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아름다움과 부와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고가의 옷을 입으며 만족해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성도는 이러한 모습이 조금도 부럽지 않지요. 잠시 잠깐인 이 땅의 삶보다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특별히 입으라 하신 옷이 있는데 바로 빛의 갑옷입니다. 빛의 갑옷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광의 광채를 두른 너무나 아름다운 옷으로, 바로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으로 짜인 옷이지요.
그러면 빛의 갑옷을 입으려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며, 빛의 갑옷을 입은 사람이 누리는 축복은 과연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성도들의 자세
성경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성경의 첫장을 열면 천지만물이 어떻게 생겨났는지에 대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천지를 조성하시고 그 안에 만물을 이루시며, 또한 사람을 살게 하셨을까요? 이는 수많은 사람들을 수고하여 경작하신 후에 하나님의 뜻에 합한 참자녀들을 찾아 천국에서 함께 영원히 사랑을 나누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알곡된 성도들을 언제 추수하시는 것일까요? 사도행전 1:11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말씀하셨으니 주님께서 공중 재림하실 때가 바로 추수 때이지요.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천국에 우리가 거할 처소를 예비하시고 때가 이르면 알곡된 성도들을 추수하고자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따라서 본문을 보면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말씀하시며 항상 깨어 빛 가운데 거하며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고 기다려야 할 것을 권면하시는 것입니다.
2. 항상 깨어 빛 가운데 거하려면
항상 깨어 있다는 것은 어떠한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이어지는 본문을 보면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말씀하셨으니 이것이 바로 깨어 있는 것이요,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한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잠언 4:23을 보면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말씀했고 잠언 10:19에는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교훈하셨으며, 베드로전서 1:15에는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권면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의 마음과 입술, 행실 등이 사람으로서의 마땅한 도리와 자신의 본분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 바로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방탕과 술 취함, 음란과 호색, 쟁투와 시기 등 여러 가지 어두움의 일들을 벗어 버리는 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에 선이 임한 만큼 성령의 소욕을 좇게 되지만 악이 있는 사람은 그만큼 비진리를 좇아 행하므로 범사에 다툼이 일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이러한 어두움의 일들에 대해 잠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먼저, 방탕이란 무절제하고 방종한 생활로 정돈되지 못한 삶을 말합니다. 사람은 본능대로 행동하는 동물과 달리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가 있습니다. 이러한 도리를 지키는 것이 단정한 삶이라면 자신의 욕망을 좇아 원하는 것을 취하려고 정돈된 삶을 저버리는 것이 방탕입니다. 색욕을 좇아 음란한 생활을 추구하는 것이나 술에 취해 살아가는 등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들이 모두 여기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술 취함 또한 하나님께서 금하신 일입니다. 믿는다 하는 사람들 중에도 혹자는 취하지만 않으면 된다고 합리화하면서 술을 마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에베소서 5:18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말씀대로 오직 성령의 충만함 속에 깨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호색과 음란이 있는데, 이는 사람이 지켜야 할 선을 넘어 무절제하게 음욕을 좇아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동성연애나 동물과 비정상적인 관계를 맺는 수간(獸姦) 등이 여기에 포함되는데, 성경에는 이런 사람들을 반드시 죽이라고 명하셨습니다. 또한 음란의 사전적 의미는 "음탕하고 난잡함"이라고 나와 있는데, 이런 일들은 세상 도덕이나 윤리상으로도 있을 수 없는 행동들입니다.
이러한 방탕과 술 취함과 음란, 호색 등이 정욕을 좇아 행하는 어두움의 일이라면 쟁투와 시기 등은 물질이나 명예 등을 얻고자 하는 욕심을 좇아 나오는 어두움의 일들이지요. 야고보서 4:1-2을 보면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라고 말씀했습니다. 또한 자신이 남보다 못하다거나 상대가 자신보다 나을 때 생기는 시기도 이와 같은 맥락이지요.
이처럼 어두움의 일들을 행하는 사람은 단정한 마음을 가질 수 없고 말과 행실도 단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 신속히 어두움의 일들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하겠습니다.
3. 빛의 갑옷을 입으려면
빛의 갑옷을 입기 위해서는 정욕을 좇아 육신의 일을 도모하려는 속성을 모두 벗어 버리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시니(요 1:14) 말씀 자체가 되시므로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 66권 말씀을 배우는 대로 지켜 행해야 합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말씀의 빛으로 옷을 입으면 이전에 정욕을 좇아 행하던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않게 됩니다. 여기서 빛의 갑옷을 입는다는 말은 단순히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일반적인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본적인 신앙의 차원을 넘어서 생명을 걸고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있는 영적인 장수의 수준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우상 앞에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는 말씀(신 5:8-9)으로 옷을 입었기에 풀무불에 던져질 위협 앞에서도 결코 타협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빛의 갑옷을 입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범사에 지킴을 받으며 진리로 승리해 나갈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6:12을 보면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영적인 전투 속에 살아가고 있는데,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라는 말씀같이 원수 마귀 사단은 한 영혼이라도 더 사망으로 이끌기 위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이같이 치열한 영계의 전투에서 우리가 항상 승리하기 위해서는 오직 빛 가운데 거해야 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4. 빛의 갑옷을 입은 사람들의 행함
먼저, 빛의 갑옷을 입은 사람들은 갈라디아서 5:24 말씀과 같이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의지도 감정도 오직 하나님께 맡겨 진리대로만 행하는 사람들이지요. 구약성경 에스더서에 나오는 에스더는 민족을 구하기 위해 두려움과 자기 유익을 구하고자 하는 욕심을 끊고 금식하며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행함으로 결국 민족을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다음으로, 빛의 갑옷을 입은 사람에게는 요한계시록 2:10의 말씀이 임해 있습니다. 즉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는 말씀이 임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도 바울은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진리를 위해서는 어떠한 어려움을 당한다 해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이러한 마음이 사도 바울에게는 빛의 갑옷으로 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초대교회 당시 예수 믿는 사람을 열심으로 핍박했던 사도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한 번 주님을 만나고 그 음성을 들은 이후 돌변하여 복음을 전하기 위해 생명을 다하였습니다. 때로는 태장으로 맞고 돌에 맞으며 강도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굶주림에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또 매를 맞고 감옥에 들어갔어도 주님을 증거했지요. 영원한 하늘나라에서 받게 될 상급을 생각하며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은 마음이 사도 바울의 빛의 갑옷이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빛의 갑옷을 입은 사람은 원수를 사랑하며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마음 중심에서부터 원수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자체가 최고의 선으로, 온전히 빛에 거한 것이니 어두움의 세력이 감히 만지지도 못합니다.
우리가 이런 빛의 갑옷을 입고 영적 장수들이 되면 주님께서 이 땅에서 행하신 것처럼 명철을 통해 바른 길로 나가며, 사단의 회를 깨뜨릴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이 임하는 것입니다.
5. 빛의 갑옷을 입어 축복받은 믿음의 선진들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은 아브라함은 일국의 왕까지 그 앞에 머리를 숙일 정도로 온전한 빛의 갑옷을 입었습니다. 또한 선한 도리를 좇기를 즐거워하므로 빛의 갑옷을 입었던 룻은 이방 여인으로 예수님의 계보에 오르는 축복을 받았지요. 그런가 하면 다니엘은 굶주린 사자가 감히 해칠 수 없었고, 다니엘의 세 친구는 극렬히 타는 풀무불에서 머리털 하나 그슬리지 않고 건짐받았지요. 또한 불의와 타협지 않는 빛의 갑옷을 입은 요셉은 결국 왕 다음 가는 권세를 얻게 되었습니다.
바로 시편 91:14에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정녕 하나님을 알아 그분의 뜻을 좇아 행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우리를 높여 주실 것입니다. 또한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시 91:15) 말씀하신 대로 설령 시험과 환난이 왔다 해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여 주시고 지키시니 오히려 영화롭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 어느 곳에서라도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여 온전히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축복과 보호하심을 받으며 이 땅의 모든 싸움이 마치는 날까지 오직 하나님께 영광만 돌리는 복된 삶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5-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