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24과 팔복이란 무엇인가(2)

읽을말씀 : 마 5:1-12
외울말씀 : 마 5:7-8

지난 시간에는 팔복 중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임하는 복, 애통하는 자에게 임하는 복, 온유한 자에게 임하는 복,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임하는 복에 대해서 상고해 보았습니다. 오늘은 팔복 중에서 다섯 번째 복부터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5.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긍휼이란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잘못된 행함을 참아 주고 용서해 주며 이해하고 바로 세워 나가는 것을 말하는데 이러한 영적인 긍휼은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용서의 긍휼입니다. 마태복음 6:12을 보면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하였는데 이는 우리가 매일 드리는 주기도문의 일부입니다. 내가 형제를 긍휼히 여기며 용서하고 사랑하였으니 하나님께서도 나의 허물과 죄를 사하여 주시라는 뜻입니다.
   만일 우리가 마음으로는 형제를 용서하고 이해하지 못하면서 하나님 앞에 주기도문을 한다면 그것은 거짓된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수도 사랑하라 하셨고, 형제의 티와 허물도 덮어 주라 하셨으니 누가 나를 헐뜯고 미워하고 욕하더라도 내가 먼저 용서하고 긍휼히 여길 때 하나님께서도 긍휼하심으로 나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시고 사랑해 주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11-24에는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아버지가 준 유산을 먼 나라에 가서 다 탕진하고 돌아온 둘째 아들이 아버지 앞에 회개하였을 때 아버지는 아들을 극진히 대해 주며 용서의 긍휼을 베풀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은 이런 용서의 긍휼을 누구에게나 베풀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있기에 우리가 죄를 버리고 주님의 사랑과 긍휼하심을 입어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징계의 긍휼입니다. 자녀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을 때 부모가 방관만 하고 있다면 이는 참사랑이 아닙니다. 매를 드는 자체가 마음 아프지만 징계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엄히 훈계하여 자녀를 바르게 양육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녀가 잘못했을 때마다 매를 드는 것은 부모의 감정과 혈기에서 나온 것이므로 사랑의 마음이 아닙니다. 진정 긍휼의 마음이 있다면 경솔하게 매를 들지 않고 먼저 권면하며 타이르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할 것입니다. 그러나 권면해도 듣지 않고 계속 잘못된 길로 간다면 분명히 깨우쳐 마음에 명심시켜 주기 위해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매를 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 자녀도 감정으로 받지 않고 마음에 깊이 새겨 돌이키게 될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아들의 잘못을 보고도 엄히 경책하지 않아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던 엘리 제사장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 아들들은 백성들이 제사 드리기 위해 가져온 성물을 자신들이 먼저 취하고 성전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는 등 심한 악을 행했지만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엘리 제사장은 엄히 징계하여 돌이키게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진노가 엘리와 그 아들들에게 임하여 집안에 환난이 끊이지 않았지요(삼상 2장).
   그러므로 우리가 자녀에게 가하는 징계는 오직 사랑하기 때문에 가하는 긍휼의 징계라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바른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징계하시고 채찍질하시는 것입니다(히 12:5-6).
   
   셋째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돌아볼 줄 아는 긍휼입니다. 긍휼은 입으로만이 아니라 행함으로 돌볼 줄 아는 마음입니다. 내 이웃 중에 가난하거나 불쌍한 사람이 있으면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어려움을 해소시켜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말로만 도와주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으며 긍휼한 마음으로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영적인 긍휼함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부족함을 채워 주시며 연약함을 강하게 해 주시고 기도에 신속히 응답해 주십니다.
   
   6.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마음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고 오로지 진리 안에서 정결하고 깨끗한 마음을 말합니다. 악이나 무례함은 생각지도 아니하며 불의는 조금도 기뻐하지 않는 흠도 점도 없는 진리의 선한 마음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도 거룩하고 청결한 마음을 갖기를 원하시므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벧전 1:16) 권면하십니다.
   그러면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우리 마음 안에는 진리의 마음과 비진리의 마음이 함께 있는데 비진리의 마음을 버린 만큼 청결한 마음이 됩니다. 사람은 외모로 판단하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어떤 사람이 마음속에 누구를 미워하거나 간음할 마음이 있더라도 행함으로 나타내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그를 죄인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 중심을 보시므로 비록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았을지라도 이런 비진리의 마음 자체가 하나님 보시기에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마 5:28).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마음에 있는 비진리들을 버려 나가며 진리로 변화되는 만큼 청결한 마음이 되는데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직접 육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룻기에 보면 룻은 남편을 잃은 이방 여인이었지만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섬길 뿐 아니라 시어머니가 섬기는 하나님을 섬겼으므로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마음이 청결하였기에 물질의 축복뿐 아니라 예수님의 계보에 오르는 축복도 받았던 것입니다.
   룻과 같이 우리의 마음이 청결해지는 만큼 성령의 주관과 인도함을 받아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하나님께 영광돌려 나가게 되는데 이것을 하나님을 본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진리로 마음을 청결케 하여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능력을 체험함으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뵙는 축복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7.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첫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죄로 인한 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께서 갖은 멸시와 조롱을 다 받으시며 십자가에 달려 보배로운 피를 흘려 주심으로 원수가 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목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평이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함을 이루려면 먼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자는 하늘나라에 시민권을 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니 당연히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하였으니 나를 미워하거나 핍박하는 사람과도 화평함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화평케 하는 자가 될 수 있을까요?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희생할 수 있어야 하며 인내와 절제, 용서와 이해가 있어서 영적인 생명을 줄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같이 온유하며 청결하고 사랑과 덕을 갖추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사람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새예루살렘에 거할 자격을 갖추었으므로 천국에서도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 수 있는 것입니다.
   
   8.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악이나 불법으로 인해 받는 핍박은 아무 복이나 상급이 될 수 없지만 의를 위해 받는 핍박은 복입니다. 이는 바로 천국이 저희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빛 가운데 계시며 사랑과 공의 가운데 계실 뿐 아니라 선 자체가 되시므로 그 자녀들도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인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이 세상 어둠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는 빛을 싫어하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며 빛 가운데 나갈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를 행해 나갈 때 훼방하여 핍박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간혹 지혜가 부족함으로 스스로 자초하여 핍박을 받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아무런 상급도 되지 않지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면 누구나 복음을 듣고 주님을 영접하여 구원에 이를 수 있으므로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데, 세상과 타협지 않고 하나님의 법도를 행함으로 악을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하는 만큼 주어지는 영광은 다릅니다(고전 15:41).
   다니엘은 일국의 총리로서 사자굴에 던짐받는다 해도 쉬지 않고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지켰습니다(단 6장). 다니엘의 세 친구 역시 풀무불에 들어갈지라도 우상 앞에 절하지 않고 믿음을 지켰으므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증거를 나타내고 영광을 돌렸습니다(단 3장).
   이들이 하나님의 법을 좇지 않았더라면 핍박받았을 리 없습니다. 그러나 의를 위해 핍박받은 만큼 더 성결되고 하늘나라에는 더 큰 상급으로 쌓여지기 때문에 상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할 때 오는 핍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함으로 주님으로 인해 받는 핍박이 있습니다(마 5:11-12). 이러한 핍박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는 칭찬과 위로해 주시며 하늘에 큰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한 나라의 왕이라도 자신을 대신하여 신하가 어떤 희생을 치렀다면 큰 상급으로 위로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를 행하면서 핍박을 받거나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핍박받는다 하더라도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상급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것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면 주제설교 모음집 팔복편 <참된 복을 좇는 자> 책자를 통해 양식 삼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팔복은 변하지 않고 영원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므로 진정한 복이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진정한 의미의 영적인 복을 누리기 위해 더욱 열심히 죄를 버리며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아 마음껏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2007-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