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니고데모는 누구인가?
니고데모는 바리새인 중의 한 사람이며 사회적으로는 최고의 권력과 부와 명성을 가진 유대인의 관원이었습니다. 바리새인이란 모세의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조상 대대로 내려온 유전(전통)을 중히 여기며 나름대로는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하는 이스라엘의 지도층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세계 역사와 인류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심과 내세와 부활, 천사와 종말론, 메시아가 오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겉모습은 거룩한 체하나 속마음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여 마치 회칠한 무덤 같기에 예수님이 책망하십니다(마 23:25-36). 아무리 사람이 무덤을 아름답게 꾸미려고 거기에다 회칠을 한다 해도 그 속에는 부패한 더러운 것이 가득할 뿐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외식주의자들을 향해 엄히 책망하시며 회개하고 돌이키라 말씀하셨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배척하며,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었다고 하고 죽이려고 했습니다(마 12:24).
니고데모는 이들과는 달리 선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붙좇았고, 당시 예수님을 두둔할 수 없는 위치였지만 예수님 편에 서서 변론하였습니다(요 7:51). 이는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하나님께로부터 온 분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그가 사람의 눈을 피해 한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가 영적으로 무지하여 진리를 밝히 깨우치지는 못했지만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알고자 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거듭남에 대해 알려 주셨고, 결국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을 때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가지고 와서 장사를 지냈습니다(요 19:39-42).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인데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2.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영적 대화
요한복음 3:2에 니고데모는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말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은 훌륭한 선생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이것은 단지 눈에 보이는 표적을 보고 육적으로 예수님을 안 것이지 영적으로 깨달은 것은 아니었지요.
예수님께서는 그런 니고데모에게 영의 차원에서 볼 수 있도록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알려 줍니다. 영적인 의미를 깨닫지 못한 니고데모는 이를 문자적으로 이해할 뿐이었지요. 이처럼 우리가 지식이 많거나 부유하다고 해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안다거나 교회 오래 다녔다고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지요.
니고데모는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질문합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말씀하지요.
사람이 바람 부는 소리는 들을 수 있지만 그 바람을 눈으로 볼 수는 없으며 바람이 어디서 시작하여 어디서 끝나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이렇게 육으로 볼 수 없는 바람과 같이 영의 세계의 일들도 육적인 한계 속에서는 이해할 수 없지요. 과학이 아무리 발달해도 세상의 모든 일들을 다 파악하지 못합니다.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눈에 보이는 육이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이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뜻입니다.
인류의 시조 아담은 생령으로 지음 받았지만 범죄하여 영이 죽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생령이 아닌 육의 사람이 되었지요. '육으로 난 것은 육이라'는 말씀처럼 육의 사람이 된 아담의 후손들도 영이 죽은 육의 상태로 태어났습니다. 모든 인류가 영이 죽은 육의 사람으로서 천국에 갈 수 없고 지옥 곧 사망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거듭나서 천국에 들어가려면 죽은 영이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지요.
예수님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알려 주셨지만 니고데모는 거듭난다는 말씀의 영적인 의미를 깨우치지 못하여 "어찌 이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되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십니다.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저주받은 뱀처럼 나무에 달리실 것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마다 영생을 얻게 됨을 알려 주십니다.
3.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씀의 영적 의미
그러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씀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물은 더러움을 씻어 주는 정화 작용을 합니다. 영적으로 영생수는 진리인 하나님 말씀을 뜻하므로(요 4:14) 물로 거듭난다는 것은 곧 하나님 말씀으로 거듭난다는 의미입니다. 요한복음 2:1-11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가나에 혼인이 있어 청함을 받았을 때 포도주가 모자라자 물로 포도주를 만들어 많은 사람들로 먹게 하셨습니다. 이 표적은 예수님께서 사람의 혼인을 축복하셨다는 육적인 의미를 나타내려 함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과 하나님의 섭리를 명확히 알려 주기 위한 사건입니다.
여기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다는 것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요 1:14) 십자가에 못박혀 죽음으로 피 흘리신다는 의미입니다. 포도주를 믿지 아니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마시게 한 것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마다 영생을 얻는다는 하나님의 섭리를 나타내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2: 11에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었을 때 제자들이 그를 믿었다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후에야 온전히 믿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물은 진리인 하나님 말씀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따라서 물로 거듭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이심과 십자가의 섭리들을 믿어 모든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됨을 말합니다.
그러면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가 말씀을 듣고 깨달아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성령을 받았다는 것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는 증거가 됩니다. 이렇게 성령을 받으면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납니다. 그러므로 하늘나라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고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성령은 우리에게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알려주시고(요 16:8) 진리의 말씀 안에 살 수 있도록 깨닫게 해 주십니다. 그리하여 성령의 음성을 듣고 믿음의 선진들처럼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게 하십니다.
이처럼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의 마음 안에 내주하시며 죄를 버리며 날마다 영의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 3:6) 말씀처럼 성령으로 거듭나야 영원히 죽지 않는 생명 곧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거듭남을 바람에 비유하셨습니다. 바람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처럼 성령의 임하심도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람이 불면 구름이 움직이고 사람을 시원케 하며 나뭇잎이 흔들립니다.
사람도 성령을 받아 거듭나면 마음이 새로워지고 기쁨이 충만해져 인생의 목표가 바뀌는 놀라운 변화가 생깁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성령이 임하심을 눈으로는 볼 수 없어도 나타나는 증거를 통해 성령으로 거듭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에베소서 2:8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했습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것도 오직 아버지 하나님이 값없이 주신 사랑의 선물입니다. 우리를 이처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수많은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여 아름다운 영광의 성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8-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