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15과 부활의 소망과 확신

읽을말씀 : 요 11:25-26, 고전 15:12-22
외울말씀 : 고전 15:20

1. 부활의 소망이신 예수 그리스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래 살기 원하지만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중국의 진시황도 불로초를 얻으려고 했지만 결국 죽음을 보았고, 세상에서 성인이라 불리우는 공자나 석가, 소크라테스도 결국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만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고 지금은 부활 승천하여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시며 주를 믿는 모든 이들에게 동일한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누구에게나 영원히 사는 길이 열렸고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더구나 기독교 신앙에서의 부활은 단순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는 차원이 아니라, 이 땅에서 불구의 몸을 가졌던 경우 또는 죽은 지 오래되어 형체도 남지 않은 경우라 해도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온전한 부활체로 변화되어 영원히 살면서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 같은 부활의 소망이 있기에 허다한 믿음의 선진들이 이 땅의 모든 고난을 기쁨으로 이겨낼 수 있었으며 어떠한 일도 항상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2. 누구나 믿을 수 있는 부활의 증거
   
   그러면 우리 주변에서 부활을 믿을 수 있는 구체적인 증거는 무엇일까요?
   먼저, 우주 만물과 자연에 베푸신 하나님의 섭리만 보아도 부활이 참이요, 사실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롬 1:20). 예를 들어, 번데기가 변하여 날아다니는 나비가 되는가 하면, 꿈틀대던 굼벵이가 어느새 하늘을 나는 매미가 되고, 구더기가 변하여 파리가 되기도 합니다. 또한 겨울의 메마른 대지는 봄이 되면 파릇파릇한 초목의 생명으로 뒤덮이며,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지면 썩어 없어지는 것 같지만 곧 새싹이 나와 많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이처럼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부활의 소망은 성경상의 여러 가지 사건들을 접할 때 더욱 구체화될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2:11을 보면 선지자 엘리야는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불수레와 불말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17장을 보면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이 예수님과 함께 높은 산에 올라갔을 때의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신령한 모습으로 변형되어 하늘에서 내려온 모세와 엘리야를 만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님과 대화하고 있는 모세와 엘리야 또한 흰옷을 입고 해같이 빛나는 신령한 모습이라는 것을 쉽게 추측할 수 있으며 이는 장차 우리가 부활할 때의 모습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믿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 이전이나 이후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있고 오늘날도 그런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은 죽음이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며 생명의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는 죽은 사람도 다시 살리실 수 있다는 증거일 뿐 부활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참된 부활은 단순히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요, 예수 그리스도처럼 죽었다가 완전한 생명으로 다시 살아난 후 영원히 사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참된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지 않고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3. 주님의 재림과 성도들의 부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는 이미 구약에 여러 번 예언해 놓았고 예수님께서도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님께서는 장사한 지 삼 일만에 부활체의 몸이 되어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과 제자들에게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또한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사십 일 동안 이 땅에 계시면서 부활의 소망과 확신을 심어 주신 후,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말씀을 남기시고 구름 사이로 승천하셨지요.
   사도행전 1:9-11을 보면 자세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주님께서는 다시 오실 것을 알려 주셨는데 땅 끝까지 이르러 천국 복음이 전파되는 때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때입니다. 그때는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천사의 호위를 받으시는 주님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공중에 임하실 것입니다(마 24장, 살전 4장).
   주님께서 공중에 재림하시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 먼저 부활하게 됩니다. 무덤에 장사된 육이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며, 그 후에 살아있는 사람 중에 믿음 있는 성도들이 마지막 나팔 소리에 홀연히 변화하여 공중으로 올라가 주님을 영접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4. 부활의 확신을 가진 사람들의 삶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말씀을 수차례 친히 들었지만 온전히 믿지는 못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에는 모두 도망가고, 수제자 베드로조차 생명을 잃을까 두려워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에는 순교하는 것조차 두려워하지 않을 정도로 돌변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친히 눈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부활이 실제적인 사건이라는 것을 체험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났고 주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과 천국이 확실히 믿어졌습니다.
   스데반 집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을 증거하다가 악한 사람들의 돌에 맞아 죽으면서도 결코 평안함을 잃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중보의 간구까지 할 수 있었던 것도 부활의 소망이 확실했기 때문이지요(행 7:59-60).
   사도 바울 역시 부활의 확신으로 소망이 넘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주님을 만난 후로는 어떠한 고통도 괘념하지 않고 평생을 즐거이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헌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행 20:24).
   
   5.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확신을 소유하려면
   
   우리가 부활과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 앞에 신뢰와 확신을 가지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참된 신뢰를 갖기 위해서는 생각을 제어해야 합니다. 곧 혼을 깨뜨려야 한다는 의미인데 왜 혼을 깨뜨려야 신뢰가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우리 사람의 머리에는 뇌세포가 있고 그 안에는 기억할 수 있는 기억장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태어나서 눈으로 보고 듣고 가르침 받아 느낀 느낌들이 이 기억장치에 입력되는 것입니다.
   즉 뇌세포를 하나의 그릇이라 한다면 이 그릇에 사람이 살아가면서 입력되어 기억되는 내용물은 곧 지식으로 남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억되어 있는 지식이 재생되어 나오는 것을 생각이라고 하며, 입력되어진 지식을 활용하는 것을 지혜라고 합니다. 이렇게 지식과 생각과 지혜 이 모든 것을 통틀어 혼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혼 속에 담긴 내용물은 육체의 소욕을 따라 들어온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입력된 지식이나 이러한 지식을 사용하는 생각, 지혜, 이론 등도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비진리의 지식들이 대부분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기 때문에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마음으로 믿으려면 바로 혼을 깨뜨리라는 말씀이지요.
   우리가 혼을 깨뜨리면 그만큼 마음이 무한대로 커져서 하나님의 역사를 마음에 받아들이게 되고 마음으로 깨우칠 수 있으며 마음으로 믿을 수 있게 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 대한 참된 신뢰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대한 확신을 가지려면 신뢰, 즉 마음으로 믿는 믿음의 바탕 위에 반드시 행함을 내보여야 합니다.
   야고보서 2:21-23을 보면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신뢰에 그친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나타내 보임으로 행함을 통해 확신이 와서 믿음이 온전케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혈루증으로 고생하던 여인이나 소경 바디매오가 예수님의 능력을 믿었다고 해도 그냥 가만히 있었다면 응답을 받을 수 없었지요. 그들은 한결같이 인간적인 생각을 동원하지 않았기에 마음으로 믿을 수 있었고 이러한 신뢰를 행함으로 나타내 보였기에 치료받고 응답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구원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믿는다고만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행함을 통해 부활에 대한 확신이 오지 않으면 결단코 영생에 이를 수 없습니다(롬 10:9-10). 먼저는 마음으로 믿어서 하나님과 신뢰관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고 신뢰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의의 입술로 예수를 주라 시인하는 고백이 곧 믿음의 행함이 되어 구원에 이르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부활을 우리 마음 가운데 온전히 믿어드릴 때 우리도 부활할 수 있고 구원받아 천국에도 갈 수 있습니다. 또한 부활의 확신이 있어야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도 뜨거워지며 치료와 응답의 역사도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부활의 소망을 견고히 하여 신뢰와 확신으로 가득 찬 삶을 살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마음껏 소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04-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