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30과 하나님의 공의가 정오의 빛같이

읽을말씀 : 시 37:6
외울말씀 : 시 37:6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는 '사랑'일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사랑은 무엇입니까?" 하고 묻는다면 정확하게 대답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물론 나름대로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을 통해 느끼고 생각하는 바를 설명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고 또한 그 마음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면 진정 사랑을 아는 사람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사랑의 근본은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하나님께서는 과연 우리에 대한 사랑을 어떻게 나타내 주고 계시는지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공의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속성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면 사랑과 공의라 말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공의란 선악간에 공평하게 상벌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성품 또는 속성을 일컫는 말입니다. 이때 선악을 구분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 바로 율법 곧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이지요. 우리가 사랑만 알고 공의를 알지 못하면 그 사랑이 온전한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또 공의만 알고 사랑을 알지 못하면 독재가 되니 참으로 가치가 없지요. 공의와 사랑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룰 때 참사랑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을 지으시고 주관하시며 영적인 세계를 포함한 모든 것의 주인으로서 유일한 심판주가 되십니다. 그러나 이러한 권세를 가진 분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하나님의 마음대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도 영계의 법칙에 따라 역사해 가십니다. 그리고 이 법칙들 중에서 우리 사람이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 필요한 내용들을 성경에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 말씀에 따라 정확하게 역사하시는데 이것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공의로 나타나게 되지요.
   이러한 하나님의 공의를 몇 마디로 요약할 수는 없지만, 공의의 기본 원칙을 간단히 말하자면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7을 보면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하셨는데, 이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신다는 것은 물질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품은 생각, 말과 행동 하나까지도 다 포함되는데 어떠한 것이든 악한 것으로 심으면 악으로 거두고 선한 것으로 심으면 선으로 거두게 된다는 원칙입니다.
   예를 들어, 로마서 6:23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말씀이 있는데 이는 곧 죄를 심으면 사망으로 거둔다는 말씀이지요.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에 따라 죄인에 대해서는 마지막 심판 때에 사망이라는 판결을 내리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잠언 16:2에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는 말씀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의 말과 행동은 물론이고 모든 생각과 마음에 품는 것까지도 다 감찰하시므로 정확하게 판단하실 수 있습니다.
   따라서 진정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마태복음 12:36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라는 말씀을 명심하여 오직 진리의 말만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생각을 아시고 머리털까지도 세신 바 되시며 입술에 나오는 모든 말을 듣고 계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공의는 예외가 없으며 이 땅에서든 아니면 심판날에 가서든 반드시 드러나게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2. 공의 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
   
   혹 여러분 중에 "공의의 하나님은 좀 무섭습니다." 하고 말씀하실 분이 계신지요? 이는 공의를 행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또한 자신이 어두움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공의를 행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기보다는 공의에 따른 징계가 두렵기 때문에 하나님의 공의가 무섭게만 느껴지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교통법규를 잘 지키는 사람은 고속도로를 달리다가 경찰을 만나도 무서워할 리가 없습니다. 오히려 경찰이 있으면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기 때문에 든든하게 느껴지지요. 그런데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는 사람은 혹시 어딘가에 경찰이 있지 않을까 불안해하며 무서워하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공의는 벌만 주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을 주시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악을 행한 사람은 악을 행한 만큼 반드시 그에 대한 보응이 주어지지만 반대로 선을 행하는 사람에게는 선을 행한 만큼 반드시 선과 축복으로 돌아오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이지요.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사는 사람에게는 공의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축복이며 보장이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공의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원하고 진리를 좇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축복을 주시며 하늘나라에서 영원한 상급으로 갚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이를 깨닫는 사람은 하나님의 공의 속에서 사랑의 하나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즉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징계나 연단도 결국은 하나님의 사랑임을 느끼게 되지요. 나를 더 온전케 만들고자 간섭하시는 하나님의 섬세한 사랑과 또한 이러한 공의가 있으므로 어두움에서 떠나 빛으로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잠언 3:12에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같이 하시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자녀를 사랑하기 때문에 징계를 허락하시는 것이며 이것이 곧 우리를 사랑한다는 증거가 됩니다. 만일 죄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으니 징계를 통해서라도 깨닫고 돌이키는 것이 구원의 길이요, 축복으로 인도하는 문이 되는 것입니다(히 12:8).
   
   3.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통해 온전한 모습으로 나온 다윗 왕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통해 온전한 모습으로 나온 대표적인 인물로는 다윗 왕을 들 수 있습니다. 다윗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을 사랑하고 큰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렸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아직 버리지 못한 죄성이 있어 밧세바라는 여인을 취하고 이 일을 무마시키기 위해 그 남편인 우리아를 이방인의 손에 죽게 만듭니다. 이 일로 인해 다윗은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의 공의에 따라 징계와 함께 혹독한 연단을 받게 됩니다. 밧세바와의 사이에서 난 아들이 죽었고 셋째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서 아버지인 다윗까지 죽이려 했던 것입니다. 다윗은 압살롬을 피해 성을 버리고 도망가야 하는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지요.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계기로 다윗이 가지고 있던 작은 죄성까지라도 완전히 뽑아내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을 사랑하셔서 징계와 연단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마음이었지요. 다윗은 이 모든 과정을 통해 하나님 앞에 온전하고 합한 모습으로 나올 수 있었으며 이러한 다윗에게 하나님께서는 이전보다 더욱 놀라운 축복을 넘치게 부어 주셨습니다.
   다윗의 연단과 그 결과를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해서는 공의로 심판하시되 결국에는 사랑하는 자녀를 축복해 주시기 위한 것이었음을 느낄 수 있지요. 그러나 아버지를 반역하여 죽이고자 했던 압살롬은 결국 죽음으로 끝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공의는 진리 안에 살고자 하며 설령 전에는 죄 가운데 있었다 해도 이제 회개하고 돌이킨 사람에게는 양약이 되고 축복으로 임하지만, 반대로 죄 가운데 거하고 돌이키지 않는 사람에게는 엄한 심판의 판결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공의 까닭에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 드릴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공의가 없다면 선을 행하든지 악을 행하든지 그 결과는 아무런 차이도 없을 것이니 누가 선을 행하고자 하겠으며 선을 행한다 해도 무슨 소망이 있겠는지요.
   그러나 전도서 12:14을 보면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또한 갈라디아서 6:9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는 말씀도 믿습니다. 이처럼 반드시 공의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을 믿으면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보고 선과 진리대로 행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4. 하나님께서 공의를 정오의 빛에 비유하신 이유
   
   정오의 빛은 하루 중에 가장 밝히 비추는 빛입니다. 깊은 산 속에 있다 해도, 높은 빌딩 숲 사이에 있다 해도 중천에 떠 있는 태양에서 발하는 정오의 빛을 볼 수 있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공의는 너무나 밝히 빛나므로 무엇으로도 가릴 수 없으며 반드시 드러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하나님의 공의가 있으므로 하나님의 사랑받고 보장받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이라면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요 악에서 떠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에게 악을 행하는 것은 이미 그 자체가 하나님의 공의를 어긴 것이지요. 악에 대해서는 악으로, 선에 대해서는 선으로 거두는 하나님의 공의에서 볼 때 악을 행하지 않은 사람에게 악을 행하는 것은 공의의 법칙을 어기는 것이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공의를 바르게 하시기 위해서라도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에게 악을 행하는 사람들을 공의로 심판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출애굽의 지도자였던 모세를 통해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공의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기 위해 모세라는 한 인물을 택하시고 40년 간의 연단을 통해 그를 하나님의 쓰시기에 합당한 그릇으로 만드셨습니다. 장정만 해도 60만이 넘는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하여 가나안까지 인도해 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지도자가 있어야 했지요.
   실제로 광야생활 동안에 모세는 수많은 불순종과 원망, 불평을 하며 때로는 대적해 오기도 하는 백성들을 오래 참음과 기다림, 그리고 긍휼과 자비와 용서의 마음으로 품어 주고 인도해 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참으로 자신을 닮은 모세를 보실 때 마음이 너무나 흐뭇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향해 불평하고 원망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결코 용서치 않으셨습니다. 백성 중에 고라라는 인물을 비롯하여 한 무리가 반역을 일으키고 모세와 아론을 대적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무서운 재앙으로 멸하셨지요. 하나님께서 이들에 대해 진노하신 것은 결코 사랑이 없으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아무 잘못이 없는 모세를 대적하고 원망함으로 공의를 굽게 하려고 했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나타내시기 위함이며, 또한 이를 통해 백성들에게 교훈을 삼게 하시고 다시금 모세를 대적하고 원망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도록 사랑으로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더욱 사랑 안에 거하는 복된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나타내며 항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