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21과 하나님의 사랑 예수 그리스도(1)

읽을말씀 : 요일 4:9-10
외울말씀 : 요일 4:9-10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면 깨달을수록 하나님 앞에 더욱 감격하고 감사하게 되므로 시편 기자가 고백한 대로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알아 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관대 저를 생각하시나이까"(시 144:3)라는 고백을 마음 중심에서 드리게 됩니다.
   오늘은 죄인된 인류를 위해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을 더욱 마음 깊이 느끼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만세 전에 독생자를 예비하시고 화목제물로 내어 주신 하나님
   
   요한일서 4:9-10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화목제물이란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화목을 위해 희생되는 제물을 말하지요.
   첫사람 아담의 불순종의 범죄로 인해 모든 인류는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말씀대로 원수 마귀의 종노릇하다가 영원히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과의 사이에 막힌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심으로 친히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써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이를 믿는 자마다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처럼 우리 사람을 사랑하시는 것일까요?
   바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창조주시요, 우리를 이 땅에 경작하고 계시는 참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첫사람 아담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습니다(창 1:28). 그런데 오랜 세월이 지난 후 간교한 뱀의 꼬임에 빠져 선악과를 따 먹는 불순종의 죄를 범함으로 그만 영이 죽게 되었지요. 그때부터 아담과 그 후손들은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져 원수 마귀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죄악으로 물들어 이 땅에서 눈물, 슬픔, 고통, 질병, 사망을 맛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깊은 섭리가 담겨 있습니다. 첫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참사랑을 알지 못하여 불순종했지만, 이 땅에서 온갖 죄악을 경험하면서 경작을 받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오직 행복만 있는 영원한 천국에 이르러 하나님께 감사하며 변함없는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결국 인간 경작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참자녀로 나오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나 만세 전에 예비하신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이 땅에 보내신 것도 모두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2. 영광의 주로서 낮고 천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서 존귀와 위엄을 갖추고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요, 마구간에서 태어나시고 짐승의 먹이를 담는 구유에 누이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왜 이처럼 낮고 천한 모습으로 태어나신 것일까요?
   전도서 3:18에 "하나님이 저희를 시험하시리니 저희로 자기가 짐승보다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인간은 점점 타락하여 짐승과 다를 바 없게 되었습니다. 오늘날은 사람을 사고 파는 인신매매가 성행하는가 하면, 심지어 부모와 자녀간에 살인하는 일까지 서슴지 않는 것이 현실이지요.
   이렇게 짐승만도 못한 우리 사람들을 대속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짐승의 우리인 마구간에서 태어나시고, 참된 양식이 되시기 위해 짐승의 먹이를 담는 구유에 누이셨으니 얼마나 하나님의 크신 사랑입니까.
   
   3. 우리의 가난을 대속해 주시기 위해 가난한 길을 가신 예수님
   
   마태복음 8:20에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말씀한 대로 예수님께서는 때로 주무실 곳이 없어 들에서 주무시기도 했고 잡수실 것이 없어 주리시는 일도 있었습니다.
   이는 예수님에게 능력이 없어서 그런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이 넘는 많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시고 남은 조각이 열두 광주리나 되게 하셨고(마 14장)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는(요 2:1-11) 등 능력이 많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위해서는 단 한 번도 그러한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늘 가난하고 헐벗은 길을 가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원래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는 땀 흘리지 않아도 마음껏 먹고 행복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불순종의 죄로 인해 땀 흘려 소산을 먹어야 했고 가난한 길을 가게 되었으며, 예수님께서는 이런 가난까지도 대속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친히 가난한 길을 가셔야 했던 것입니다(고후 8:9).
   
   4. 각색 질병을 치료하시고 소외된 자들의 벗이 되어 주신 예수님
   
   하나님께서는 영이시므로 우리 눈으로 볼 수 없으니 우리가 그 사랑을 피부로 느끼기는 사실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을 통해 자신의 사랑을 뚜렷이 확증시켜 보게 해 주신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분명히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명을 감당하시기에 앞서 광야에서 40일 동안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 마귀에게 세 차례의 시험을 받으셨는데,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두 이겨 내셨지요. 이는 우리 사람의 연약함을 몸소 체험하시고 우리를 더욱 긍휼히 여기셔서 언제나 이길 힘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히 2:18).
   이후로 예수님께서는 두루 다니시며 천국복음을 전파하셨는데, 그 대상은 주로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또 세리와 창기들과 같이 죄인이라 정죄받던 사람들이었지요. 이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이 부나 명예, 권세가 있거나 율법에 대한 지식이 풍부한 사람들에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와 같이 겸손하고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임한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천국복음을 전하실 뿐 아니라 인생의 각종 문제들을 해결해 주셨으며(요 5:2-9, 마 9:20-22, 막 10:46-52, 눅 7:11-17), 죄인과 억눌린 자들을 돌아보시고 소외된 자들을 찾아가셔서 그들의 벗이 되어 주셨습니다(마 9:12). 이처럼 죄인된 인생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그 사랑의 깊이와 높이와 넓이를 측량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면 알수록 더 감복하게 되며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5. 최고의 사랑으로 사망에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는 예수님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기까지 죽음을 초월한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사랑 중에 최고의 사랑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죄인을 살려 주는 사랑이요, 사망에서 생명의 길로 인도하는 사랑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과도 일치합니다. 요한복음 12:47에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고 말씀한 대로 예수님께서 오신 것은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셔서 죄인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것이지요.
   하나님과 원수되어 죄악 가운데 행하던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공의로만 심판하신다면 사망의 형벌을 면할 길이 없습니다. 또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고 말씀대로 살아간다고 하지만 때로는 부족하여 넘어지거나 시험에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보시고 '너는 죄 있다' 하신다면 과연 구원받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회개하고 돌이켜 진리대로 살아가기를 늘 참고 기다리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시며 진리 가운데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죄인된 우리들을 용서하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또한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이를 믿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되어 멸망치 않고 영생에 이를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신 것입니다(요 3:16).
   
   6. 탕자의 비유를 통해 느낄 수 있는 하나님의 사랑
   
   누가복음 15장에 아버지의 유산을 상속받아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결국 모두 탕진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아버지가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종들에게 이르기를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하며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이지요. 아버지가 이같이 행하였던 것은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고 하는 말 속에서 알 수 있듯이 아들을 다시 찾은 기쁨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역시 이러한 마음입니다. 세상에서 헤매이는 무수한 영혼들을 집 나간 아들을 기다리는 아비의 심정으로 애타게 기다리시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는 과거의 잘못은 묻지 않으시고 다만 기쁨으로 받아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고 허물이 있어도 덮어 주시고 감싸 주시며 모든 상처와 아픔을 싸매어 주시는 사랑을 베풀어 주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마음과 뜻과 정성과 생명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보좌가 계신 거룩한 성 새예루살렘에 이르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0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