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25과 일흔 번에 일곱 번까지라도

읽을말씀 : 마 18:21-22
외울말씀 : 마 18:22

많은 사람들이 관용을 베푼다고 하지만 상대의 잘못을 두세 번 정도까지만 허용하고 그 이상은 용납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시는 데 한계를 두지 않으십니다.
   혹여 "구약 성경에는 이방인들을 진멸하라고 명하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어찌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나요?" 질문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그렇게 행하신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으므로 하나님을 오해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용서와 사랑의 마음은 과연 어떠한 것일까요?
   
   1. 무한대의 용서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본문을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께 나아와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하고 여쭙습니다. 상대의 잘못을 일곱 번 정도 용서하면 크게 관용을 베푸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답변하셨지요.
   이 말씀은 일흔 번씩 일곱 번, 즉 490번만 용서해 주라는 뜻이 아닙니다. 7은 완전수로서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는 것은 완전한 용서, 즉 무한대의 용서를 베풀라는 의미입니다. 우리 사람들의 마음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광대하신 주님의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490번만 용서해 주셨다면 과연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요?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며 무한대의 사랑으로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소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요한일서 1:7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약속하신 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빛이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 나가면 모든 죄를 사함받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시며 무한대의 용서와 사랑을 베푸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하나님 앞에 모든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며 용서와 사랑을 베풀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용서와 사랑
   
   창세기 18-19장을 보면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데 당시 소돔과 고모라는 죄악이 심히 중하여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냥 멸하시지 않으시고, 그들을 살려 줄 수 있는 조그마한 근거라도 찾고자 사자(使者)들을 보내어 살피게 하셨습니다.
   사랑이 풍성한 아브라함은 이 소식을 듣고 하나님께 조심스럽게 청하였지요. 여러 차례의 간청을 통해 의인 열 명만 있어도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시키지 않으시겠다는 확답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단 열 명의 의인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죄악으로 가득 찬 나머지 소돔과 고모라 성을 살피러 온 하나님의 사자들까지 해를 가하려고 했습니다.
   예레미야 18:7-8에 "내가 언제든지 어느 민족이나 국가를 뽑거나 파하거나 멸하리라 한다고 하자 만일 나의 말한 그 민족이 그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에게 내리기로 생각하였던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했습니다. 만일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이 죄악에서 돌이켰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멸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리 용서를 거듭한다고 해도 전혀 소용이 없는 악의 한계점에 도달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멸하실 수밖에 없으셨지요.
   이와는 달리, 요나서를 보면 하나님의 뜻을 전달받고 즉시 회개하여 구원받은 사례가 나옵니다. 니느웨 성의 경우, 그들의 악이 하나님 앞에 상달될 정도로 컸지만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즉시 멸하시지 않고 요나 선지자를 보내 회개할 것을 경고케 하셨습니다. 그러자 왕을 비롯하여 온 백성들이 금식하며 회개하니 하나님께서도 기꺼이 용서를 베풀어 주셨던 것입니다.
   에스겔 33:14-15에는 "가령 내가 악인에게 말하기를 너는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그가 돌이켜 자기의 죄에서 떠나서 법과 의대로 행하여 전당물을 도로 주며 억탈물을 돌려보내고 생명의 율례를 준행하여 다시는 죄악을 짓지 아니하면 그가 정녕 살고 죽지 않을지라" 했습니다. 비록 악인이라 해도 하나님께서는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며 끝까지 용서해 주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열왕기하 20장에 나오는 히스기야 왕은 죽을 병에 걸렸으나 하나님 앞에 통회자복하니 생명을 15년간이나 연장받았습니다. 시편 103:12에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라고 말씀하신 대로 돌이켜 회개하는 사람에게는 과거의 잘못을 기억하지도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우쳐야 하겠습니다.
   
   3. 무한한 용서를 베풀어 주신 예수님의 사랑
   
   요한복음 10:30에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말씀한 대로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과 말씀으로 하나요, 능력으로 하나이시며, 마음으로 하나이십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도 아버지 되신 하나님처럼 사람들을 용서하시되 완전한 용서를 베푸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핍박하고 조롱하며 죽이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기까지 했을지라도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며 사랑의 중보기도를 올리셨습니다(눅 23:34). 여기서 "저희"란 당시 예수님을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박으며 희롱하던 사람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구원의 섭리를 완성하신 후에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지 아니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할 온 인류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어둠에 속한 사람들은 빛과 진리를 싫어하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고 빛 되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진리를 알지 못하여 범죄한 것이니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사랑의 간구를 하셨던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이 많지만 자신을 핍박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해 주며 원수까지 사랑하는 사람은 찾아보기가 극히 드뭅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7:60에는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하고 자신을 돌로 치는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을 받아 빛 가운데 행해 나가려고 하면 어두움을 주관하는 원수 마귀는 이를 싫어하여 어둠 속에 사는 사람들을 통해 어떻게 해서든 방해하며 핍박합니다. 또한 전도하다 보면 오히려 조롱하며 훼방을 놓는 사람들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만난다 할지라도 예수님이나 스데반 집사처럼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 "하나님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옵소서. 그리고 영안을 열어 주셔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우리와 같이 천국에 갈 수 있도록 축복해 주옵소서." 하며 대신 용서를 구하는 사랑의 간구를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요한일서 5:16에는 사망에 이르는 죄, 곧 사함받을 수 없는 죄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말씀하셨으며, 히브리서 6:4-6에도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했습니다.
   또 히브리서 10:26-27에도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우리의 마음만큼은 어떠한 사람이라도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즉 내게 선을 베풀고 잘 해 주는 사람뿐 아니라 나를 핍박하고 괴롭히는 사람까지도 사랑의 마음으로 용서하고 축복해 줌으로 그들도 구원에 이르도록 이끌어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없는 용서와 사랑을 베푸시는 하나님, 그리고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시며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을 위해 사랑의 중보기도를 올리신 예수님을 본받아 우리도 용서의 사랑을 베풀며 모든 사람에게 감동과 사랑을 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006-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