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35과 권능 위에 권능을

읽을말씀 : 요 14:12
외울말씀 : 요 14:12

마음이 성결된 하나님의 참된 자녀가 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의 선물이 있는데, 바로 권능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역사하시는 권능은 언제나 그 열매가 선이고 영혼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만듭니다.
   따라서 오늘은 권능과 권능 위에 권능이란 무엇이며, 그에 따르는 역사에 대해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1. 무엇을 구하든지 응답받는 차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척도는 하나님의 계명을 얼마나 잘 지키는가 하는 것입니다(요 14:21). 구체적으로는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영적인 사랑의 정의에 맞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하나님께서도 그 자녀를 사랑해 주시고 그에게 사랑을 표현해 주시지요.
   기도에 응답을 받는 것만 보아도 똑같은 것을 구하는데도 사람마다 차이가 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단 한 번 구해도 즉시 응답이 오고 어떤 사람은 일 주일을, 또 어떤 사람은 금식까지 하면서 구해야 비로소 응답받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이것은 각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정도와 믿음이 다르다는 사실을 증거해 주는 동시에 응답의 무게가 다르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23에는 예수님께서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구하는 것마다 응답을 받을 수 있는 사랑의 차원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요한일서 3:21-23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 온전히 거함으로 자신의 마음을 진리에 비추어 볼 때 책망할 것이 없다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게 됩니다. 이처럼 계명을 지키는 것과 함께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한다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는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의 믿음입니다(히 11:6). 그런데 우리가 진정 위로부터 하나님께서 주시는 권능을 받기 원한다면 완전한 영의 믿음, 즉 그리스도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기서 완전한 영의 믿음, 그리스도의 믿음이란 예수님께서 자기 몸을 화목제물로 드려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처럼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주님을 위해 기꺼이 버릴 수 있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런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불 같은 기도가 반드시 필요하지요(막 9:29).
   
   2. 권능의 정의와 그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증거
   
   권능은 "권세 있는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능력이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으로는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믿음의 힘입니다. 또한 권세란 하나님의 정하신 엄위있고 영광스러운 힘이요, 영계에서는 죄가 없는 것이 힘이기 때문에 성결 그 자체라고도 말할 수 있지요. 따라서 모든 악과 비진리를 버리고 성결된 하나님의 참자녀가 되면 영적인 권세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권능은 "권세 있는 능력"이므로 권세와 능력이 함께 나타납니다. 그러면 능력, 권세, 권능은 어떻게 다를까요? 비유를 들면,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아들이 돈을 벌 능력이 아무리 출중하다 해도 가장으로서의 권세는 아버지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질서가 잡힌 가정이라면 아들이 벌어온 돈을 아버지가 요구할 수 있고, 아들 입장에서는 순종해서 드려야 하지요. 그러나 아버지가 돈을 벌 능력도 가지고 있다면 이 아버지에게는 권세 있는 능력, 곧 권능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도 권능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권세를 입는 것이기 때문에 기사와 표적과 희한한 능, 기이한 일이 따르게 되는데 각각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표적(表蹟)
   표적이란 사람이 행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경우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소경이 눈을 뜨고 벙어리가 말을 하며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는 것은 물론,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짧았던 다리가 길어지며, 굽었던 허리가 펴지며 소아마비나 뇌성마비가 온전해지는 역사 등이 이에 속하지요.
   마태복음 4:23을 보면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고 하여 병과 약한 것이 구분되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약한 것이란 가벼운 질병이 아니라 불의의 사고나 부모나 자신의 실수로 신체의 어떤 기관이 마비되거나 퇴화되어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한 경우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약한 것을 고치는 능력 행함은 병 고치는 은사를 받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병 고치는 은사 즉 신유의 은사를 받으면 성령의 불의 역사로 아픈 부위나 질병의 균을 태워 병을 낫게 할 수는 있으나, 그런 병들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으므로 표적에 해당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2) 희한한 능(能)과 기이한 일
   성경상에서 들 수 있는 희한한 능의 예로는 사도행전 19:11-12에 기록된 사건을 들 수 있는데,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갔다고 했습니다. 또한 베드로 사도의 경우는 그림자만 스쳐도 치료의 역사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행 5:15-16).
   또한 기이한 일에 대한 예로는 모세가 애굽에서 행했던 열 재앙과 예수님께서 중풍으로 꼼짝도 못하던 사람을 치료하신 것(눅 5:17-26)을 들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에 기록된 것만이 아니라 해도 희한하고 기이한 일은 다양하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3) 기사(奇事)
   기사란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천기를 움직이는 것에 해당하는 일들로 주로 기상현상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구름을 움직인다든가 비를 오게 하거나 멎게 하는 것, 천체를 움직이는 것 등이 이에 속하지요.
   성경상에 사무엘이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우뢰와 비를 보내 주신 일이 있었고(삼상 12:18),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께 간구하매 해 그림자가 10도 뒤로 물러간 일이 있었습니다(왕하 20:11). 또한 엘리야 선지자는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3년 6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셨다고 했습니다(약 5:17-18). 이처럼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사람들의 간절한 믿음의 간구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기사가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3. 권능 위에 권능이란?
   
   권능 위에 권능을 설명하기 위해 하나님을 대기업의 회장으로, 우리들을 그의 자녀들로 비유해 보겠습니다. 회장의 자녀 중에는 아버지의 회사에서 일을 하며 경험을 쌓는 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의 한 아들은 능력이 탁월할 뿐만 아니라, 어떤 일이든 아버지의 마음에 쏙 들게 일을 잘 처리해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그 아들에게 계열사들을 하나씩 물려 주게 될 것이고 나중에는 그룹의 경영권 자체를 물려 주게 될 것입니다. 아들이 경영권을 물려받은 후와 그 전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전에는 무슨 일을 하고자 할 때마다 아버지의 결재를 받아야 했지만 이제는 자신이 경영권을 가졌으니 임의대로 일을 추진해 갈 수 있지요.
   이처럼 권능 위에 권능 차원은 아버지가 자녀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것과 같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권능 위에 권능 차원은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보장해 주시는 차원을 넘어서 하나님의 고유한 신성(神性) 자체를 자녀에게 부여해 주시는 것, 즉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권능들을 믿을 수 있는 자녀들에게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4. 권능 위에 권능을 받을 때 따르는 하나님의 역사
   
   첫째로, 죽은 자를 살리는 권능입니다.
   요한복음 5:20-21을 보면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죽은 사람을 살리실 때 아무나 살리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좇아 합당한 사람을 살리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썩은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살리셨고 나인이라는 성에서는 이미 죽어 장사를 지내기 위해 관에 실려 나가는 어느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으며,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기록도 있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 외에도 구약에 엘리야와 엘리사가, 신약에서는 사도 바울과 베드로가 죽은 사람을 살린 기록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들은 죽은 자를 살리는 권능을 받아서 그렇게 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상황에서 그만한 축복을 받을 만한 사람에 대하여 일시적으로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사람을 향하여 "나사로야, 나오라"고 명하시기만 했던 것과는 다르게 행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는가 하면 죽은 아이 위에 자기 몸을 펴서 엎드리는 등 특이한 행동을 취했던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여러 번 그렇게 하신 것과는 달리 그들이 죽은 사람을 살린 기록은 한 번씩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죽은 자를 살리는 권능을 받게 되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기의 원하는 사람들을 항상 살릴 수 있습니다.
   
   둘째로, 말씀으로 창조의 역사를 베푸는 권능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던 것처럼, 말씀으로 창조의 역사를 베푸는 권능을 받으면 말씀 자체가 시공을 초월하여 역사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없던 뼈나 신체의 기관이 생겨나거나 짧았던 신체의 부분이 늘어나는 등 무에서 유가 만들어진 경우이지요.
   한 백부장이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라고 예수님 앞에서 담대하게 믿음의 고백을 하자, 예수님께서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라고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았던 것을 볼 수 있지요(마 8:8-13). 예수님께서 입술로 내신 말씀이 공간을 초월하여 그대로 역사된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했습니다(막 4:39). 이처럼 말씀 자체가 생명력 있게 역사되는 것은 말씀으로 창조의 역사를 베풀었다는 것이고, 이러한 권능은 시공을 초월하여 역사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뿐만 아니라 말씀으로 창조의 역사를 베푸는 권능 위에도 그 이상의 권능들이 있습니다. 영적인 권능의 역사는 무한하여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타내시는 권능을 온전히 믿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권능을 행할 수 있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