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12:2에 보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하셨습니다. 오늘날 세상은 죄악이 관영하여 너무나 세찬 육의 흐름을 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결코 이 세대를 좇아 육의 흐름을 타서는 안 되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거룩하게 구별되어 영의 흐름을 타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그 뜻대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증거되는 "선(善)"의 말씀을 통해, 정녕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 밝히 분별하고 더욱 힘써서 선을 행하심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신속히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갈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더 많은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도 마음껏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1. 온전한 선의 기준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
우리가 영의 흐름을 타기 위해서는 매사에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그 뜻 가운데 행해 나가면 됩니다. 그런데 어느 것이 선인지 아닌지를 분별하기 위해서는 선의 기준이 있어야 하지요. 누가복음 18:18-19을 보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향해 "선한 선생님이여"라고 부르자 예수님께서는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바로 하나님만이 온전히 선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선의 기준이라는 말씀이지요.
물론 예수님과 성령님도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므로 주님과 성령님의 마음도 선 자체이십니다. 그런데 선 자체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다" 하신 것은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모르고 피조물인 사람으로 여겼기 때문에 피조물로서는 결코 스스로 온전한 선에 이를 수 없음을 깨우쳐 주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아무 죄도 없으시지만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상태입니다. 십자가에서 구속의 사업을 끝내시기 전까지는 인류의 죄를 대신 지셔야 하는 화목제물의 입장이기에 스스로 선하다 말씀하시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땅의 사명을 다 감당하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후 구세주가 되셨을 때에는 주님의 선도 하나님의 선과 온전히 하나라는 사실입니다. 또한 성령님의 마음도 온전한 선이시기에 성령을 선물로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온전히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하면 누구나 온전한 선의 마음을 가질 수가 있는 것이지요.
성도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선과 하나님께서 보시는 선의 기준은 전혀 다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선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착하다, 좋다' 혹은 '사람의 좋고 나쁨과 마땅하고 마땅하지 않음을 가리는 일'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막연한 기준을, 다시 각자의 기준에 맞춰서 '양심'이라는 틀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양심이라는 기준에 의해 어떤 것이 '선하다' '선하지 않다' 말하지요. 하지만 사람의 양심은 결코 온전한 선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양심'은 '진리와 비진리, 즉 하얀 마음과 검은 마음이 서로 혼합된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태어나 자라면서 자기 나름대로 진리와 비진리를 섞어서 "진리는 이것이다"라고 자신의 가치 판단 기준을 만들어 내지요.
따라서 양심에는 비진리도 섞여 있으며 지역마다, 혹은 시대마다 달라집니다. 또한 같은 시대, 같은 곳에 산다 해도 사람마다 양심이 다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환경, 어떤 부모, 어떤 스승의 영향을 받았느냐에 따라 서로 달라지지요. 그러니 '양심'은 절대적인 선의 기준이 될 수가 없으며 오직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절대적인 선, 온전한 선의 기준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선의 기준으로 삼는 양심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선의 기준은 매우 차이가 나는 것을 알 수가 있지요. 간단한 예를 들면, 세상에서는 원수를 갚는 것을 의롭게 여기는데 하나님께서는 원수 갚는 것을 악이라 하시고 용서하는 것이 선이라 하십니다(마 5:44, 롬 12:20). 따라서 우리는 온전한 선의 기준이요, 선 자체이신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담긴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듣고 배워야 합니다. 또한 배운 것을 그대로 행함으로 마음에 일구어서 온전한 선, 참된 선에 이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지금부터 온전한 선에 이르는 과정을 크게 네 단계로 나누어 말씀드리겠습니다.
2. 온전한 선에 이르는 단계
1) 악으로 대항치 않고 감정을 눌러 참는 선의 1단계
선의 1단계는 악으로 나오는 상대에 대해 마음에는 좋지 않은 감정이 있다 할지라도 함께 악으로 대응하지 않는 단계입니다. 예를 들어 누가 여러분을 욕하고 때리는데 같이 욕하고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잠잠히 참았다고 합시다. 속으로는 억울하고 속상하여 마음이 불편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에 또는 나름대로 갖추어진 교양을 지키기 위해 감정을 꾹 눌러 참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참으로 선하고 온유해 보이므로 세상에서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이다." 인정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이를 선하다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외모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다 해도 그 마음에 여전히 악이 있다면 이는 결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의 차원에 들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악에 맞대응해 싸우는 사람보다는 낫지만 마음이 불편하면서도 눌러 참는다는 것은 여전히 그 속에 악이 있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세상 사람들보다 못하게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선으로 가득한 하나님의 말씀도 믿을 것이며 그 말씀대로 지켜 행하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잠언 8:13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말씀하셨으니 하나님을 정녕 믿는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악을 미워하게 되고 선을 좇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세상 사람들과 같이 악을 행하거나 심지어는 더욱 악을 행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믿지도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지요.
누가복음 18:8 후반절에 예수님께서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죄악이 관영하여 선을 찾아보기 어렵게 되고 진실한 믿음 가진 사람을 찾기도 어려울 것을 말씀하신 것이지요. 그런데 어둠이 짙으면 짙을수록 반대로 작은 불빛도 눈에 잘 띄는 법입니다. 이처럼 사랑이 식어지고 더욱 심한 악으로 치닫는 이 세대 가운데 참된 선을 행해 나간다면 어둔 세상의 빛이 되어 많은 사람들을 빛 가운데로 이끌며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2) 악을 악으로 갚지 않음은 물론 마음에 어떤 불편한 감정도 없는 선의 2단계
앞서 악을 악으로 대항치 않고 눌러 참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선하다 인정받을 수 없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은 바로 선의 2단계부터인데, 선의 2단계는 악을 악으로 갚지 않음은 물론, 마음에 어떤 불편한 감정도 없는 것입니다. 마음이 불편하고 속이 상해도 꾹꾹 눌러 참는 것이 아니요, 아예 미움도 불편함도 없고 상대에 대한 어떤 감정도 품지 않는 차원입니다. 이는 바로 마음에 악이 전혀 없는 상태로서 "영의 마음"이라 할 수 있지요. 바로 이 상태가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최소한의 선의 단계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는 과정이 있습니다. 악한 일을 당할 때 악으로 갚지는 않는다 해도 순간 마음에 감정이 일거나 요동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지요. 그러나 이럴 때도 이내 마음을 다스리며 선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해 나가다 보면 나중에는 순간의 감정조차도 일어나지 않는 선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동정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의 경우,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약혼녀가 자신과 동침하지도 않았는데 잉태한 것을 알게 됐을 때, 보통 사람이라면 간음했다고 판단함으로 율법을 좇아서 벌을 주려고 했을 수도 있고 그냥 참는다 해도 평안한 마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마 1:19) 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도 이처럼 선한 요셉에게 마리아가 잉태한 아기가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이심을 알려 주셨지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최소한 이 정도의 선은 마음에 이뤄야 합니다. 그래야 원수 마귀 사단이 여러분을 어찌하지 못하고 시험 환난도 당하지 않게 됩니다. 이에 대해 요한일서 5:18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말씀하셨지요. 원수 마귀 사단이 악을 부추기는 대로 순종하여 악으로 생각하고 악으로 말하며 악을 행하는 사람은 아무리 교회를 다닌다 해도 하나님께 지킴받을 수도 없고 축복받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이 최소한의 선만 이룬다 해도 그 선이 빛으로 역사되어 자연히 어둠이 물러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사실을 알기에 어찌하든 선으로 영으로 변화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다음 예를 통해 자신의 마음이 정녕 선한가를 점검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만일 여러분이 어떤 분야의 책임자로 있는데, 아랫사람의 실수나 잘못으로 인해 일이 잘못 되었다고 합시다. 이런 경우 많은 분들이 제 앞에서 "제 탓입니다. 제가 더 잘 돌아보지 못한 까닭입니다."라고 고백하며 회개합니다. 그런데 이후에 혹 마음 한편에 아랫사람을 탓하는 마음이 남아 있어서 그를 탓하고 책망했다면 이는 결코 선하다 할 수가 없습니다. 선한 사람은 억지가 아니라 진심으로 내 탓이라 고백하며 자신을 돌아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도 은혜를 주시며 다음에 또다시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지켜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살펴볼 것은 직접 자신과는 관련이 없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이 책망을 듣는 것을 보았을 때입니다. 여러분은 혹 '나는 상관없는 일이니 다행이다.' 하거나 자신도 책망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마음속으로 함께 책망하지 않았는지요? 그러나 정녕 마음이 선한 사람은 자신과 직접 관련된 일이 아니라 해도 '내가 도와줬더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하며 민망한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본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자신이 직접 관련된 일인 경우는 당연히 모든 상황을 진실하게 말할 것이며, 일의 결과에 대한 책임도 의당 자신이 져야 할 것으로 여길 것입니다. 이런 연유로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때론 어려움과 곤욕을 당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결국은 하나님께 사랑과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더욱 선을 사모함으로 모든 일을 선으로 생각하고 선한 마음을 가지며, 선으로 행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의 단계에 이르면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넘치게 받으므로 모든 시험 환난이 떠나며 무엇이나 응답받는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선을 더욱 사모하여 높은 차원의 선을 이룸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