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화된 설비들은 입력된 프로그램에 의해 정해진 일만 수행하고 자석도 철 이외의 다른 것은 붙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로서 난 사람은 오직 빛이신 하나님께 속한 행함 외에는 다른 행함이 나올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어두움에 속한 일은 어떤 유혹이나 위협을 받는다 해도 결코 행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작은 일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쉽게 타협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온전한 빛의 차원에 이른 사람이라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결코 범죄할 수 없습니다. 어두움이 빛을 덮을 수 없듯이 빛에는 어떤 어두움도 틈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범죄치 않는 빛의 사람은 어떤 사람이며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에게 어떻게 역사하시는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께로서 난 자
본문 요한일서 5:18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말씀한 대로 하나님께로서 난 자란 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마땅한 것이며,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곧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요 14:15, 요일 5:2). 그 계명 안에는 죄를 짓지 말라는 말씀이 있으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범죄할 수 없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7:21-23을 보면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즉 마음 자체에 죄를 유발할 만한 근본 악이 없어야 죄를 행치 않는 것이므로 범죄치 않는다는 것은 곧 악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겉으로 깨끗해 보이는 물건에도 미세한 균들이 있을 수 있는 것처럼 자신은 악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막상 중심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편에서 보면 자신이 모르는 악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그 악이 나올 만한 상황이 되면 결국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에서도 범죄치 않으려면 근본에 있는 악의 모양이라도 다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악이 없는 사람은 설령 악으로 관영된 곳에서 산다 할지라도 그 악에 물들 수 없습니다. 이미 육을 체험하여 그것이 무익한 것임을 알고, 그 무익한 육을 벗어 낸 상태이기 때문에 다시는 썩어지고 변하는 육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이처럼 악이 전혀 없으므로 죄를 행치 않으며, 이러한 모습이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없는 사람이 곧 하나님께로서 난 자인 것입니다.
2. 하나님께로서 난 사람들의 예
먼저,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를 들 수 있습니다. 주전 605년경 유다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제1차 침입을 받았을 때 다니엘은 젊은 나이로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벨론 제국의 느부갓네살 왕은 융화정책의 일환으로 포로들 중 유능한 인재를 뽑아 나라의 일꾼으로 등용하였는데 이때 다니엘은 그의 세 친구들과 함께 고위 관직에 올랐습니다.
그 후 벨사살 왕에 이은 다리오 왕은 뛰어나고 민첩한 다니엘을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했습니다. 그러자 이를 시기한 총리들과 방백들은 한 가지 간계를 꾸며 왕께 나아갑니다. 즉 왕으로 하여금 30일 동안 누구든지 왕 외에 어느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던져 넣기로 하는 금령을 세우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여전히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에 세 번씩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사자굴에 던져지는 위협 앞에서도 끝까지 하나님 앞에 자신의 할 바를 행했고 차라리 사자굴에 들어갈지언정 기도 쉬는 죄를 범치 않았던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 역시 평소보다 칠 배나 더 뜨거운 풀무불에 던져지는 상황에서도 우상 앞에 절하지 않고 끝까지 신앙의 절개를 지켰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 하면서도 막상 어떤 문제에 부딪히거나 어려움을 만나면 이내 타협하고 마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다니엘이나 그의 세 친구들은 생명이라도 아까워하지 않을 만큼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였으니 하나님 앞에 결코 범죄할 마음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요셉도 하나님께로서 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으나 이복 형들의 시기로 인해 애굽에 종으로 팔려 가게 되었습니다. 요셉이 이렇게 된 데에는 형제들의 허물을 아버지에게 고자질하고, 자신을 자랑하며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 등 온전하지 못한 모습에도 원인이 있었지요. 물론 요셉은 형들의 불의를 아버지에게 알리는 것을 옳게 여겼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이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서 자기가 옳다 여기는 의를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의로 바꾸어 갔다면 형들의 시기와 미움을 받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요셉의 모습을 통해서 무엇을 깨달을 수 있을까요? 진정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되기 위해서는 상대의 허물을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설령 상대의 허물을 발견해도 사랑으로 덮어 주고 더욱이 그것이 윗사람의 허물이라면 마치 자신의 허물처럼 여기며 함께 책임을 느껴야 하는 것입니다. 아랫사람의 허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오직 용서의 마음이 되어서 상대가 돌이킬 수 있도록 기도하고 사랑의 권면을 해 주어야 하는 것이지요.
요셉을 통해 또 한 가지 깨달아야 하는 것은 상대의 시기와 미움을 유발하지 않을 뿐 아니라 분노까지도 식혀 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아직 진리를 깨닫지 못한 상황에서 형들의 잘못을 고자질했고 이로 인해 형들의 시기와 미움을 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진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지혜롭게 행하여 상대로 하여금 오해케 하지 말아야 하며 또한 자기 보기에 옳다고 해서 무조건 행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입장이 되어 한번 생각해 보고 행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요셉에게는 바로 이런 점이 부족해서 형들의 시기와 미움을 얻어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게 된 것이지요. 그러나 그곳에서 그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릇으로 변화되어 갑니다. 남의 종으로 있으면서 낮아지는 법을 배웠고 감옥에 있으면서 참고 인내하는 법을 배웠으며, 또한 자신이 옳다 여기는 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것을 행하는 중심, 그래서 어떤 유혹에도 범죄하지 않을 수 있는 온전한 마음으로 변화되었지요. 이처럼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되기 위해서는 죄를 범할 여지조차도 없도록 철저히 악의 근본까지 마음에서 벗어 내야 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범죄할 수 없는 이유
요한일서 3:9을 보면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했는데 여기서 "하나님의 씨"란 진리요(눅 8:11),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거한다"는 것은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이 그 안에 임해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곧 말씀이 머리에 지식으로 쌓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영으로 양식삼은 상태, 즉 영으로 일구어진 상태를 말합니다. 말씀을 영으로 양식삼았다면 반드시 행함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영은 변함이 없는 것이므로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흔들리지 않으며 결코 비진리, 악, 불의 등의 어두움이 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9 후반절에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했는데, 여기서 "저"란 바로 "예수님"을 지칭합니다.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그대로 지니셨기 때문에 진리 안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여 모든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분이며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거했음을 증거해 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씨, 즉 말씀을 우리 마음에 확실하게 심고 양식삼아야 하며, 그럴 때만이 어두움이 빛 앞에 어찌할 수 없듯이 악한 자가 빛의 자녀된 권세를 가진 우리를 감히 만지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4. 하나님께로서 난 사람이 누리는 축복
"하나님께로서 난 사람이다"라는 인정을 받으려면 어떤 상황에서도 범죄치 않아야 합니다. 범죄치 아니하므로 하나님께로서 난 자가 되면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고 함께해 주신다는 증거가 나타납니다. 요한일서 5:18에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말씀한 대로 하나님께로서 난 자, 즉 하나님께로부터 지킴을 받는 사람은 어떠한 질병이나 문제가 있을 수 없지요. 설령 원수 마귀가 시험 환난을 가져오려 해도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물리치시고 지켜 주시니 있던 문제도 자연히 떠날 뿐 아니라 빛의 자녀된 권세가 함께함으로 놀라운 축복을 받아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다니엘이나 그의 세 친구들에게는 너무나 확실한 증거가 함께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우상 앞에 절하지 않는다고 평소보다 칠 배나 더 뜨겁게 한 풀무불에 던져졌지만, 그 불이 능히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했고 다니엘 역시 사자굴에 던져졌지만,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해 버리시니 다니엘을 해할 수 없었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들은 이를 통해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릴 뿐 아니라 그들 자신도 이전보다 더 높은 자리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노예로 팔려가서 억울하게 감옥에 갇혔던 요셉 역시 30세의 나이에 왕의 신임받는 애굽의 총리로 세워졌고 요셉의 명철과 지혜에 탄복한 왕은 "너는 내 집을 치리하라 내 백성이 다 네 명을 복종하리니 나는 너보다 높음이 보좌뿐이니라" 했지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사람에게는 바로 이러한 증거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로서 난 사람은 가정과 일터, 사업터에 축복이 넘쳐날 뿐 아니라 생명까지라도 지킴을 받습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우주만물과 온 인류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는 하나님께서 동행해 주신다면 모든 환난을 면하게 됩니다(시 121:1-7). 설령 악한 사람들이 함정을 놓았다 해도 하나님께서 지키실 것이며, 또 죽는다 해도 아름다운 천국이 예비되어 있으니 아무것도 염려할 것이 없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항상 진리 가운데, 빛 가운데 행하면 틀림없이 역사하시며 약속대로 지켜 주십니다(마 5:18). 그러므로 정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빛의 자녀가 되어 항상 진리와 빛 가운데 행하심으로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는 복된 삶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5-10-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