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은 곧 하나님의 마음으로 성령의 열매가 우리 안에 맺히면 그만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5. 자 비
자비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고 이해하며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상대가 상식 밖의 행동을 해도 그럴 수밖에 없는 처지를 헤아려 포용해 주지요. 골로새서 3:13-14에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말씀합니다. 자비의 열매를 맺으려면 자신이 먼저 용서하고 이해하며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자기가 옳다고 하는 굳은 자기적인 마음이 자비의 마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하지요. 우리가 비진리를 벗고 온전한 영의 사람이 되기 전에는 결코 스스로 옳다 할 수 없습니다. 육적인 자기를 버리고 모든 것을 넓게 받아들이며 사랑의 마음으로 상대를 돌아볼 때에 비로소 그의 처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 줄 알면서도 끝까지 사랑하셨고, 다윗도 자기를 죽이려는 사울 왕을 선대하였습니다. 우리도 이처럼 용서하고 이해하며 사랑하는 자비의 마음으로 상대에게 힘과 위로를 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6. 양 선
양선은 성령으로 영을 낳아 진리의 마음이 되어 선만 추구하려는 마음입니다. 마태복음 12:19-20에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라고 양선의 마음이 잘 나와 있지요.
양선의 마음은 첫째, 다투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죽이려고 온갖 궤계를 꾸민 사람과 맞서거나 변론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선의 지혜로 그들을 일깨우고 피할 자리는 피하셨지요. 사람들은 권면한다면서 선으로 깨우쳐 주기보다 상대의 티를 보고 지적하기 때문에 다툼이 생깁니다. 변론하거나 상대가 받지 못하는데 계속 주면 다툼이 일기 마련이지요. 아무리 좋은 것도 상대가 받지 못하면 삼가야 합니다. 선으로 상대를 품고 선의 지혜를 좇는다면 화평할 수 있습니다.
둘째, 들레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누군가 자기를 인정하고 알아 주기를 바라며 남을 누르려고 합니다. 고린도후서 10:18에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면 자연히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습니다. 모세나 바울 사도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심으로 놀라운 권능이 나타났고 사람들이 신과 같이 여겼지요.
셋째, 상한 갈대를 꺾지 않습니다. 상한 갈대란 악한 세상에서 세파에 시달리고, 마음의 상처를 받아 그 심령이 상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갈대가 상하면 잘라 버려야 합니다. 그대로 두면 더 썩어 들어가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사람도 가난한 심령으로 하나님을 찾으면 결코 외면치 않고 맞아 주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 예수님의 마음이 바로 양선의 절정에 해당합니다.
넷째, 꺼져 가는 심지도 끄지 않습니다. 심지는 양초나 등잔, 석유난로에서 실이나 헝겊을 꼬아서 꽂고 불을 붙이는 부분입니다. 심지가 꺼져간다면 불이 꺼져가고 있지만 불씨는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따라서 꺼져가는 심지란 마음이 악으로 심히 물들어 영혼의 등불이 꺼져 가고 있는 사람이지요. 이러한 사람이라도 구원받을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 양선입니다. 주님은 죄 가운데 살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어찌하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 계속해서 그들의 마음 문을 두드리시지요.
7. 충 성
충성은 먼저 자신에게 맡긴 일 이상을 하는 것입니다. 급료를 주며 일을 맡겼을 때 그 일만 잘했다고 충성했다 하지는 않습니다. 삯을 받았어도 시간, 물질, 몸을 아끼지 않고 그 이상의 일을 했을 때 충성이라 하지요(마 25장). 우리가 주 안에서 충성하고 희생하는 것은 결국 썩지 아니할 참되고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명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생명을 다해 감당할 때 하나님께 "네가 충성했다."는 칭찬을 받을 수 있지요.
다음은 온 집에 충성이 있습니다. 민수기 12:7에 하나님께서 모세 선지자에게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칭찬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교회 직분자로서, 형제간에, 가정에서 부모나 자녀에게, 직장에서 등 각 위치에서 해야 할 충성이 있지요. 우리가 한두 가지만 잘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충성하는 것이 바로 온 집에 충성입니다. 영의 사람으로 변화되면 적은 시간을 투자해도 모든 분야에 열매를 맺게 됩니다. 자기 유익과 편안함을 좇기보다 상대를 먼저 생각하고 전반적으로 돌아보며 희생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영적인 충성이 있습니다. 계시록 2:10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말씀합니다. 단지 육의 생명이 다하기까지 충성하라는 것이 아니라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는 충성입니다. 계명을 지키고 사명을 잘 감당하며 모든 위치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지요. "나는 날마다 죽노라" 한 사도 바울처럼 육을 철저히 죽이고 성결하여 충성할 때 참된 것입니다. 죄를 버리는 것이 상급이 되지는 않지만 성결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닮는 만큼 모든 분야에 영적인 충성을 할 수 있습니다.
8. 온 유
온유란 온화하고 부드러우며 덕이 있어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많은 사람이 와서 쉴 수 있고 그늘이 되며 모든 사람과 걸림이 되지 않는 아름다운 마음이지요. 그러면 옥토같이 거친 것이 없으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고 축복해 주십니다. 마태복음 5:5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말씀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많은 사람을 품으므로 천국에서 영원한 기업인 하늘나라 땅을 상급으로 받으며 큰 자랑이 되지요. 온유의 열매를 맺으려면 마음속에 있는 거친 것들, 즉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된 비진리를 빼내야 합니다. 말씀을 듣고 지키며 불같이 기도할 때 마음이 개간되어 옥토가 되지요. 상대와 걸리고 원수 맺고 미움, 시기, 다툼이 있는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마음을 개간하는 것이 하루아침에 되지는 않지만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굳은 의지와 노력에 따라 이룰 수 있습니다. 옥토에는 무엇을 심어도 신속히 열매를 맺는 것처럼 온유한 마음이 되면 다른 성령의 열매도 주렁주렁 맺게 됩니다. 그만큼 온유의 열매가 중요하며 성결을 이루는 데 지름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마음 밭을 개간하여 옥토로 만들어 온유의 열매를 맺음으로 천국의 땅을 기업으로 받기 바랍니다.
9. 절 제
절제는 진리 안에서 알맞게 조절하고 방종하지 않도록 제어한다는 뜻입니다. 절제는 단지 범죄하지 않기 위한 차원이 아니라,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온전한 영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필요합니다. '주 안에서는 모든 것이 넘칠수록 좋겠다' 생각하겠지만 영에 속한 것일수록 절제를 통해 더욱 질서와 조화가 필요하지요. 아무리 사랑이 많아도 절제하지 못하면 오히려 해가 되고 상대에게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희락도 마음은 항상 기쁘고 즐거워야 하지만 때와 장소에 따라 절제할 수 있어야지요.
절제가 임한 사람은 모든 일을 기분 내키는 대로 하지 않고 질서를 좇아 절제하면서 성령의 인도를 받습니다. 나서야 할 때와 가만히 있어야 할 때, 말을 해야 할 때와 하지 말아야 할 때를 분별하지요. 일을 할 때에도 어느 선까지가 자신의 위치에 맞는지, 남의 입장은 물론 자신 때문에 주변에 미칠 영향까지 고려합니다. 자기 생각에 아무리 좋아 보이고 영에 속한 일이라 해도 결코 분수에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러니 질서가 깨질 리 없고 주변과도 조화를 이루며 화평할 수 있지요.
그러나 절제하지 못하면 무분별한 행동으로 질서와 규칙을 무너뜨리고 남에게 피해를 줍니다. 자신은 좋은 의도에서 했어도 상대를 고려하지 않은 채 도를 넘음으로 질서를 깨뜨리는 결과를 가져오지요. 일을 서두름으로 그르치거나 사람들과 불편해집니다. 절제하지 못한 만큼 잘못하여 일을 그르치게 되고 서두르다 보면 분별력이 떨어져 이런저런 판단 정죄를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가령 사랑하라 하니 무조건 사랑을 베풀라는 뜻이 아닙니다. 아직 온전히 영으로 들어오기 전에는 감정이 앞서는 육적인 사랑이 되지 않도록 절제해야 하지요.
절제란 자신을 다스리는 힘으로 참 마음이 되면 마음먹은 대로 다스릴 수 있습니다. 거짓이 없고 간사함이 없는 진실한 마음이 되면 자기가 정한 것을 그대로 행할 수 있지요. 이것이 처음부터 잘되는 것은 아니지만 작은 일부터 결심한 것을 지키는 훈련을 하다 보면 결국 이루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9:25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하신 말씀처럼 영원한 것을 얻으려면 모든 일에 절제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지키며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마음에 성령의 열매가 맺히고 성결하여 온전해지는 만큼 잃었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의 영적 의미를 잘 양식 삼아 열매를 풍성히 맺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8-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