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14과 가상 칠언(1)

읽을말씀 : 눅 23:34-43
외울말씀 : 눅 23:43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면서 마지막으로 일곱 가지의 귀한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이러한 가상칠언(架上七言) 중에서 오늘은 제1,2언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제1언 :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온 인류의 구세주이십니다. 그분은 아무 죄도 없는 깨끗한 분이셨지만,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여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해 친히 나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이때 수많은 백성들은 관원들과 함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의 택하신 자 그리스도여든 자기도 구원할지어다" 하며 비웃었고 군병들도 신 포도주를 주며 "네가 만일 유대인의 왕이어든 네가 너를 구원하라"고 희롱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향하여 하나님께 용서를 간구하며 사랑의 기도를 하셨는데 이것이 가상칠언 중 첫 번째 말씀으로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는 기도입니다. 여기서 '저희'란 예수님을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박으며 희롱하는 자들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지 않고 어둠 가운데 있는 온 인류를 말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하므로 십자가에 못박는 엄청난 죄를 지은 것이기에 그들을 대신하여 용서해 주시라고 사랑으로 간절히 기도하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인해 고난을 받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전도하면 믿기는커녕 조롱하고 핍박하는가 하면,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을 비웃으며 어리석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둠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는 어떻게 행해야 할까요? 바로 가상칠언 중 제 1언에 말씀하신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지 아니하고 핍박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용서해 주고 기도해 줌으로 구원에 이르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5:44을 보면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했고, 사도행전 7:54 이하에 나오는 스데반 집사 역시 돌에 맞아 죽어 가면서도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하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으면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그들을 위하여 사랑으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2언 :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 위에 높이 세워진 십자가에 달려 계실 때 좌우편에 두 행악자가 함께 십자가 처형을 받고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23:39-43을 보면 한 편 강도가 예수님을 향하여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고 비방하였지요. 그러자 다른 한 편 강도는 "네가 동일한 정죄를 받고서도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느냐"고 꾸짖고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고백하며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는데(눅 23:43) 이것이 바로 가상칠언 두 번째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회개할 때 죄사함을 주어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메시아가 되신다는 사실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장면이 기록된 사복음서를 살펴보면 약간의 차이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27:44에는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고 했고, 마가복음 15:32에는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로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고 했습니다. 즉 양 편 강도가 모두 예수님을 욕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잘못 기록되어 있는 것일까요?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딤후 3:16)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는 말씀입니다(마 5:18). 이는 성경 기자들이 잘못 기록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허락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알려 주신 그 당시의 상황을 잠시 살펴보면, 골고다 언덕에는 큰 십자가들이 높이 세워져 있었는데 중앙에는 예수님께서 달려 계셨고 좌우편에는 두 행악자가 함께 달려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달리신 십자가의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둘러 서서 조롱하고 로마 군병들은 흥분한 군중들이 십자가 가까이 밀리지 않도록 경계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은 예수를 욕하고 있었습니다(마 27:38-42).
   이렇게 수많은 군중들로 떠들썩할 때 군중들 틈에 끼어 있던 제자 한 사람이 보니 한 편 강도가 무엇이라 욕을 하는 것이 보였습니다. 사실은 예수님을 향해 욕을 한 것이 아니라 반대편 강도를 꾸짖는 것인데(눅 23:39-40), 몸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어서 얼굴만 옆으로 돌려서 말을 하니 십자가 아래 군중들 틈에 끼인 제자는 예수님을 욕한 것으로 여겨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마 27:44)고 기록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수많은 군중들이 십자가 밑에 모여 있으며, 또한 십자가가 높고 멀리 있어 대화 내용이 잘 들리지 않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고, 하나님께서는 이를 정확히 분별하도록 기록의 차이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제2언을 통해 구원받은 영혼은 천국에 가게 되며 한 편 강도는 그중에서 낙원에 가게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영원히 거할 천국은 무한히 넓고 큰 세계입니다. 이 땅에서도 도시와 시골이 있고, 수도와 지방이 있듯이 천국도 가장 변두리 지역인 낙원 외에 요한계시록 21장 2절에 기록되어 있는 새 예루살렘 등 각기 다른 처소가 있으며 그중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은 하나님 보좌가 있는 가장 영화로운 곳으로서 하나님을 닮은 거룩하고 온전한 사람들이 거하는 천국이지요.
   그러면 회개한 한 편 강도는 왜 낙원으로 들어가는 것일까요? 그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기는 했지만 이 땅에 살면서 주님을 위해 행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즉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린 것도 아니요, 사명을 맡아 감당한 것도 아니며 누구를 전도한 것도 아닙니다. 단순히 주님을 영접함으로 구원받은 몸이기에 아무런 상급이 없는 낙원으로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신 말씀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시므로 낙원뿐 아니라 어느 곳에든 계셔서 전 세계 곳곳을 감찰하시며 항상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따라서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말씀하신 것이요, 예수님의 본체는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계시므로 강도와 함께 낙원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예수님께서는 어디에 가셨을까요? 마태복음 12:40을 보면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 했고, 에베소서 4:9에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의롭고 사랑이 많으시므로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있는 음부에 가셔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3일간 복음을 전파하셨던 것입니다(벧전 3:19). 그리하여 구약 시대에 메시아를 기다리며 선한 양심을 좇아 의롭게 산 사람들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낙원에 갈 수 있는 자격을 소유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계명을 지켜 행하는 것은 물론, 예수님을 본받아 주어진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며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여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2008-0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