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잠언 8:17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말씀하신 대로 그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주어진 삶 속에서 사랑받는 증거를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사랑받는 증거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혹여 하나님보다 세상에 속한 어떤 것이 내 안에 가장 소중한 것으로 담겨져 있지는 않은지, 아니면 세상에 속한 것도 담겨 있고 하나님께 속한 영의 것도 담겨 있는데 여전히 세상의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았는지 자기 자신을 깨우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기 위해서는 어떠한 것을 점검해 보아야 할까요?
1.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요한일서 5:3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했고, 마가복음 12:30에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정녕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기뻐하며, 말씀대로 행하기 위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듣고 배운 진리대로 행한다 하지만, 정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행함이 아니라 자기 보기에 좋은 행함으로 나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원래의 뜻에서 벗어나거나 심지어는 역(逆)으로 생각하고 행하면서도 자신은 하나님을 사랑하여 행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에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자기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나온 결과이지요.
특히 머리된 일꾼들은 어떠한 행사를 이룰 때에 유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궁극적인 뜻은 모른 채 자기 보기에 좋은 대로 일을 이룬다면 하나님을 사랑하여 행사를 진행했다 해도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영광돌릴 만한 열매나 영적으로 유익 되는 좋은 결과 없이 그저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을 했을 뿐인 행사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작은 모임을 하든, 큰 행사를 하든 그것이 정녕 하나님의 나라에 유익이 되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지혜와 지식을 동원하여 어떤 일을 했다 해도 정작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과 상관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정녕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우선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지혜와 지식으로 아무리 멋있게 어떤 일을 잘 해낼 수 있다 할지라도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이 아니라면 전부 무(無)로 돌릴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하지요.
사도 바울은 당대 최고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뛰어난 지식을 가졌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가장 소중하게 여겼기에 자기의 의를 깨뜨려 나갔습니다.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배설물과 같이 여기기까지 오직 주님의 뜻을 따라갔지요. 주님을 너무도 사랑하기에 날마다 자신은 죽어지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빌 3:8-9).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사모하고 자신의 마음을 일구며 행함으로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라면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까?'를 궁구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외모를 더 멋있어 보이게 할까?' '어떻게 하면 좋은 사람을 만나서 행복한 가정을 이룰까?'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벌어서 부유해질까?' 이런 것을 궁구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길을 궁구하며 그것이 삶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지요.
여러분의 삶의 목적에 순위를 매긴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이란 항목이 과연 몇 위를 차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 두 가지를 말씀드릴 때에 과연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고 행했는지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6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믿음으로 행하는 것과 자기 생각 속에 막무가내로 행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주시는 영적인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은 정도를 걷기 때문에 하나님의 공의에서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내보인다 하나 위로부터 주어진 영적인 믿음이 아닌 것은 정도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공의를 어기는 경우가 있지요. 이런 경우는 자신은 믿음으로 행한다 했지만 결국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은 받지 못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 현실에서 당장 일이 잘되지 않거나 응답이 자신의 생각보다 더딜 때에 쉽게 절망하고 낙심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것 또한 믿음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란 결코 변개함이 없는 것입니다.
한번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으면 끝까지 믿는 것이 참으로 믿음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믿음으로 행했다면 어떤 장애물이 있고 어려움이 와도 끝까지 하나님을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 진정 믿음 있는 사람의 모습이지요. 그래서 마침내 믿음 가운데 승리할 때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영혼들에 대한 전도입니다. 누가복음 15:7에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한 영혼이 전도를 받아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매우 기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정녕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길 원하는 사람이라면 전도하는 입술이 되어야 하고 영혼들을 사랑하여 구원의 길로 인도하려 하지요. 여기에는 많은 사랑의 수고와 섬김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한 영혼이 구원받는 것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가를 알기에 전혀 수고롭게 여기지 않으며 오히려 기쁨으로 감당해 나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나름대로 중요한 일을 감당하고 있으니까 내게 맡겨진 일을 감당하면 될 거야. 전도나 영혼 관리는 그 사명을 가진 일꾼들이 하면 되겠지' 하고 자신을 정당화시키는 것을 봅니다. 또한 열심히 전도를 하시는 분들도 정녕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전도의 열매가 얼마나 맺혔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도 믿음으로 하기 원하십니다.
믿음으로 전도한다는 것은 영혼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에 품고 매순간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내 입술의 지혜로운 말로 상대를 설득시키려고 하거나 나의 강한 의지로 상대를 꺾으려는 것이 아니라 중심에서 아버지를 신뢰함으로 아버지께서 상대의 마음을 열어 주시고 아버지께서 상대의 마음을 녹여 주시도록 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전도할 때에 정녕 실한 열매로 맺혀질 수 있는 것입니다.
3. '목자를 바라보는 것'이 가장 소중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목자를 바라본다는 것은 그저 목자를 사랑함으로 육으로 목자를 바라보라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 하나님을 만난 그때부터 지금까지 믿음에 변개함이 없었고 아버지의 나라를 이룸에 있어서 어떠한 일에도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았으며 오직 순종해 왔던 것을 본받아야 합니다.
또한 설령 육적으로 부끄러움 당할 일이라 해도 어떤 것도 개의치 않으며 날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점, 그리고 세상과 타협치 않음은 물론, 세상에서 아무리 값진 것이라고 해도 그것을 귀히 여기거나 취하려 하지 않았던 점을 본받고 바라봐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버지 보시기에 온전하며 변개함이 없는 진실된 점들을 바라보고 본받는 것이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바라봄의 믿음의 법칙에 의해 목자를 닮아 주님의 마음을 이루며 아버지 하나님의 참자녀로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진실하게 점검함으로 이제는 "내가 진리를 듣고 행하는 것보다 더 기쁜 것이 없고 영혼들이 변화되어서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기쁜 것이 없도다."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아비의 신앙, 곧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온전한 신앙 가운데 거할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