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27과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으며

읽을말씀 : 벧전 4:8
외울말씀 : 벧전 4:8

흔히 '허물'은 그릇된 실수나 잘못을 말하는데, 영적으로는 마음속에 있는 죄의 성질이 행함으로 드러났을 때 허물이라 말합니다. 예를 들어, 도둑질을 하고 싶은 마음이 행함으로 나타나 실제로 도둑질을 행했다면 허물이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상대의 허물을 덮어 준다는 것은 단지 상대의 허물을 드러내지 않는 것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오래 참음으로 상대가 어떻게든 잘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며 변화될 모습을 기대하면서 최선을 다해 도와주는 것이지요.
   이러한 사랑의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능히 인내하며 상대의 허물을 덮어 주고 바른길로 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선한 마음을 가져 모든 사람들에게 허다한 허물을 덮어 주는 사랑을 베풀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상대의 허물을 보았을 때 가만히 끊을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마음을 지닌 성경상의 인물로는 예수님의 육의 부친인 요셉을 들 수 있습니다. 요셉은 마리아와 정혼한 사이였는데 어느 날 마리아가 잉태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만약 구약의 율법대로 한다면 마리아를 돌로 쳐 죽이도록 내놓을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기에 이러한 사실을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였습니다(마 1:19). 이런 선한 마음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된 것임을 천사를 통해 알려 주셨지요.
   만일 여러분이 요셉의 입장에 있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골로새서 3:13-14에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말씀한 대로 믿음의 형제 사이에는 서로 다투어 허물을 드러냄으로 불의한 자가 되느니 차라리 누명을 쓰는 편이 더 낫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다니엘 선지자는 악을 행한 것이 전혀 없는데도 죄인 취급을 받고 사자굴에 던짐받게 되었습니다. 그는 왕의 신임을 가장 많이 받는 사람이었기에 왕 앞에 가서 얼마든지 변명할 수 있었지만 그리 하지 않고 묵묵히 공의의 하나님께 맡겼던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사자의 입을 봉하시므로 다니엘이 사자굴에서 살아나와 이방 나라의 임금과 온 백성에게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전지전능하시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억울하게 누명을 쓴다 할지라도 용서하고 참으며 하나님의 공의를 기다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에게 이러한 사랑과 용서, 인내와 오래 참음을 원하시고 계십니다.
   
   2. 상대의 허물을 덮어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창세기 9장을 보면 허물을 덮어 준다는 의미를 알 수 있는 구체적인 예가 나옵니다. 하루는 아버지인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채 잠을 자고 있었는데 이것을 둘째 아들 함이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다른 두 형제에게 가서 이러한 사실을 고했습니다.
   이를 전해 들은 셈과 야벳은 옷을 취하여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지요(창 9:23). 이처럼 그들은 아버지의 허물을 보지 않으려 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도록 그 허물을 덮어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아버지의 허물을 드러낸 함과 비교해 볼 때 이들의 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잠언 17:9을 보면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끼리는 허물이 허물로 보이지 않으며, 설령 눈에 확연히 드러나는 허물이 있다 할지라도 마치 그것을 자신의 허물인 것처럼 민망히 여기게 됩니다.
   흠과 점과 티도 없으셨던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사시는 동안 사람들의 허물을 지적하고 정죄하신 것이 아니라, 먼저 용서를 베푸셨고 병든 자를 치료해 주셨으며 영혼들의 아픈 곳을 싸매 주시고 죄인의 허물을 보면 덮어 주시며 돌이켜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이러한 주님의 사랑을 안다면 부모나 형제, 남편이나 아내는 물론이고 주 안에서 형제, 자매된 모든 사람들의 허물을 덮어 줄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허물을 덮어 주라 하니 무조건 허물을 덮어 주는 것이 옳을까요? 허물은 곧 죄요, 죄의 삯은 사망이므로 상대가 사망의 길로 가는 것을 보고도 덮어 놓고 모른 체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따라서 상대의 허물의 경중과 믿음의 분량에 따라 사랑의 권면이나 훈계, 책망 등 알맞은 방법으로 상대를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들보를 다 빼낸 사람만이 남의 티를 지적할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이지만 아직은 부족하다 해도 사랑을 가지고 권면이나 책망을 한다면 그것은 상대에게 양약이 될 수 있습니다. 상대의 허물을 기꺼이 덮어 줄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서는 참사랑의 마음이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야고보서 5:19-20을 보면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하여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즉 진리를 떠난 사람을 그 길에서 돌아서게 한다면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는 길이고, 또한 그의 허다한 죄를 덮는 것이라 했으니 이같은 사랑을 실천해야 하겠습니다.
   
   3. 상대가 진리로 변화되도록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허물을 덮어 주고 이해해 주는 차원을 넘어 모든 것을 사랑으로 감싸 안으심으로 결국은 생명을 낳으셨습니다. 여기서 생명이란 썩어질 육의 생명이 아니라 영생으로 인도받을 수 있게 하는 생명이요, 영으로 살리는 생명이지요. 또한 어두움 속에 있는 영혼들에게 찬란한 빛을 비춰 주는 생명입니다.
   예를 들어, 허물 많던 베드로가 십자가를 거꾸로 지고 순교할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되기까지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이끄셨습니까?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최후의 만찬을 하시면서 앞으로 되어질 일들을 제자들에게 알려 주셨지요.
   "너희가 나를 찾을 터이나 그러나 일찍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나의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베드로는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여쭈었고 예수님께서는 "나의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답변하셨습니다(요 13:36).
   또한 누가복음 22:31-32에는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같은 당부의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를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했고(요 13:37), 또한 "주여 내가 주와 함께 옥에도, 죽는 데도 가기를 준비하였나이다" 고백했지요(눅 22:33).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고백과는 달리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셨습니다(요 13:38). 결국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닭이 울기 전에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의 말씀이 생각나 밖으로 나가 심히 통곡하였지요.
   만일 베드로가 거기서 주저앉고 말았다면 어찌 되었을까요? 하루에도 수천 명을 회개시켜 주께 돌아오게 하고 그의 그림자만 스쳐도 병든 자가 나음을 얻는 그런 권능의 사도로서의 베드로는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이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할 것을 미리 말씀해 주셨던 사실을 깨달으면서 그때 또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떠올렸습니다.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하셨던 말씀과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당부하셨던 말씀, 그리고 그 이전에 자신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을 때 "너는 베드로라 내가 반석 위에 네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하셨던 말씀 등 자신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해 주셨고 자신이 주를 부인할 것을 다 아시면서도 책망하신 것이 아니라 다만 당부의 말씀만 해 주신 일들에 대해 떠올렸지요. 베드로는 모든 사실을 깨달은 후 예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또다시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미리 말씀해 주심으로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한 데 대한 자책감으로 고통스러워하며 더한 죄 가운데로 빠져들 수 있는 상황에서 베드로를 구해 내셨던 것입니다. 이미 지은 죄를 사해 주는 것은 물론, 더한 죄를 짓지 않게 하는 것, 이것이 진정 허물을 덮어 주는 사랑인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상대의 허물을 발견했다면 먼저는 마음에서부터 가만히 끊어 버리되 때로는 지혜롭고 선한 말로 권면이나 책망을 하여 상대를 감동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온전히 사랑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