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열 므나 비유를 달란트 비유와 동일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는데 이는 각각 다른 영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달란트 비유는 재능을 가지고 얼마나 사명을 잘 감당했느냐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 주님께 인정받는 척도가 달라집니다.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육적인 재능뿐 아니라 영적 달란트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믿음, 소망, 사랑'이지요. 그러면 열 므나 비유에는 어떤 영적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
본문의 배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세리장 삭개오에게 구원을 베푸시며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열 므나 비유를 통해 구원에 관해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지요.
본문 11절에 "저희가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저희는 하나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러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다는 것은 이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구원의 도를 완성할 때가 가까웠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육적인 권세를 가진 메시아가 되어 줄 것을 기대했으므로 하나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게 이뤄지는 것이 아니므로 예수님께서는 열 므나 비유를 통해 진리를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눅 19:12)
그러면 열 므나 비유에는 어떤 영적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그 종 열을 불러 은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했습니다. '귀인'이란 귀한 사람으로 예수님을 말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셨지만 십자가를 지기 전으로 구세주로서 왕위를 받지 않으셨기 때문에 귀한 사람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므나'는 은을 계수하는 단위이지만 여기서는 성령을 뜻합니다. 귀인이 먼 나라로 갈 때에 종들에게 므나를 나눠 준 것처럼 주님이 부활 승천하시고 얼마 후 성령이 오셨지요. 열 므나를 한 사람이 한 므나씩 똑같이 받았듯이 믿는 사람들은 동일하게 한 성령을 받습니다. 가령 달란트는 영적으로 믿음, 소망, 사랑이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두 달란트, 다섯 달란트를 받을 수 있지만 므나는 성령이므로 하나밖에 받을 수 없지요.
귀인이 왕위를 받으러 먼 나라로 갔다는 것은 천국에 갔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 후 하나님께 가셔서 왕위를 받아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본문에는 주님이 성령을 주신 후에 왕위를 가지러 천국에 가셨다고 했습니다. 주님은 부활 승천하시고 왕위를 받으신 후에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셨지요.
그러면 왜 귀인이 므나를 준 다음에 왕위를 가지러 먼 나라로 갔다고 했을까요? 그 이유는 왕위가 예수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왕위를 가리키는 것이지요. 주님은 부활하셔서 왕위를 이미 얻으셨지만 성령받은 하나님 자녀는 이 세상에 몸담고 있기 때문에 왕위를 회복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는 이 세상에서 인간 경작을 받으며 하나님 형상으로 회복해 가는 중이지요. 주님이 공중 강림하시고 우리가 영체로 홀연히 변화될 때 비로소 영혼과 몸까지 온전히 회복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내가 돌아오기까지 장사하라" 하셨는데 이것은 주님이 오실 때까지 성령으로 장사하라는 뜻입니다. 마태복음 13장 44절에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했습니다. 자기의 소유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등 육적인 것을 말합니다. 육에 속한 것을 팔아 버리는 만큼 좋은 마음 밭이 되며 무엇을 심든지 좋은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또한 영으로 일군 만큼 좋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마음 안에 있는 육을 팔아 영의 좋은 마음이 되는 것이 영적 장사입니다. 주님께서 천국에 가심으로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성령은 하나님 자녀들이 영적인 장사를 잘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성령의 도움으로 죄성과 육을 벗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해 가는 것입니다.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눅 19:15)
귀인이 왕위를 받아 가지고 돌아와서 종들이 어떻게 장사했는지 묻습니다. 한 종은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기니 잘했다고 칭찬하시며 열 고을 차지하는 권세를 줍니다. 또 다른 종은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남기니 칭찬은 하시지 않고 다섯 고을만 차지하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달란트 비유에서는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남긴 사람에게 주님께서 동일하게 칭찬하였습니다. 재능이 많은 사람이나 적은 사람이나 최선을 다해 갑절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긴 것과 다섯 므나를 남긴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열 므나를 남긴 사람은 성령을 받아 육체의 일, 육신의 일을 다 벗고 온전히 성결을 이루었으므로 주님께서 칭찬하시며 열 고을을 주신 것입니다. 열 고을은 땅의 지경으로 온전히 성결을 이룬 사람이 들어 갈 수 있는 3천층을 말합니다. 나아가 온 집에 충성한 사람은 3천층 안 새예루살렘에 들어가지요. 그리고 다섯 므나를 남긴 사람에게는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는 것은 그가 50% 이상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였기 때문에 믿음의 3단계 즉 2천층에 들어가게 된다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므나를 남긴 사람이 와서 말하기를 "주의 한 므나를 수건에 싸 두었나이다" 합니다. 그는 아예 장사할 생각도 하지 않고 가지고만 있었지요. 그리고 당신이 엄한 사람이라 무서워서 그랬다고 변명합니다. 주님께서는 그에게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판단하노니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을 알았느냐"고 책망하시지요. 이런 사람은 성령을 받고도 죄를 싸워 버리지 않고 육체의 일, 육신의 일을 여전히 행하는 악인을 말합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무서운 하나님, 징계하시는 하나님으로 오해하고 환난이 오면 하나님이 치셨다고 하지요. 이것이 한 므나를 받았으되 장사는 하지 않고 악한 말을 하는 사람의 모습인 것입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눅 19:26)
주님께서는 악한 종에게서 한 므나를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 하시며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하셨습니다. 한 므나를 받아 열 므나를 만든 사람 즉 성령을 받고 죄를 온전히 버린 성결한 사람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합니다. 오직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하며 어찌하면 주님의 기쁨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까 하기 때문에 열심 내어 달려가지요.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그의 소원에 응답하시며 풍성한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악한 사람은 죄를 지적하는 말씀을 들어도 회개하려 하지 않습니다. 설교를 듣다가 말씀이 찔림이 되어 반발을 일으킵니다. '또 나를 두고 하는 말씀이구나!' 하며 판단하며 불편해지지요. 이렇게 성령을 받았다 할지라도 자기 악 속에서 성령의 소욕을 좇지 않고, 육체의 소욕을 좇아가면 성령이 소멸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에 대해 히브리서 6장 4~6절에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하셨지요.
누가복음 19장 27절에는 "나의 왕 됨을 원치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 말씀합니다. 여기서 죽인다는 것은 영이 죽는다는 뜻입니다. 아담이 불순종했을 때 "정녕 죽으리라" 한 대로 영이 죽게 된 것과 같지요. 즉 영의 사람이 되기 위한 장사를 하지 않으면 받았던 성령까지 빼앗겨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구세주가 되시는 것을 원치 않은 사람들은 예수님 당시뿐 아니라 오늘날에도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결국 죽임을 당하는데 바로 영적 사망의 형벌을 받아 지옥에서 영원토록 고통당하게 되지요.
그런데 여기서 바로 알아야 될 것은 이들이 예수님이 구세주 되심을 원치 않았기에 죽임을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인은 원래 율법의 저주를 받아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죄인들도 구원받게 하시려고 그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지요. 그렇지만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외면하고 예수님이 구세주 되심을 믿지 않는 사람은 여전히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18절에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이미 이들은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의 은총을 입은 여러분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에 늘 감사하며 열 므나 이상을 남기기까지 성령으로 열심히 장사하시길 바랍니다.
2008-0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