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2과 선 (2) - 선의 단계 (2) -

읽을말씀 : 롬 12:2
외울말씀 : 롬 12:2

지난 시간에는 선의 1, 2단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보았습니다. 오늘은 악을 악으로 대응치는 않으나 마음의 감정이 있어 눌러 참는 1단계의 선, 마음에 어떠한 감정도 품지 않는 2단계의 선을 넘어선 3, 4단계의 선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선을 행하여 상대에게 감동을 주는 선의 3단계
   
   선의 3단계는 악으로 나오는 상대에게도 선을 행하여 오히려 감동을 줄 수 있는 선의 차원입니다. 마음에 악이 없기에 단지 악으로 맞서 대항치 않는 선의 2단계가 소극적인 선의 단계라면, 악으로 대항치 않는 데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을 선으로 갚는 선의 3단계는 적극적인 선의 단계라 할 수 있지요.
   이러한 선의 단계에 들어온 사람은 '온 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하지 말라", "버리라" 하신 대로 육을 온전히 벗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렸을 뿐만 아니라 "하라", "지키라" 하신 말씀도 온전히 임한 상태이지요.
   예를 들면, 마태복음 5:39-42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마음 중심에서부터 자연스럽게 행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바로 선의 3단계에 들어온 것이지요. 자기의 손익을 먼저 따지지 않으며 선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희생도 개의치 않습니다. 또한 자신에게 원수같이 대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어찌하면 그의 마음을 녹여 화평을 이룰까'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선의 깊은 단계에 들어갈수록 현실에서는 자신을 희생하고 수고해야 하는 일들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 마음이 선으로 채워진 사람은 선을 행하는 것 자체가 기쁘고 즐겁기 때문에 그것을 힘들다 여기지 않습니다. 또한 중요한 것은 영적으로는 죄가 없는 것이 힘이기 때문에 악을 버리고 선을 이룬 만큼 영적인 빛도 강해진다는 사실입니다.
   선의 2단계에만 들어가도 영적인 빛으로 인해 원수 마귀 사단이 역사하지 못하므로 시험 환난이나 핍박이 물러간다고 했고 또 시험이 온다 해도 그것을 선으로 통과하므로 오히려 축복을 받게 된다 했지요. 하물며 선의 3단계에 들어간다면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원수 마귀 사단의 궤계를 파할 수도 있게 됩니다. 예를 들면 악으로 나온 상대의 마음이 선한 입술의 말과 행함에 감동을 받아 악을 회개하고 돌이키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지요.
   이것은 영적으로 볼 때 선을 행하는 사람의 영적인 빛이 너무나 강하여 상대에게 역사하는 원수 마귀 사단이 물러가고 그 상대의 마음에 남아 있는 작은 선에까지 그 빛이 다다랐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따라서 선이란 단지 착해서 져주고 다 내어주는 연약한 것이 아니라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치고 그 궤계도 파해 버리는 큰 위력을 지녔다는 사실입니다.
   다니엘의 경우, 억울하게 모함을 받아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 모함한 사람들에게 어떤 감정도 원망도 없었습니다. 왕이 자신의 생명을 구해 주지 않았다 해서 서운해하지도 않았고 하나님의 역사로 사자 굴에서 살아났을 때도 오직 지극한 섬김의 말로 왕에게 고합니다.
   다니엘 6:21-22에 "다니엘이 왕에게 고하되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했지요.
   이처럼 선한 말을 들을 때 얼마나 왕의 심금을 울렸겠습니까. 다니엘 6:23에 "왕이 심히 기뻐서 명하여 다니엘을 굴에서 올리라 하매 그들이 다니엘을 굴에서 올린즉 그 몸이 조금도 상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자기 하나님을 의뢰함이었더라" 했습니다. 그리고 왕은 다니엘을 해치려 했던 사람들을 즉각 징벌하고 다니엘을 영화롭게 했을 뿐 아니라, 온 나라에 다니엘의 하나님을 존중하도록 조서를 내린 것을 봅니다.
   이러한 차원의 선에 이른 사람은 하나님께서 항상 동행해 주시고 무엇이든 마음에 품은 대로 응답해 주십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높은 차원의 선이 있습니다. 다니엘 역시 선의 3단계에 머무른 것이 아니라 가장 높은 차원의 선을 이루어 새예루살렘에서도 존귀한 자리에 이르렀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혹여 '나는 아직 악도 온전히 버리지 못했는데, 언제 선의 2단계를 거쳐서 3단계에 이르나?' 하고 생각하는 분이 계시는지요? 갈라디아서 6:9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말씀했으니 아직 악을 온전히 버리지 못했다 해도 열심히 선을 행하고자 노력한다면 악의 모양을 더욱 신속히 벗을 수 있습니다.
   물론 마음 자체가 선으로 일궈져서 선한 말과 선한 행실이 나오는 것과는 다르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최선을 다해 선을 쌓아 간다면 선이 나오게 됩니다. 사랑을 행하면 자연히 미움이 떠나는 것처럼, 선으로 생각하고 선으로 말하며 선을 행하려고 노력하면 그만큼 악도 떠나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는 일을 동시에 하되 악이 온전히 벗어졌다면 그때가 비로소 선의 2단계입니다. 그러니 선의 2단계에서도 때에 따라 상대에게 감동을 주는 선한 말이나 선한 행함이 나올 수는 있지요. 그런데 때론 상대에게 맞대응하지 않는 정도에서 그치는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는 악으로 나오는 상대의 마음을 평안케 할 수 있는 선한 말을 내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상대의 마음에 감동을 줄 수 있는 선한 섬김의 행함이 선의 2단계에서도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선의 3단계에서는 이런 선한 입술의 말과 선한 행함이 항상 나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나는 상대가 악으로 나와도 마음에 아무런 불편함이 없고 그에게 오히려 선한 말을 했으니 선의 3단계구나'라고 생각할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어떠한 상대에게도 항상 마음이 불편하지 않고 그를 선대했는가를 살펴보아야 하는 것이지요.
   
   2. 생명도 아낌없이 주는 선의 4단계
   
   가장 높은 차원의 선인 선의 4단계는 악으로 나오는 상대를 위해서 생명도 아낌없이 줄 수 있는 선의 차원입니다. 바로 독생자를 죄인들을 위한 화목 제물로 내어 주신 하나님의 선의 차원이요, 의인들이나 선인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죄인들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신 우리 주 예수님의 선의 차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피를 다 흘리며 죽으시기까지 받으신 고난은 사람으로서는 너무나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죄인이었던 우리들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더 나아가 참으로 선하고 깨끗한 마음을 지닌 하나님의 참자녀를 얻으시고자 고난의 길을 기쁨으로 가셨지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에도 이미 많은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군병들이 씌운 가시 면류관과 잔인한 채찍질로 인해 온몸은 피가 낭자한 상태였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키보다 크고 심히 무거운 나무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힘겹게 처형 장소인 골고다 언덕을 향해 나아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처럼 고난 받으시는 이유는 이사야 53:5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하신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이 받아야 하는 사망이라는 저주를 속량하시기 위해 나무에 달리셨을 뿐만 아니라, 흠 없는 보혈을 흘려 주시므로 죄인들의 모든 죄를 단번에 속하셨습니다. 또한 잔혹한 채찍에 맞으신 것도 우리가 모든 질병에서 나음을 입게 하려 하심이지요. 그 고통스런 가시관을 쓰신 것은 생각으로 짓는 모든 죄를 속하시기 위함이요, 양손과 양발에 못 박히신 것은 행함으로 짓는 모든 죄를 속하시기 위함입니다.
   이처럼 죄인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최후에는 생명까지 내어 주심으로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러한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달아 예수님께서 정녕 우리에게 원하셨던 바를 꼭 이뤄드려야 하겠습니다. 바로 주님을 본받아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자녀, 마음이 참으로 선하고 온전한 영의 자녀가 되는 것이지요.
   성경에는 예수님처럼 악으로 나오는 상대를 위해서 생명도 아낌없이 줄 수 있는 선의 4단계에 이른 분들이 나오는데 바로 모세 선지자를 들 수 있지요. 출애굽기 32:32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을 거듭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모세 선지자가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홍해를 마른 땅과 같이 걸어서 건너는 등의 많은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케 해 줬습니다. 그런데도 백성들은 늘 불평했고, 모세를 원망했으며 심지어는 모세를 돌로 치려고까지 했지요. 이런 백성들인데도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임할 상황이 되자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하여 그들의 죄를 사해 주시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입니다.
   신약 시대의 사도 바울도 모세와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였지요. 로마서 9:3에 보면 사도 바울은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했습니다.
   여기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들'이란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로서 그들은 당시 심히도 사도 바울을 핍박하고 훼방했던 사람들이지요. 심지어 유대인 가운데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 동맹한 자들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자신을 핍박하고 훼방하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사도 바울은 자신이 구원받지 못할지언정 그들은 구원받기를 원하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간구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엘리야, 에녹과 같은 분들도 최고의 선의 차원에 이르렀는데 이러한 차원에 이르면 원수 마귀 사단이 훼방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위로부터 권세와 권능도 받아 많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장차 천국의 가장 아름다운 처소인 새예루살렘에 거하게 되는 것은 물론, 하나님 보좌에 더 가까이 거하여 세세토록 큰 영화를 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새해에는 더욱 차원 높은 선을 사모하여 온전한 선의 단계로 신속히 들어오시기 바라며 마음껏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뿐 아니라 아름다운 새예루살렘에 입성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