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변에는 태양에서부터 등대나 가로등, 집안의 작은 조명에 이르기까지 빛을 발하는 것들이 많이 있지만 모든 것들의 빛의 밝기는 다 다릅니다. 만일 우리가 자신의 삶 가운데 이처럼 빛을 발한다면 가로등 불빛보다는 태양처럼 만방에 비출 수 있는 빛이 되길 원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빛을 발하되 밝은 태양처럼 어두운 세상 가운데 진리의 빛으로 환하게 비추기를 바라시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죄로 관영된 세대 가운데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서 세상 사람들에게 빛들로 나타낼 뿐만 아니라 생명의 말씀으로 빛을 밝혀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세상 사람들에게 빛들로 나타내려면 범사에 원망과 시비가 없어야
빌립보서 2:14에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말씀하신 것처럼 무슨 일을 하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원망과 시비가 없이 화평함을 이룰 때라야 세상 사람들에게 빛들로 나타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범사에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려면 어떤 마음을 소유해야 할까요?
1) 흠이 없고 순전한 마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빌립보서 2:15에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하신 말씀처럼 우리 마음이 흠이 없고 순전해야 합니다. 여기서 흠이 없다는 것은 모든 면에서 흠이 없는 그 자체를 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몸에 흉터 하나쯤은 가지고 있게 마련인데 만일 흉터가 전혀 없다면 자기 몸을 잘 돌보았다는 것이니 그만큼 온유한 성품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체뿐만 아니라 성격도 마찬가지여서 만일 '저 사람은 참 좋은데 끊고 맺을 줄 모르는 게 흠이야'라는 등의 말을 듣는다면, 이는 바로 성격에 흠이 있다는 것이지요.
성경을 보면 사람에게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도 아무 흠이 없었던 사람이 있는데, 바로 다니엘 선지자입니다. 다니엘 6:4을 보면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다' 했지요. 그는 이방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처지에서도 왕이 지정한 음식 중에 하나님께서 금하신 우상의 제물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이러한 것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겠다는 뜻을 정하고 대신 채소와 물을 먹고 마셨습니다. 이처럼 다니엘은 소년 시절부터 하나님 앞에서 조금의 흠도 없이 행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장성하여 국사를 돌아볼 때에도 명철과 총명함으로 슬기롭게 행했으며, 마음이 민첩하여 왕에게도 전국을 다스리는 총리로 세우기에 합당히 여김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이를 시기하는 무리들이 다니엘에 대하여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아무런 틈이나 허물을 찾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번에는 "순전"에 대해 살펴보지요. '순전'의 사전적 의미는 "순수하고 완전함"인데 영적으로는 "온유함을 행함으로 나타내 보이는 것"을 뜻하며 흠이 없으면서 또한 옳은 것에 대해 완전히 행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처럼 순전한 사람은 그 행함에 덕이 있으므로 설령 해로운 일을 만날지라도 그것을 악으로 갚지 아니하고 오히려 선으로 생각하면서 마음에 수용하여 모든 면에서 스스로 삼가 지켜 행합니다. 또한 험한 말이나 악한 행동은 물론 악한 생각조차도 아니하며 오직 밝은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성경상에서 순전했던 사람의 예로는, 구약 성경에 나오는 욥을 들 수 있습니다. 욥기 1:1을 보면 욥에 대해 이르기를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말씀했습니다. 또한 욥은 그 소유가 많아서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사람으로서, 주위 사람들에게도 많은 선행을 베풀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욥 29:12, 31:18). 단지 물질이 많아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과 더불어 함께하며 베풀 줄 아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큰자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욥에게 큰 시험이 찾아왔습니다. 욥의 순전한 행함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만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욥의 속 중심까지 완전케 하시기 위해 시험을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욥에게 시험이 시작되자 한마디로 정신 차릴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시험들이 다가왔습니다. 바로 자신의 몸을 제외한 모든 소유와 자녀들을 순식간에 잃게 되었지요.
이때 욥은 결코 어리석은 말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고백함으로 자신의 순전을 굳게 지켰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욥에게 생명을 위협하는 시험이 찾아옵니다. 그의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악창이 났던 것이지요. 욥이 비참한 모습으로 재 가운데 앉아서 기와 조각으로 몸을 긁고 있을 때, 그의 아내가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조롱하기까지 합니다. 이때에도 욥은 오히려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며 타이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으면 재앙도 겸하여 받아야 한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바로 욥이 진리를 잘 알지 못하고 했던 말이지만, 욥은 하나님께 대해 결코 입술로 범죄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물론 그 후로 여전히 절망적인 상황이 계속되자, 욥의 마음속 깊이 숨겨져 있던 악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하나님께서는 이런 그를 연단하셔서 더욱 온전케 하셨습니다.
오늘날처럼 죄악이 관영한 세상 속에서 우리에게 이런 시험이 왔을 때 욥처럼 순전을 굳게 지키며 입술로 범죄하지 않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우리가 욥처럼 말과 행실에 순전함을 지킨다면 원망과 시비할 일은 당연히 없어질 뿐만 아니라, 그들 가운데 빛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빛의 자녀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2) 어그러지지 않고 거스리지 않는 마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어그러졌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의 기본적인 틀에서 빗나간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교만, 자랑, 다투고 들레는 것, 혈기내는 것 등이 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의 기본적인 틀에서 이탈된 것으로, 이를 가리켜 "어그러졌다"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오늘날 매스컴에 보도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통해서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이 얼마나 어그러져 있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주변에서 사용하는 말만 보아도 저속하고 듣기 민망한 말들이 너무 많지요. 하나님께서 은혜 주셔서 만들게 하신 언어는 우리가 서로 아름답게 교통함을 이루게 하기 위함인데, 이와 같은 하나님의 근본 의도에 많이 빗나가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거스린다는 것은 바로 자기 위치를 떠나 벗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섬기지 못하고 순종치 아니하거나 자녀가 부모에게 불순종하고 거역하는 것입니다. 또한 부모는 부모답게, 자녀는 자녀답게 행해야 할 텐데 이런 도리를 저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부모에 대한 부양 의무를 중요하게 여겨왔지만 오늘날은 병든 부모를 돌보지 않거나 경제적인 이유로 부모를 학대하기까지 하는 참으로 자기의 본분과 위치에서 떠나 부모를 거스리는 차원을 넘어 버린 세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2.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히라"는 말씀의 의미와 그 방법
본문 빌립보서 2:15-16을 보면 이처럼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히라" 하십니다. 그럴 때 우리가 주 안에서 이루는 모든 달음질과 수고가 헛되지 않게 되고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것이 있게 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생명의 말씀을 밝힌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어두움 가운데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비춰 줌으로 그로 하여금 빛으로 나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을 전도해서 성령을 받게 하기까지는 많은 수고와 인내가 필요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도한 사람이 어떤 문제에 부딪혀서 하나님을 떠나간다면 지금까지 한 일이 모두 헛된 일이 되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생명의 말씀을 밝혀 주어야 하는데, 과연 어떻게 밝혀 줄 수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인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밝혀서 어떤 문제에 부딪혀도 기뻐하고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하며 또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을 밝혀서 기도하여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또한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밝혀 줌으로 모든 것을 용납하면서 천국에 가기까지 승리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니, 이렇게 되면 그 수고가 헛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가정에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것일까요? 예를 들어,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있을 때 그중에 믿음 있는 사람이 "세상 방법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깁시다" 하며 하나님의 살아 계신 증거들을 간증하고 가족에게 기도를 하게 하고 믿음을 심어 주었다면 바로 이것이 생명의 말씀을 밝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행할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료받게 되니 가족의 믿음이 자라게 될 뿐 아니라, 주위의 일가친척이나 이웃들까지 믿게 되는 좋은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3. 흠 없고 순전한 모습으로 변화되어 생명의 말씀을 밝힌 사도 바울
본문 빌립보서 2:17-18을 보면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말씀했습니다. 이는 주 안에서 자신의 수고가 헛되지 않게 하여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것이 있게 하는 차원을 넘어, 최고의 헌신을 고백하는 것으로 곧 무익한 종의 마음을 가진 고백이지요.
이는 사도 바울의 고백으로 고린도후서 11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참으로 넘치도록 수고한 내용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모든 고난을 전혀 개의치 아니하고 오히려 모든 교회를 위해 염려하는 마음뿐이었으니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아 하나님의 나라를 전 세계로 확장시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뛰어난 지식이나 가문 등이 있었지만, 자신은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요, 사도라 칭함받기에 감당치 못할 사람이라고 낮춰 고백하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도 바울이었기에 그가 가는 길이 엄청난 가시밭길이요, 종국에는 참수형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고백하였던 것입니다.
주님을 만난 이후로 그의 삶 전체가 오직 생명의 말씀을 밝혀 달음질하며 달려온 길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는 많은 수고와 고생을 했지만 장차 그에게 주어질 하늘의 상급은 말할 수 없을 만큼 큰 것이었습니다(딤후 4:7-8).
그러므로 오늘 증거된 말씀이 은혜와 능력이 되어 참으로 생명과 빛으로 나타나 모든 삶 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5-1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