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을 보면 아무리 큰 권능을 행하는 선지자가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함께 계신다 해도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은 아닙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마음이 선하여 진리를 갈구하는 사람들이라야 나아만 장군처럼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4:27에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문둥이가 있었으되 그중에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니라" 했습니다. 나아만의 행함이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비결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나아만 장군의 선은 과연 무엇일까요?
1. 복되고 선한 소식을 귀담아 들을 수 있는 겸손한 마음
나아만은 이스라엘과 인접한 나라 곧 아람의 군대장관으로서 문둥병에 걸려 있었습니다(왕하 5:1). 그러나 문둥병은 불치병이기에 아무리 좋은 약과 유명한 의사는 물론 자신이 섬기는 신을 의존해 보아도 치료를 받지 못했지요.
이때 이스라엘에서 포로로 잡아온 여자아이가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말했습니다. 결국 이 말은 나아만의 귀에도 들리게 되었고 나아만은 계집종의 말을 업신여기지 않았습니다. 왕 다음가는 권세를 지닌 지체 높은 신분이지만 하찮은 종의 말도 흘려듣지 않을 만큼 마음이 겸손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복되고 선한 소식을 들을 때에 전하는 사람이 누구든지 간에 그것을 귀담아 들을 수 있는 겸손한 마음을 하나님께서는 '선하다'고 인정하십니다. 만일 나아만의 마음이 강퍅하다면 "네가 무엇을 안다고 참견이야." 하며 그 말을 무시했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나오면 하나님께서 무엇이나 응답해 주십니다.' 하고 전도할 때 들은 척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지요. 더욱이 지위가 높고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일수록 어떻게든 세상에 의지해 보려고 하기 때문에 전도자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입니다.
2. 복된 소식을 듣고 믿음의 증거를 행함으로 온전히 나타내는 마음
나아만은 계집종이 알려 준 이스라엘의 선지자를 만나기 위해 종들을 시켜 '모셔 와라' 하거나 서신을 띄워 자신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을 부탁하지 않았고, 자신이 직접 선지자를 찾아 나섰습니다.
또한 열왕기하 5:5 후반절을 보면 '나아만이 곧 떠날 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의복 열 벌을 가지고 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 앞에 나아가는 데 있어서 심지 않고 거두길 바라거나 심은 것 이상을 바라는 요행의 마음이 아니라 정녕 응답받겠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예물을 준비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나아만은 병든 몸을 이끌고 정성껏 예물을 준비하여 직접 엘리사를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엘리사 선지자는 얼굴도 보이지 않은 채, 다만 사환을 시켜서 "요단강 물에 일곱 번 몸을 씻으면 문둥병이 나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나아만은 기분이 상하여 "내 생각에는 저가 내게로 나아와 서서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당처 위에 손을 흔들어 문둥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했지요. 단지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씻으면 낫는다고 하니 인간의 생각으로는 믿어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직은 자기적인 생각의 한계를 가지고 있었기에 엘리사 선지자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을 우습게 보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자기 나라로 돌아가 버리려고 했습니다.
이때 나아만의 종들이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말했지요(왕하 5:13). 종들이 나아만에게 아버지라 부르며 권면의 말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평소 그가 얼마나 선하고 겸비한 사람이었는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나아만은 종들의 말이라도 무시하지 않고 들을 줄 알았고 그것이 옳고 좋은 것이라면 받아들이는 넓고 큰마음을 지녔기에 이런 상황에서도 종들이 나아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권면의 말씀을 드릴 수 있었습니다. 결국 나아만은 종들의 권면을 듣고 이내 마음을 돌이켜 엘리사 선지자가 시키는 대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었지요.
영적으로 일곱은 '완전함'을 뜻하는 완전수이며 요단 강의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므로 '일곱 번 씻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나아만은 세 번, 네 번 씻어도 낫지 않자 중도에 포기해 버리고 만 것이 아니라,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여 일곱 번을 씻었고, 그 결과 문둥병을 치료받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좇되 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다 할지라도 선지자가 전하여 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온전히 행하니 하나님께서는 기뻐 받으시고 즉시로 문둥병을 고쳐 주셨습니다(왕하 5:14). 하나님의 사람을 믿고 신뢰하는 것을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으로 여기시며 선하다고 인정하시는 것입니다(대하 20:20).
3. 받은 바 은혜를 저버리지 않고 갚을 줄 아는 변함없는 중심
누가복음 17:17을 보면 예수님께서 열 사람의 문둥병자를 치료해 주셨는데 한 사람만이 와서 사례하자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 질병을 치료받기 원하거나,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고자 할 때는 '치료받으면 생명을 다해 충성하겠습니다.', '응답해 주시면 앞으로 어떻게 하겠습니다.' 하고 고백하지만 막상 치료받은 후에는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나아만은 받은 바 은혜를 저버리지 않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5:15에 "나아만이 모든 종자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 앞에 서서 가로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컨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했습니다. 치료받은 후에 엘리사 앞에 나와 감사의 표시를 하고, 즉시로 하나님만을 인정하고 섬기겠다는 다짐을 했던 것입니다(왕하 5:17).
이처럼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할 줄 알고 한 번 만난 하나님을 배신하지 않는 선한 중심을 지녔기에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이라 할지라도 나아만을 택하여 영광을 받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한 마음을 갖되 더욱 행함으로 온전케 이루어 아버지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모든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0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