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10과 선 (10) - 사도 바울(2)-

읽을말씀 : 롬 9:1-3
외울말씀 : 롬 9:3

지난 주에 살펴본 대로 사도 바울이 하나님을 감동시킨 선의 분야는 한번 받은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개치 않았다는 점이었습니다. 심한 고난과 핍박을 받으면 받을수록 오히려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의 향은 더욱 짙은 농도로 하나님께 올려졌던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도 바울의 선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자신을 발견하는 복된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1. 사도 바울의 선(善)
   
   1) 자신을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서도 생명을 줄 수 있는 사랑이 있었습니다
   주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날이 갈수록 주님처럼 영혼들도 사랑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를 지신 이유가 오직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마음 깊이 깨우치기 때문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계시면서도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또한 "내가 목마르다" 말씀하시며 영혼 구원에 대한 간절한 심정을 나타내 주셨지요.
   그러므로 정녕 주님을 사랑한다면 죄로 인해 사망을 향해 가는 영혼들을 긍휼과 사랑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영혼 사랑이 얼마나 컸던지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1:8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고백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극심한 고통을 당하시면서도 오히려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셨던 것처럼 사도 바울 역시 모진 핍박과 환난을 당할 때에도 자신에 대한 염려와 근심이 아니라 오직 교회와 성도들을 염려하며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고후 11:28-29). 또한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려 행할 때에 사도 바울은 얼마나 애통했던지요. 빌립보서 3:18에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영혼을 사랑했기에 각처의 교회를 다니면서 어찌하든지 성도들이 복음의 진리 안에 살도록 밤낮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기를 쉬지 않았는데 복음을 받아들인 성도들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복음을 배척하고 핍박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9:1-3을 보면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고백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이란 단지 사도 바울의 육적인 일가친척을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 당시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도를 전하는 사도 바울을 심히도 싫어하고 훼방했던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사도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기로 동맹한 사람들이 40여 명이나 되었지요(행 23:12-13). 그런데도 사도 바울은 이들이 구원받는 대신 자신이 저주를 받아야 한다면 차라리 그렇게 되길 원한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악으로 나오는 상대를 위해 자신의 생명도 줄 수 있는 최고의 선을 이루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진다'는 것은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의미하는데 누구보다 지옥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사도 바울이 그들을 구원할 수만 있다면 자신이 대신 지옥에 가기를 원한다고 했으니 그의 영혼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2) 큰 권능과 깊은 계시를 받았다 해도 모든 영광을 온전히 주님께 돌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의 믿음을 인정하시고 큰 권능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태어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이 일어나 걷는가 하면 자신이 독사에게 물렸어도 아무런 해를 받지 않았던 것입니다. 심지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는 희한한 능이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놀라운 권능을 나타내면서도 결코 마음이 높아지지 않았고 모든 영광을 오직 주님께 돌렸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5:10에도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고백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겸손한 마음을 지녔고 날마다 죽어지는 삶을 통해 깨끗한 마음을 이뤘기에 하나님과 밝히 교통하며 하늘의 신령한 것을 많이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도 바울로 하여금 천국도 보게 해 주시고 하늘에서 얻게 될 상급도 알려 주신 것입니다. 결국 사도 바울은 영의 것에 대한 사모함이 더해졌으며 깊은 계시를 받아 하나님과 주님과 성령님에 대해, 또한 천국과 멜기세덱에 대해서도 밝히 알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알면 알수록 하나님에 대한 사랑, 주님에 대한 사랑도 날로 더욱 승하게 되었고 깊은 영의 말씀들을 마음에 잘 간직하며 받을 만한 사람에게는 들려 줌으로 주님을 더 사랑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분야에 절제할 능이 있었으므로 받지 못하고 이해 못할 사람들에게는 들려 주지 않았습니다.
   
   2. 악의 모양이 있는 사람들의 경우
   
   악의 모양이 있는 사람들은 어떤 깨달음이 오거나 환상을 보고 비밀한 말씀을 들으면 자신을 들레는 수단으로 이용하게 됩니다. 그러나 마음이 선한 사람들은 기도 중에 영의 깨달음이 왔다면 그것을 마음에 잘 간직하며 먼저 자신의 마음에 적용하려 합니다. 영안이 열려 무엇을 보았다 할지라도 하나님께 감사하며 더 영으로 정진해 들어가려 하지 자신을 들레는 데 사용하지 않습니다. 또 깊고 비밀한 영의 말씀을 듣게 되었다면 주신 말씀을 붙들고 어찌하든 자신이 변화되고자 노력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선한 마음을 지녔고 오래 참음과 절제의 열매가 맺혀 있었기에 어느 누구에게도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이와 같은 깊은 계시를 받으며 하나님과 깊은 교통을 이룬다" 하지 않았습니다. 입술의 말 한 마디라 할지라도 받지 못할 사람에게는 주지 아니하였고 능히 말할 수 있는 것이라도 혹여 실족 당할 사람이 있을까 하여 절제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12:1에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하면서 고백하였습니다. 이어지는 고린도후서 12:5에도 "내가 이런 사람을 위하여 자랑하겠으나 나를 위하여는 약한 것들 외에 자랑치 아니하리라" 했습니다. 천국에 대해 알려 줌으로 성도들에게 소망을 더해 주길 원하되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자 하는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사도 바울은 스스로 영의 것을 터득할 수 없으며 오직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모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성령에 대한 마음이 각별했습니다. 내 자신이 기도하여 얻은 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안에 계신 성령의 역사로 된 것임을 늘 중심에서 인정했던 것입니다.
   혹여 여러분 중에는 "내가 기도해 보니 이렇더라" "내 마음에는 그렇게 주관되지 않는다."라는 식으로 너무나 쉽게 말하지 않는지요? 물론 성령의 음성과 주관과 인도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당연히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 마치 자신은 특별히 영으로 뛰어난 것처럼 들레고자 하는 마음에서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목자에게 기도받은 손수건을 얹고 기도하여 환자가 치료받은 것을 간증할 때에도 온전히 영광을 하나님께 돌렸는지, 아니면 자신을 조금이라도 들레고자 하는 마음이 있지는 않았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마음이 선한 사람은 결코 하나님의 영광을 자신이 가로채지 않으며 온전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진정 자신의 능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중심에서 깨닫고 인정하기에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 있으며 더욱 담대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한 사람이 육으로는 연약해 보일 수 있어도 영으로는 오히려 강하고 담대하고 능력 있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의 의를 철저히 깨뜨린 후에는 아무리 크고 놀라운 역사를 베풀어도 늘 중심에서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되, 하나님의 능력으로 할 수 있었나이다." 고백했습니다. 그러니 큰 권능을 행할수록 자신은 더 낮아지고 하나님의 영광은 더 커져만 갔던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선한 중심을 찾아 은사도 주시고 권능도 주셔서 쓰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1:1에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고백한 것처럼 사도 바울의 선을 온전히 본받아 참으로 권능 있는 일꾼으로서 마지막 때 하나님께 크게 영광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03-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