 수 있는 다이아몬드는 가공 전에는 하나의 돌에 불과하지만 잘 갈고 다듬으면 가치가 더해져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게 됩니다. 이처럼 사람도 하나님 편에서 보면 아직 제 빛을 내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점점 그 빛을 발해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돌을 갈고 다듬어야 아름다운 빛을 발하는 보석이 되는 것처럼 사람도 연단과정을 잘 거쳐야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욥이라는 인물의 연단 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온전한 선의 차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하나님께서 욥에게 시험을 허락하신 이유
욥기 1:1을 보면 욥에 대하여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욥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로서 빈민과 고아를 돌아보는 등 많은 선행을 베푼 사람이었지요. 하나님을 만난 적도 없고 친히 음성을 들은 적도 없지만 단지 하나님에 대해 전해 듣고 선을 행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욥에게 큰 시험이 찾아왔습니다.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왜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만큼 의로운 욥에게 시험이 찾아왔는가"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먼저 선의 4단계에 대해 설명하고자 합니다.
첫째는 누가 자신을 욕하고 괴롭힐 때 같이 대항하지 않고 눌러 참는 단계의 선입니다. 세상에서는 이런 사람을 "법 없이도 살 사람이다"라고 말하지요.
둘째는 억지로 참는 것이 아니라 미운 감정 자체를 마음에 품지 않고 오히려 상대를 이해하려는 차원에서 생각하고 낮아지고 섬겨 주는 선으로서 하나님께서 비로소 선이라 인정하시는 가장 낮은 단계의 선입니다.
셋째는 상대가 악으로 나올 때 마음에 감정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오히려 감동적인 선의 말로써 상대에게 기쁨을 주고 행복을 줄 수 있는 선의 차원입니다.
넷째는 가장 높은 차원의 선으로서 바로 생명까지라도 아낌없이 줄 수 있는 선입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화목제물로 이 땅에 보내 주신 하나님의 선, 거룩하신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죄인된 인류를 위해 생명을 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선, 이것이 곧 최고의 선이며 온전한 사랑인 것입니다.
이처럼 여러 가지 선의 차원에 대해 말씀드린 것은 욥의 연단을 이해하기 위함입니다. 즉 욥이 순전하고 정직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시험을 허락하신 이유는 욥이 아직 생명을 줄 수 있는 온전한 선에 이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욥은 행위적으로는 너무도 완벽했지만 마음 안에는 아직 온전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욥의 마음 깊은 곳까지 감찰하신 하나님께서는 이것마저 온전케 하심으로 욥의 마음을 온전한 선에 이르게 하셨던 것입니다.
2. 욥에게 찾아온 시험과 하나님께 대한 원망
하루는 사단이 욥에 대해 하나님께서 주신 큰 축복으로 인해 욥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송사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사단에게 시험을 허락하시되 욥의 소유물을 다 거둘지라도 오직 몸에는 손을 대지 말라, 즉 생명만은 건드리지 말라고 하십니다(욥 1:12).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직접 시험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단이 송사하므로 허락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야고보서 1:13에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시험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사람이 죄를 범하거나 잘못했을 때 사단이 이를 송사하고 시험을 가져다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대로 욥의 시험이 시작되었는데, 한 마디로 정신차릴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시험이 다가옵니다. 자신의 몸을 제외한 모든 소유와 자녀들을 순식간에 잃게 된 것이지요. 그러나 욥은 결코 어리석은 말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 고백합니다.
욥은 이처럼 모든 것을 잃은 상황에서도 하나님 앞에 감사하였는데, 이번에는 생명을 위협하는 시험이 찾아옵니다. 그의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악창이 났던 것입니다. 욥이 비참한 모습으로 재 가운데 앉아서 기와 조각으로 몸을 긁고 있으니 욥의 아내는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욥 2:9) 조롱하기까지 합니다. 이때에도 욥은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욥 2:10) 하고 타이르며 결코 입술로 범죄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것은 욥이 진리를 온전히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었지요. 성경 어디를 찾아보아도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으면 재앙도 받아야 한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이처럼 욥이 처음에는 감사하였지만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절망적인 상황이 계속되자 그의 행동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욥기 3:1을 보면 그 후에 욥이 입을 열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였는데 이는 자신을 낳은 부모를 원망하는 것이지요. 생명이 위협받는 시험 앞에서 근본의 악이 나오고 있는데 이러한 원망과 저주는 욥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까지 계속됩니다.
욥기 27:2을 보면 "나의 의를 빼앗으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로 오해하고 있습니다. 또한 "나는 의로웠고 진실했고, 나는 참되게 하나님을 경외했거늘 왜 이런 시험을 주시는가?" 하며 하나님께 따지기까지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정녕 하나님을 믿었다면 또한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하였던 고백이 참이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원망과 불평이 나올 수 없습니다. 값없이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총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해 주시는 것에 감사하여 자신의 목숨뿐 아니라 무엇이든 전부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3. 욥과 세 친구들의 변론을 통해 살펴본 사람의 마음
욥을 위로하러 왔던 친구들은 도리어 욥과의 변론을 통해 자신들도 범죄할 뿐 아니라 욥으로 하여금 더더욱 악을 발하게 만들었습니다.
먼저 친구 엘리바스는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말합니다(욥 4:7). 즉 죄가 있으니 망한 것이고 정직하지 못하니 끊어진 것이 아니냐는 말이지요. 이 말은 분명 맞는 말이지만 이 말을 하는 엘리바스의 마음이 문제입니다. 만일 시험 환난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회개하시오. 당신에게 죄가 있어서 그런 어려움이 찾아온 것이 아니겠소!" 말한다면 이는 사랑이 아니라 도리어 찌르는 말이 되고 말지요.
다음으로 친구 소발은 "하나님이 두루 다니시며 사람을 잡아 가두시고 개정하시면 누가 능히 막을소냐"(욥 11:10) 하였는데 이는 많은 사람들이 오해할 수 있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면 누가 막겠느냐 한 것은 맞는 말이지만 문제는 하나님께서 이유 없이도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이라고 오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이런 사람은 문제가 왔을 때에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그냥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할 때 반드시 지켜 주시고 복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욥기를 오해해서 "시험 환난이 와도 욥처럼 참아라. 그러면 나중에는 축복이 온다"고 말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욥처럼 축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어려움을 당하는 등 고통이 더해지는 경우가 흔히 있습니다.
그러면 시험이 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신을 돌아보고 통회자복하여 신속히 하나님 앞에 막힌 죄의 담을 헐어야 하며, 그럴 때 비로소 문제가 해결되고 치료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욥도 하나님을 만나고 회개한 다음에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친구 빌닷은 "그를 동일 줄이 땅에 숨겼고 그를 빠뜨릴 함정이 길에 베풀렸으며 무서운 것이 사방에서 그를 놀래고 그 뒤를 쫓아올 것이며" 하고 저주하는 말을 합니다. 이런 말이 나오기까지는 욥과의 계속된 변론도 있었고 또한 욥 역시 친구들을 완전히 무시하고 저주하는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위로해 주러 온 사람이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큰 악이며 더욱이 빌닷은 전에 욥에 대해 느꼈던 시기심에서 이와 같이 말하고 있으니 더욱 악한 것이지요.
이처럼 세 친구의 말을 통해서도 우리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습니다. 욥은 비록 하나님 앞에 원망하고 불평했지만 이는 극도의 절망 가운데 한 말이니 이해를 해야 합니다. 즉 오늘날 조그만 일에도 감정이 상하거나 혈기를 내는 사람과는 그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4.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을 이루어 축복받은 욥
드디어 욥이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지식적으로만 알고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던 욥에게 친히 음성으로 역사하신 것이지요. 그동안 하나님 앞에 큰소리치며 많은 말로 하나님께 원망 불평해 왔는데 막상 하나님을 대하게 되니 욥은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면 나와 보라고 하면서 변론하자고 했으니 용서해 달라고 빌 면목도 없는 상황이었지요.
이때 하나님께서 욥에게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물으시고는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욥 38:4)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인 욥 네가 무엇을 알기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느냐" 하시며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동안 욥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의롭고 마치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교만한 모습이었으니 과연 어떠한 심정이었을까요? 바로 철저히 돌이키며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하는 중심의 고백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욥 42:2).
이제는 어떤 상황에서도 변치 않을 정금과 같은 마음과 중심이 된 것이며 하나님께서 욥에게 원하셨던 온전한 선의 마음이 된 것이지요. 그러니 이 후로는 하나님께서 욥에게 생명을 달라고 하신다 해도 "하나님 뜻대로 하옵소서" 하며 그에 따른 행함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마음까지 온전해진 욥에게 하나님께서는 예전 소유보다 갑절이나 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더불어 자녀의 축복도 넘치게 주셔서 아들 일곱과 세 딸을 낳았는데 전국 중에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명예, 권세, 자녀의 축복, 건강의 축복, 물질의 축복 등 모든 축복을 넘치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생명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고 바칠 수 있는 영적인 사랑, 온전한 선에 이르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해 주십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온전한 사랑을 이루어 영롱하고 아름다운 선의 빛을 발하며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5-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