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17과 선(16) - 엘리야(2)-

읽을말씀 : 눅 1:17
외울말씀 : 눅 1:17

지난 시간에는 엘리야가 심히 겸비한 마음을 가졌고 자기 의가 없어서 어느 누구와도 부딪치지 않는 선을 소유했기에 하나님께서 한 시대의 큰 선지자로 세우셨다고 배웠습니다. 연단을 통해 강하고 담대한 면모를 갖추게 된 엘리야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놀라운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 보임으로 우상 숭배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했습니다.
   이처럼 엘리야가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자 불말이 이끄는 불병거를 타고 승천하게 하셨습니다. 오늘은 이 땅에 있을 때 뿐만 아니라 천상에서도 계속되는 엘리야의 선, 그리고 하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내려 오셨던 예수님을 닮은 엘리야의 지극한 선을 통해 깊은 감동과 은혜가 되시기 바랍니다.
   
   1.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한 엘리야의 선
   
   엘리야 선지자는 이 땅에서 사역을 이룰 때에 늘 하나님과 교통했습니다. 또한 깊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을 밝히 깨닫기 위해 노력했지요. 유약한 성품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이뤄내기 위해 그만큼 더 하나님께 매달려야 했고, 하나님께서는 위로부터 능력을 내려 주셔서 엘리야의 심령을 강하게 붙들어 주셨습니다.
   이러한 체험을 통해 엘리야는 하나님의 권능을 더욱 사모하게 되었고 약한 자신에게 큰 권능으로 입히시어 강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너무도 사모하게 되었지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인해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일도 순종하여 이루어 드렸습니다. 더구나 엘리야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변함이 없었고 그 사랑을 행함과 진실함으로 온전히 나타냈다는 사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사랑한다 하지만 정작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이루어야 할 때는 자신의 성품을 핑계 대며 슬그머니 뒤로 물러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얼마나 중심에서 하나님을 믿으며 진실하게 하나님을 사랑하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 하셨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뜨거우면 성품은 아무런 상관이 없기 때문이지요.
   육으로는 심히 유약한 성품을 지닌 엘리야가 혈혈단신으로 바알 선지자 450인과 아세라 선지자 400인에게 불의 응답을 끌어내리는 대결을 제안했던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을 향한 불붙는 듯한 사랑이 있으니 하나님을 멀리하고 우상 숭배에 빠진 백성들을 구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담대히 행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엘리야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행함과 진실함으로 나타내 보이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서 더 밝히 깨닫게 되었지요. 장성한 믿음의 분량인 아비들의 믿음에 이르면 태초부터 계신 이, 곧 하나님에 대해서 더욱 깊이 있게 깨달아 알게 됩니다. 엘리야는 이 땅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에 대해 마음 깊이 깨우침으로 심히도 사모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천국에 올라가 하나님을 눈앞에 친히 뵙게 되었을 때 엘리야의 마음은 얼마나 하나님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하게 되었을까요? 이 땅에 있을 때도 나름대로 하나님에 대해 깨닫고 있었지만 천국에 올라가서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밝히 깨닫고 확실히 정립하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맡으신 사명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지요. 바로 성자 하나님은 구세주가 되시기 위해 이 땅에 내려오셔서 철저히 인생들과 같이 낮고 천한 몸을 입으셔야 하고 종국에는 화목제물로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셔야 하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엘리야는 주를 향한 사모함이 불붙는 것 같아 "주를 위해서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나이다."라고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고백을 받으시고 그로 하여금 다시 이 땅에 태어나 주의 길을 예비하게 하는 큰 사명을 주셨던 것입니다.
   
   2. 세례 요한으로 다시 태어나 주의 길을 예비하게 된 엘리야의 선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다시 이 땅에 보내실 것과 그가 다시 와서 어떤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까지 미리 예언케 하셨습니다.
   이사야 40:3을 보면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했습니다. 또한 말라기 4:5-6에는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셨지요.
   이것은 불교에서 말하는 윤회의 개념과는 전혀 다릅니다. 하늘에 올라간 사람이 다시 태어나는 이 일은 인류 역사상 오직 엘리야 한 사람에게 그리고 단 한 번 있었습니다. 그러면 산 채로 승천한 엘리야는 어떻게 다시 이 땅에 태어날 수 있었을까요?
   하나의 인간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부모의 정자와 난자가 결합한 수정체에 반드시 하나님께서 영을 보내 주셔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길을 예비할 사람이 잉태될 때 그에게 보내 주시는 영 안에 엘리야의 마음을 담아 보내 주셨지요. 엘리야의 영 자체가 온 것이 아니라 '엘리야의 마음이 담긴 영'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의 생명의 씨가 결합된 상태에서 '엘리야의 마음이 담긴 영'이 주어지게 되니 부모의 기를 받아 그 영향도 받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당시 가장 선하다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잉태한 태아에 엘리야의 마음이 담긴 영을 보내 주셨습니다. 이렇게 태어난 사람이 바로 요한복음 1:6에 나오는 세례 요한입니다.
   성경 곳곳에는 세례 요한이 엘리야의 마음을 가진 사람임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17에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 했습니다. 또한 누가복음 3:4에는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사람, 곧 주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광야에서 외치는 자가 바로 세례 요한임을 확인해 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이 바로 엘리야임을 말씀해 주셨지요.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변화산상에서 홀연히 변화되신 예수님을 목격하고 예수님이 구세주로 오신 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그러면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하고 여쭈었지요(마 17:10).
   이러한 제자들의 질문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일을 회복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마 17:11-12) 답변하셨습니다. 이어지는 13절을 보면 "그제야 제자들이 예수의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했지요.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로서 아무 흠이나 점도, 티도 없으신 참 빛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온 영을 이뤄 산 채로 들림 받은 엘리야를 다시금 이 땅에 보내셨던 것입니다. 엘리야가 택함 받은 또 한 가지 이유는 엘리야가 주를 향한 불붙는 듯한 사랑 가운데 "주를 위해서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나이다."라고 고백했기 때문이었지요.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다시 이 땅에 내려갈 것을 말씀하셨을 때에 기꺼이 "아멘"으로 받아 순종했습니다. 엘리야는 주께서 겪으실 일을 생각하면 주를 향한 사랑이 불붙는 것 같아 주를 위해 이 죄악의 땅에 다시 내려오는 것이 조금도 꺼려지지 않았고 오히려 기쁨과 감사함으로 받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엘리야가 말과 혀로만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을 온전히 나타내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지극한 선으로 여기셨습니다. 처음 주님을 만나 첫사랑이 뜨거울 때는 그 사랑이 너무도 크고 감사하여 "내가 주님을 위해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고백하기도 하지만 그 고백을 변함없이 행함으로 진실하게 보이는 사람은 그리 많지가 않습니다.
   물이 끓으면 밖으로 수증기가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마음에 가득한 사람은 모든 말과 행함에서도 그 사랑이 배어나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가 있지요. 예를 들어 너무도 순전하셔서 "누구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고 길에서 그 소리도 듣지 못하리라" 하신 예수님도 성전을 더럽히는 사람들은 엄히 책망하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어느 누가 하나님의 일을 이룸에 있어서 자신의 성품이나 환경을 핑계 댈 수 있겠습니까. 영적으로 하나님과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면 주변 사람이나 환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으며 오직 하나님의 뜻만 생각하게 되고 어찌하든 그 뜻을 이뤄 드리고자 열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엘리야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선을 통해 진실한 사랑 앞에서는 어떤 이유도 핑계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하겠습니다. 더구나 오늘날은 성령께서 마음 가운데 내주하시며 늘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시는 성령시대이니 엘리야의 선을 본받아 더욱 뜨겁게 하나님을 사랑하며 매일, 매 순간마다 사랑 가운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04-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