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신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리 작은 어두움이라 해도 결코 숨길 수 없으므로 어두움이 조금이라도 있는 한 하나님 앞에 죄 없다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미쁘시고 의로우시기 때문에 설령 죄가 있다 해도 그것을 스스로 자백하며 나오면 죄사함을 주시고 깨끗케 해 주십니다.
하지만 문제는 자신이 어두움에 있으면서도 스스로 깨닫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사람마다 양심이나 자라온 환경, 교양이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에 누구나 죄로 여길 수 있는 것도 경우에 따라서는 스스로 죄 없다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서 왜 사람이 죄 없다 할 수 없는지, 또한 죄는 구체적으로 무엇이며 죄를 자백한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우리가 죄 없다 할 수 없는 이유
요한일서 1:8을 보면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라고 했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성경을 보면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 불순종의 죄를 범하고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죄인된 아담의 씨를 받고 태어난 그의 후손들은 모두 죄성을 이어 받게 되었는데 이것이 바로 원죄이며, 또한 이 세상에 태어난 후 스스로 지은 자범죄도 많이 있기 때문에 결코 죄 없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인은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도 없고 하나님을 뵐 수도 없습니다. 이러한 죄 문제를 해결받지 못하면 결국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 되므로(롬 3:23, 5:12)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약 2천여 년 전에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요 1:12, 롬 3:24).
이처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죄를 사함받았다 해도 율법을 온전히 행하는 성결의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근본 죄성이 남아 있는 것이고, 또한 버리지 못한 악의 모양들로 인해 순간적으로 죄를 짓기도 합니다. 알지 못하고 죄를 짓기도 하고, 또 알면서도 아직 믿음이 연약하여 죄를 짓기도 하지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죄 없다" 인정하시는 온전한 성결을 이룰 때까지는 어느 누구도 스스로 "죄 없다"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만일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는 것이요, 진리가 우리 속에 없다고 했는데(요일 1:8) 왜 그런 것일까요?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 안에 있는 사람은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빛으로 비춰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것이 있으면 깨닫게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 온전한 성결을 이루어 어두움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는 "죄 없다"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만약 어두움이 있는데도 죄 없다 한다면 이는 그 안에 진리가 없다는 증거가 됩니다.
그렇다면 죄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요? 미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를 모두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케 하시며(요일 1:9), 이미 자백한 것은 더 이상 죄라 말씀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2. 하나님의 법 안에서의 죄란?
국가나 사회가 정해 놓은 법을 어기는 행위를 죄라 하는데 이는 하나님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천국 백성입니다(빌 3:20). 따라서 우리가 지켜야 할 법은 하나님 나라의 법인 영계의 법이며 이것을 어기는 것이 바로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계의 법은 영의 세계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법으로서 곧 성경 66권에 기록된 모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요한일서 3:4에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하셨으니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모든 것이 곧 불법이요, 죄인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 밖에 사는 사람, 즉 믿지 않는 사람은 요한복음 16:9에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라고 말씀하신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체가 이미 죄가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법 안에서 죄가 되는 것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첫째로, 행함으로 지은 죄 곧 육체의 일입니다.
고린도후서 5:10에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말씀하신 대로 육체의 일을 행하는 사람은 반드시 심판을 통해 벌을 받게 되고, 결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합니다(갈 5:19-21).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을 받았다고 해서 처음부터 모든 육체의 일을 단번에 끊을 수 있는 능력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의 도우심 속에 빛 가운데 거룩하게 살려고 노력하면서 열심히 기도해 나갈 때 비로소 육체의 일들을 하나하나 버려 나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버려 나가는 행함이 바로 믿음이요, 신앙생활인 것이며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육체의 사람이라 하지 않으시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마음으로 지은 죄 곧 육신의 일입니다.
빛이신 하나님 앞에서는 비록 외관상으로는 나타나지 않는다 해도 마음에 품은 온갖 불법도 어두움이며 죄입니다(롬 14:10, 약 4:11-12). 구약 시대에는 행위로 나타난 불법만을 죄라 하였지만, 신약 시대에 와서는 마음에 품은 불법까지 죄가 됩니다.
구약 시대와는 달리, 신약 시대에는 성령을 의지하여 마음에 할례를 받아 가면 능히 마음의 죄까지도 이길 수 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마음의 할례를 통해 변화가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빛이 그 안에 거하므로 마음 중심에서부터 온전한 빛의 행함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빛은 곧 용서와 사랑과 자비,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는 마음, 또한 모든 것을 선으로 보고 듣고 말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반대되는 판단, 정죄, 미움, 시기, 질투 등 이러한 어두움의 것을 마음에 가지고 있으면서도 단지 행하지 않았다 해서 "죄 없다" 할 수 없는 것입니다.
3. 어두움 같지 않으나 하나님 보시기에 어두움인 것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어두움들은 발견하여 벗어 버리기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언뜻 보기에는 어두움이 아닌 것 같지만, 근본이 어두움인 분야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남이 잘 되는 것을 보고 시기 질투하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남보다 못한 자신에 대해 낙망하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 이러한 모습이 남에게 악을 행하거나 마음에 담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두움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빛에 속한 영적인 사랑은 시기 질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고전 13:6). 따라서 상대가 잘 되는 것을 보고 시기하지는 않는다 해도 기뻐하지 못한다면 그 자체가 빛이 될 수 없고 그만큼 어두움이 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사랑은 상대가 나보다 더 사랑과 인정을 받는 것을 볼 때 낙망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예로, 진리를 좇는다 했는데 결과를 보니 화평함이 깨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가령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여 전체의 의견을 자신이 원하는 쪽으로 이끌어 갔는데 그로 인해 힘들어하는 사람이 생기는 경우가 있지요. 그러나 진정 빛을 좇았다면 반드시 화평이 따른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화평은 자신이 옳다 하더라도 상대에 맞추어 주는 마음이요, 나를 드러내지 않고 누구와도 걸림이 없는 마음입니다. 바로 이러한 빛에 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리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한다고 해도, 결과는 빛과 반대되는 어두움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자기 보기에 옳다 여겨지므로 어두움이라고 생각지 못하는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령, 사람들이 일을 지시하거나 지시를 받는 경우, 일의 결과가 좋으면 자신의 공로로 결과가 좋지 않으면 상대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남의 탓으로 돌리려는 마음을 온전히 버려야 사랑으로 상대의 허물을 덮어 줄 수 있는 빛에 속한 모습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책임을 전가하거나 모면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함께했다는 것만으로도 책임을 느끼고 자신의 탓으로 돌릴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설령 억울하게 누명을 썼다 해도 감수할 수 있는 마음을 소유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을 기뻐하시며 "죄 있다" 하지 않으십니다. 이미 죄 없다 할 마음이 아니요, 작은 일에도 스스로 자백할 마음이기 때문에 "죄 없다" 여기시며 축복해 주시지요.
4. 빛 가운데 거하려면 죄를 자백하고 돌이켜야
지금까지 자신이 왜 죄 없다 할 수 없는지 살펴보았는데, 빛으로 비추니 어두움이라고 생각지 못한 분야까지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었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자백해야 합니다. 자백한다는 것은 단순히 입술로만 "죄를 지었으니 용서해 주세요." 하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죄에서 돌이키는 것을 의미하며, 이렇게 돌이킬 때 주님의 보혈이 모든 죄를 깨끗케 하시는 것입니다.
다윗 왕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을 만큼 빛 가운데 행한 사람이지만 처음부터 흠 없이 온전했던 것은 아닙니다. 우연히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목욕하는 장면을 보고 마음이 동하여 그녀를 취한 후 이 사실을 은폐하고자 결국은 죄 없는 우리아를 이방인의 손에 죽게 하는 엄청난 죄까지 짓게 되었지요.
그런데 다윗 왕은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단을 통해 그의 죄를 지적하시니 즉시로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후로도 죄에 대한 보응으로 반역한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다니는 등 상상할 수 없는 연단의 시간이 있었지만 결코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다윗 왕의 자백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용서하시고 연단을 통해 흠 없이 빛에 거할 수 있는 온전한 그릇으로 만들어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 왕의 연단을 통해 미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마음과 깊은 사랑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미쁘시다" 한 것은 상대의 단점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장점을 보시고 허물까지도 사해 주신다는 것을 말하며 "의로우시다"는 것은 죄를 자백하고 돌이키는 사람을 어려움 가운데서 회복시켜 주실 뿐 아니라, 변화되는 만큼 더한 축복을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처럼 미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우리는 모든 죄를 마음껏 자백할 수 있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죄를 자백하고 돌이키며 진정 빛 앞에 자신을 거짓 없이 비추어서 어두움이 조금도 없는, 흠 없고 온전한 빛의 자녀들이 되어 하나님의 축복을 넘치게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5-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