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11과 선 (11) - 모세(1)-

읽을말씀 : 히 11:24 - 26
외울말씀 : 히 11:25

지금으로부터 약 3500년 전, 모세는 출애굽의 지도자로서 400년간이나 애굽의 노예로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였습니다. 이처럼 큰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명령에 절대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선한 중심을 지닌 모세를 택하여 믿음으로 순종할 수 있도록 연단하시고 역사적인 사명을 감당하도록 축복하신 것입니다.
   과연 모세는 마음 중심에 얼마나 지극한 선(善)을 지니고 있었기에 하나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는 출애굽의 지도자가 될 수 있었을까요?
   
   1.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고난받는 것을 택한 모세의 선(善)
   
   애굽이 노예로 부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장 심하게 학대할 때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백성보다 더욱 왕성하게 번식하고 창성해지자 애굽 왕은 이를 두려워하여 새로 태어나는 이스라엘의 사내아이들은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렸던 것입니다.
   모세도 이 명령에 따라 태어났을 때 죽임 당할 처지였으나 모세의 부모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믿음이 있었기에 임금을 두려워하지 않고 석 달간 모세를 숨겼습니다(히 11:23). 석 달이 지나 더 이상 숨길 수가 없게 되자 모세의 어미는 모세를 갈대 상자에 넣어 강물에 띄워 보냈지요.
   마침 애굽의 공주가 강에 목욕을 하러 나왔다가 상자에 담긴 모세를 발견하고 건져내게 되었습니다. 강변에서 떠내려가는 모세를 지켜보던 누이 미리암의 소개로 모세의 친어머니 요게벳이 유모가 되었고 모세는 공주의 양자로서 왕궁에서 길러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정확한 하나님의 역사로 모세는 생명을 건졌을 뿐만 아니라 친어머니의 신앙 안에서 양육되었지요.
   당시 애굽은 앞서가는 문명을 이룬 강대국이었기에 애굽의 왕자라면 그 권세가 참으로 대단했습니다. 모세가 왕궁에서 공주의 양아들로 머물러 있는 한 모세는 일평생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환경에서 자라는 모세의 마음에 항상 떠나지 않는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친어머니로부터 들은 하나님과 애굽 땅에서 고통받는 자기 민족에 대한 연민이 항상 그의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세는 애굽 사람이 히브리 동족을 때리는 것을 보고 의분이 나서 애굽 사람을 쳐 죽이고 말았습니다. 만일 모세가 자기 안일만 생각하는 사람이었다면 자기 동족이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볼 때 행여 자신에게도 영향이 있지 않을까 하여 모른 체하거나 그 자리를 피하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의 마음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했습니다. 바로 공주의 아들이라는 명예를 잃어버릴지언정 자기 동족이 고통당하는 것을 그냥 보고 지나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모세의 마음을 '선하다' 인정하시고 출애굽의 지도자로 택하셨습니다. 사람이 처음부터 가난하게 살았다면 어려운 처지가 되어도 비교적 견딜 힘이 있지만 부유하게 자란 사람이 궁핍함을 겪게 되면 정신적인 고통까지 더하여 극복하기가 쉽지 않지요. 더구나 사십 년이라는 긴 세월을 왕궁에서 왕자와 같은 신분으로 살아온 모세가 자신을 포기한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결단이 필요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이 일을 계기로 모세는 왕궁을 뛰쳐나와 광야로 갔습니다. 화려한 왕궁 대신 집도 없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는 신세가 되어 당장 먹을 끼니를 걱정해야 하며 언제 붙잡혀 목숨을 잃을 지 모르는 도망자의 몸으로 평생을 살아가야 하지만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하기 위해 고난의 길을 스스로 택한 것입니다.
   이러한 모세의 고난을 히브리서 11장에는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해 받는 능욕과 동일한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26절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한 것입니다.
   
   2. 연단 중에 하나님을 믿으며 모든 것을 중심에서 감사했던 모세의 선(善)
   
   모세는 바로의 궁정을 나와 미디안 광야에서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딸과 결혼하여 장인의 양무리를 치면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어느 정도 생활이 정착되고 자신을 돌아볼 여유가 생기면서 비로소 마음의 연단이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자신은 가진 자 같았으나 막상 현실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음을 인식하자 공허함과 적막함이 밀려오기 시작했고 인생의 허무함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가질 수 없다는 사실들을 뼈저리게 깨달았고 왕궁에 있을 때와 달리 자기 임의대로 되어지는 것이 없음으로 인해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는 마음이 드니 철저히 자신을 낮출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서 모세는 슬퍼하거나 절망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은 분명히 계신다' 하며 하나님이 계신 것에 대한 믿음을 확고하게 했으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힘이 아니면 내가 갖고자 해도 가질 수가 없고 내가 움직이고자 해도 임의로 움직일 수가 없다.'는 사실을 철저히 깨우쳤습니다. 그러면서 모세는 마음 중심에서 감사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호흡할 수 있음도 감사했고 먹을 양식이 있음에도 감사했으며 때론 찬 이슬을 맞으며 광야에서 잠깐 눈을 붙인다 할지라도 쉼을 가질 수 있음에 감사했습니다. 또한 눈앞에 펼쳐진 땅을 보며 그 땅을 바라볼 수 있음도 감사요, 자신의 몸을 스스로 움직일 수 있음도 감사했으며 자신이 무엇을 가지고 있다하여 그것을 자기 것이라 여기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모세는 인생의 허무함을 깨닫는 순간부터 오히려 하나님께 대한 깊은 감사가 나왔던 것입니다. 자신이 머무는 곳에 감사했고 정녕 자신이 스스로 움직여 갈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자신이 취한다 하여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님을 항상 마음 중심으로부터 고백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출애굽을 위해 모세를 지도자로 부르실 때에 심히 자신이 없는 모습으로 주저하였던 것입니다. "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주께서 주의 종에게 명하신 후에도 그러하니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니이다.",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고백했습니다.
   모세는 광야에서 40년의 연단 세월을 살면서 자신의 가치 없음과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처절하게 느끼고 깨달았던 것입니다. 자기 의분에 못 이겨 사람을 쳐서 죽였던 모세가 이처럼 낮아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연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마음 깊이에서 믿었기에 이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세로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모세가 연단 중에 오히려 하나님을 믿으며 모든 것을 중심에서 감사했던 것을 하나님께서는 선하다고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혹여 연단을 받을 때 '나는 왜 이 같은 연단을 받나? 내 연단이 심히도 혹독하니 어떻게 이 연단을 견뎌 낼꼬?'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그나마 가졌던 믿음마저 흔들리고 낙심하여 절망하지 않는지요.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며 아무것도 아닌 자와 같은 모습으로 살아간 시간은 무려 40년이나 되었습니다. 누가 자신을 알아 주지 않는다 하여 힘들어하지 않았고 오직 철저히 낮아진 마음으로 주어진 모든 상황과 환경에 대해 중심에서 우러나는 감사만 했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철저히 자기가 비워졌을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부르셨고, 큰 사명을 주셨습니다. 여러분 중에는 아직 하나님 보시기에 그릇 준비가 안 되었기에 계속하여 연단을 허락하시는 것인데도 감사함으로 받지 못하지는 않는지요.
   잠언 17:3에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시느니라" 하셨으니 연단을 받을 때에 마음 중심에서 감사했던 모세의 선을 기억하여 철저히 자신을 낮추며 모든 것에 오직 감사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마지막 때에 하나님 앞에 귀히 쓰임을 받는 좋은 그릇이 되어 크게 영광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