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5과 선 (5) - 다윗 -

읽을말씀 : 삼상 26:23
외울말씀 : 삼상 26:23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였던 사무엘이 백성들의 요구에 의해 왕으로 세운 사람입니다. 그는 처음에는 겸손한 것 같았으나 왕이 되면서 점점 교만해져 결국에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사무엘을 통해 여러 차례 경고하셨지만, 이를 무시하고 계속 불순종해 나가자 결국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신 것입니다.
   다윗은 이새의 여덟 명의 아들 중 말째로서 들에서 양을 치는 목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의 지시를 받은 사무엘이 이새의 집에 찾아왔지요(삼상 16장). 사무엘 선지자는 외모가 뛰어난 다윗의 맏형인 엘리압을 주목하였으나 하나님께서는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며 이새의 아들 중 가장 어린 다윗을 왕으로 세우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목동 다윗이 이처럼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입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의 이름이 욕을 당할 때에 담대히 믿음으로 나아갔던 선(善)
   
   사무엘상 17장에는 이스라엘 군대가 이방 족속 블레셋과 엘라 골짜기에 대치한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블레셋 진영에 골리앗이란 장수가 있었는데, 그는 키가 3미터에 가까운 거인으로 놋 투구와 놋 단창, 약 57kg이나 되는 갑옷으로 무장한 대단한 용사였지요. 이러한 골리앗이 40일 동안 밤낮으로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며 큰소리를 치는데도 그들은 두려워 떨고만 있었습니다.
   이 광경을 본 다윗은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하며, 사울 왕에게 "주의 종이 가서 저 블레셋 사람과 싸우리이다"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맨몸으로 물맷돌 다섯 개만 들고 골리앗을 향해 나아가서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외치며 물맷돌을 던졌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이름이 욕을 당할 때에 담대히 믿음으로 나아가니 다윗의 물맷돌이 골리앗의 이마에 적중하여 그대로 쓰러졌고 이스라엘 군대는 힘을 얻어 블레셋 군대를 진멸하고 승리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다윗은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했기에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당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쫓나니"(요일 4:18) 하신 말씀처럼 골리앗이 전혀 두렵지가 않았지요.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믿음의 행함을 선으로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의 부모님이 애매히 욕을 당하는 것을 보았을 때 잠잠히 있다면 이것이 선일까요? 이는 화평을 이루는 것도 아니며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성전을 어지럽히는 사람들에 대해 용납지 않으시고 과감하게 책망하셨습니다(막 11:15-17).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다윗처럼 분연히 일어나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선이 될 때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2. 자신의 생명을 해하려는 원수도 선대하되 감동을 주는 선(善)
   
   다윗과 사울이 전쟁터에서 돌아올 때 여인들이 환영하며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고 노래하니 사울의 시기심이 발동되었습니다. 그래서 악신으로 인해 고통받는 자신을 위해 수금을 타 주던 다윗에게 단창을 던져 죽이려 하기까지 했던 것입니다.
   또한 다윗을 죽이려고 전쟁터에 보내기도 했으며, 집요하게 다윗을 찾아다니며 잡아 죽이고자 했지요. 그런데 사무엘상 24장을 보면 오히려 다윗이 사울을 없앨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왔습니다. 다윗이 은신처로 숨어 있던 엔게디 광야의 한 동굴에 사울이 모르고 들어왔던 것입니다.
   그때에 다윗의 사람들은 사울을 죽일 것을 권고하지만 다윗은 사울의 겉옷자락만 가만히 베었습니다. 다윗은 이 일조차도 마음에 찔려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의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고백했지요. 그리고 자기 사람들에게도 "절대로 사울의 생명을 해치지 말라" 명했습니다.
   또한 사울과 멀리 떨어져 있어도 사울에게 지극히 겸비하고 선한 말로써 결코 왕을 해칠 마음이 없음을 나타내자 사울은 감동을 받아 눈물을 흘리며 군대를 철수하여 돌아갔습니다. 그런데도 사무엘상 26장을 보면 사울은 마음이 심히 악하여 또다시 다윗을 잡으려고 3천 명을 거느리는 등 대대적인 준비를 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사울의 일행이 길가에 진을 치고 잠을 자고 있을 때 이 사실을 알고 있던 다윗은 깊이 잠든 사울에게 다가갔습니다. 이때 다윗과 함께 갔던 아비새가 "하나님이 오늘날 당신의 원수를 당신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그러므로 청하오니 나로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청하였지요.
   이에 다윗은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 하고 멀찍이 가서 사울을 향해 "여호와께서 각 사람에게 그 의와 신실을 갚으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오늘날 왕을 내 손에 붙이셨으되 나는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치기를 원치 아니하였음이니이다" 하며 자신의 진심을 알렸지요. 이에 사울도 다시 한 번 감동을 받아 "내 아들 다윗아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네가 큰 일을 행하겠고 반드시 승리를 얻으리라" 말하고 다시 돌아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의 두 번째 선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바로 자신의 생명을 해하려는 원수에게도 선대하되, 그 마음에 감동을 주는 선한 고백을 했다는 점입니다. 도의상 한 번은 살려 보냈는데 상대가 다시 악으로 나올 때 또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왔다면 다윗처럼 변함없이 선대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다윗은 중심이 선했기에 선을 행하되 변함없이 행함으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온전히 이룰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자신이 사울을 이어 왕으로 기름부음 받았다 할지라도 '내가 왕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니까' 하며 자기 임의로 사울을 죽이고 왕이 되려 하지 않았지요. 중심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니 끝까지 하나님께서 이루시도록 온전히 맡겼던 것입니다.
   또한 다윗은 중심에서 사울이 잘되기를 원하는 마음이었기에 선한 말로 어떻게든 사울의 마음을 편안케 해 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사울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패한 후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다윗은 슬피 울며 금식하였고 사울을 장사 지내 준 길르앗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며 진심으로 축복해 주었습니다.
   
   3. 지적을 받을 때 즉시 회개하고 감사함으로 연단을 받는 선(善)
   
   이처럼 다윗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좇을 수 있는 중심이었지만, 당시는 성령시대가 아니었기에 깊은 본성 속의 악까지 버렸던 것은 아니지요. 그래서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 평안해졌을 때 다윗의 본성 속에 있던 악이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하 11-1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더 온전케 될 수 있도록 연단을 허락하셨는데 우리아의 아내를 취하고자 했을 때 막지 않으시고 내버려두셨던 것입니다. 다윗은 이를 은폐하기 위해 우리아를 전쟁터에 보내어 이방인의 손에 죽게 만들었지요.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나단 선지자를 통해 "어찌하여 네가 여호와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나 보기에 악을 행하였느뇨" 하시며 다윗을 호되게 책망하셨습니다.
   다윗은 즉시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고백합니다. 이에 나단은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 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하며 연단이 따를 것을 알려 주었고 이후 다윗은 참으로 혹독한 연단을 받지만 그 연단을 감사함으로 잘 받았습니다.
   이것이 다윗에게서 찾을 수 있는 세 번째 선의 분야입니다. 왕이라 할지라도 지적을 받을 때 즉시 회개했으며, 주어진 연단을 감사함으로 받았다는 점입니다. 신앙의 경륜이 쌓일수록 지적 받기를 즐겨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마음이 교만한 것이요, 중심이 선한 사람은 어린 소자가 지적을 한다 해도 그것이 진리라면 중심에서 겸비함으로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급히 왕궁을 빠져 나와 도망치던 중 시므이란 사람이 자신과 그 일행을 향해 돌을 던지며 저주할 때의 일입니다. 신하 중 한 명이 당장 시므이를 처치하겠다고 했으나 다윗은 이를 만류했지요(삼하 16:11-12). 다윗은 이처럼 연단이 왔을 때 누구를 탓하지 않고 연단을 통해 온전케 하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철저히 자신을 낮추며 감사함으로 연단을 받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중심이 선한 사람은 어려움이 오면 환경을 탓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먼저 돌아보면서 연단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욥이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하면서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고백을 했던 것처럼(욥 23:10) 감사의 고백을 하게 되지요.
   다윗처럼 중심이 선한 사람은 연단도 신속히 통과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도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참으로 혹독한 연단을 겪어야 했지만 선 가운데 잘 통과하니 진실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존귀한 자로서 세세토록 영화를 누릴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의 아름다운 선의 마음을 본받아 더욱 온전한 선을 이루시되 날마다 선한 것을 보고 듣기를 즐겨하며 선의 감동함 가운데 복된 삶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