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47과 주의 말씀은 등이요 빛이라

읽을말씀 : 시 119:100-105
외울말씀 : 시 119:105

오늘날과는 달리 가로등이 없던 옛날에는 어두운 밤길을 걷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밤길을 다닐 때면 환하게 비춰 주는 달빛의 소중함을 새삼 느끼게 되지요. 이처럼 우리의 인생 여정에서 때때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난다 할지라도 앞길을 환히 비춰 주는 빛이 있다면 참으로 좋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모든 문제의 해답과 방법론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앞에 등이요 빛이 된다면 아무 막힘이나 힘들 것이 없고, 지름길을 찾아 신속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행해야 인생길을 밝히 인도받아 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을까요?
   
   1. 주의 말씀을 등과 빛으로 삼는 명철한 사람
   
   시편 119:100을 보면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 했습니다. 명철이란 영적으로 길이 환히 보이는 것을 말합니다. 즉 주의 법도를 지키는 사람은 길이 환히 보이므로 노인보다 명철함이 승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노인은 단순히 나이만 많은 연장자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풍부한 경험과 지혜를 통해 사리를 밝히 분별할 줄 아는 현명한 사람을 말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연륜을 통해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잘 분별할 줄 알므로 그들에게 자문을 구할 때 삶의 전반에 많은 유익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물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우리의 삶을 맡긴다면 어떠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예지하시는 분으로 인생의 처음과 끝을 성경에 모두 담아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고 말씀대로 행해 나갈 때 확실하고 완전한 길로 가게 되며 결코 무너지거나 좌우로 치우치지 않지요. 또한 인생을 값지고 소중하게 사용하는 길은 바로 주의 말씀을 발에 등이요, 길에 빛으로 삼는 데 있는 것입니다.
   
   2. 주의 말씀이 발에 등이요 길에 빛이 되려면
   
   1)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말아야 합니다
   본문 시편 119:101에 "내가 주의 말씀을 지키려고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아니하였사오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특별히 발을 지칭한 것은 우리가 어디를 향해 가야겠다고 결정하면 그대로 움직여 주는 지체가 발이기 때문입니다.
   발은 영적으로 세월의 흐름과 사람이 무엇을 추구해 가느냐를 비롯하여 삶의 전반적인 과정을 의미하므로 "발을 금하여 모든 악한 길로 가지 않았다"는 것은 악한 일을 도모하거나 동참하지 않고 오직 선한 일에 힘썼다는 말씀입니다.
   발을 금하여 악한 길로 가지 않고 오직 하나님 앞에 정도를 걸었던 사람으로는 요셉을 들 수 있습니다. 요셉은 형들의 시기를 받아 애굽으로 팔려가 애굽 왕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종으로 일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성실히 일한 덕분에 주인의 은총을 받아 가정 총무로서 주인의 모든 소유를 맡아 관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보디발의 아내는 요셉의 준수한 용모를 보고 날마다 유혹을 해 오지요. 이때 요셉은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자기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창 39:9) 하며 죄와 타협지 않는 단호한 모습을 보이지요.
   이와 같이 요셉은 정도를 지킴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게 되었지만 이로 인해 하나님의 큰 축복이 임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할 수 있었고, 단번에 당시 강대국이었던 애굽의 총리라는 위치에까지 오르게 되었지요. 이처럼 악에서 떠나 오직 주의 말씀대로 행할 때 하늘로부터 지혜와 명철이 오고 형통한 길로 인도받게 됩니다.
   
   2) 주의 규례에서 떠나지 않아야 합니다
   시편 119:102에 "주께서 나를 가르치셨으므로 내가 주의 규례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했습니다. "주의 규례"란 대대로 지키라 말씀하신 하나님의 명령들로서 일정한 규칙과 법과 제도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정하신 규례를 대대로 지킬 것을 명하셨는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아니라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구약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행했던 의식을 그대로 따라 하라는 것은 아니지요. 구약에서는 육의 할례를 했지만 신약에 와서는 마음의 할례를 하듯이 규례 역시 그 영적인 의미를 계승하여 지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주의 규례를 지켜야 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사람이 하나님께서 명하신 규례를 지킬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않고 마음에 명심할 수 있으며 죄와 불의에서 떠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북왕국 이스라엘 왕 아합은 이방신들을 숭배하여 심히 하나님을 격노케 했던 악한 왕이었으나 같은 시대의 남왕국 유다 왕 여호사밧은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지요. 한번은 여호사밧 왕이 아합 왕을 도와 아람과의 전쟁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아합 왕은 혹시 적군이 자신이 왕임을 알아보고 죽일까 하여 변장까지 하고 군중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전쟁 가운데 죽은 사람은 바로 아합 왕이었으며 죽은 후에는 미가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그 피를 개들이 핥는 수치까지 당해야 했습니다.
   아무리 인간적인 방법과 지혜를 동원해도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처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견고한 산성이 되어 주시고 방패가 되어 주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결코 떠나지 말아야 하며, 그럴 때 주의 말씀이 등이요 빛이 되어 앞일을 내다 볼 수 있고 범사에 형통함을 입을 수 있습니다.
   
   3) 주의 말씀을 꿀을 먹는 것보다 더 사모해야 합니다
   시편 119:103에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했던 인물로 다니엘을 들 수 있습니다.
   다니엘은 유다 지파에 속한 왕족으로 주전 605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제 1차 침입을 받았을 때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런데 바벨론 제국이 융화정책으로 포로들 중에 왕궁에 모실 만한 소년들을 뽑을 때 다니엘도 그중에 하나로 뽑혀 왕궁에 들어가게 되지요.
   어느 날 다니엘에게 시험이 찾아왔습니다. 바벨론 왕에게 나아갈 때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기 위해 3년 동안 왕이 지정해 준 진미와 포도주를 먹어야 하는데 그중에는 하나님께서 금하시는 것이 있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고 자신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열흘 동안 채식과 물만 먹게 해 달라고 환관장에게 구하지요. 그 후 10일 동안 채식과 물만 먹은 결과 다니엘의 얼굴은 왕의 진미를 먹는 소년들보다 더 아름답고 윤택하여 결국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먹지 않아도 되었던 것입니다.
   다니엘에게 왕의 진미와 포도주보다 더 달고 맛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채식과 물을 먹으며 하나님 앞에 부정한 것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고 깨끗케 지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에게도 왕의 진미와 같은 유혹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세상의 부나 명예가, 어떤 사람에게는 학문이나 지식이, 어떤 사람에게는 정과 욕심이 왕의 진미같이 느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영생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꿀과 같이 달게 먹었기에 그 삶이 참으로 가치 있고 형통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포로의 신분에서 한 나라의 총리가 되었는가 하면, 사자굴에 던짐을 받았을지라도 해를 입지 않고 오히려 이방인들 앞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4)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해야 합니다
   시편 119:104에 "주의 법도로 인하여 내가 명철케 되었으므로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 했습니다. 그러면 주의 법도로 명철한 사람이 되면 왜 거짓 행위를 미워하게 되는 것일까요?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옳고 그름을 정확히 분별하고 선과 악, 생명과 사망이 구별되면 진리를 굽게 하고 멸망으로 이끄는 악이 미워질 수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일 때는 옷이나 몸에 오물이 묻어도 별로 상관치 않고 노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장하면서 오물이 더러운 것인 줄 알게 되면 씻거나 닦아내지요.
   이는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죄가 무엇이며 얼마나 더럽고 추한 것인지 모를 때는 내 안에 죄가 있어도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나 진리의 말씀을 통해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서 깨닫게 되면 죄를 미워하고 멀리하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며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주님께서 그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기 위해 불같이 기도하고 금식하며 힘써 달려 나가야 하며 그럴 때 비로소 주님과 같이 흠도 티도 없는 성결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본문에서 말하는 모든 거짓 행위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첫째로, 거짓 행위에 해당되는 입술의 말에는 악한 말, 망령된 말, 진실치 못한 말, 거스리는 말, 속이는 말, 패려한 말, 비방하는 말, 헛된 말, 원망하는 말 등이 있습니다.
   
   둘째로, 남을 속이는 것 곧 물건값을 속여 부당한 이익을 취한다거나 옳은 것을 그르다 하고 그른 것을 옳다 하며,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 등이 있지요.
   
   셋째로, 심지 않은 데서 거두려 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노력한 것 이상의 것을 얻으려 한다거나 일확천금을 노리는 것, 허황된 것을 바라는 것 등이 하나님의 공의를 무시하는 행위이며, 결국 하나님의 미워하심을 받게 됩니다.
   여기서 "거짓 행위를 미워하라"는 것은 감정을 가지고 분을 내며 미워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으로 악을 미워한다는 것은 곧 악을 버리는 것이요,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며, 친히 원수를 갚지 않고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죄는 미워하되 죄를 지은 사람에게는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고 긍휼을 베풀며, 고아와 과부 등 소외된 이웃을 돌아보는 일 등이 악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편 119:165에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저희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말씀을 발에 등이요 길에 빛으로 삼으셔서 참으로 환난 날에 하나님을 피난처로 삼을 뿐 아니라 가는 길에 늘 형통함을 입어 하나님께 마음껏 영광돌려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5-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