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죽어지는 밀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자연의 섭리를 통해 하나님의 깊고 오묘한 진리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한 알의 밀이 죽어 열매를 맺는 과정을 살펴보면 씨앗은 싹이 나고 뿌리를 내리기 위해 스스로 죽어져 모든 부분을 양분으로 내어줍니다. 그래서 비록 자기 형체는 없어진다 할지라도 새 생명체를 탄생시켜 많은 열매를 맺지요. 반면 싹이 날 수 있는 조건이 갖춰졌어도 씨앗이 스스로 죽지 않으면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이런 자연의 법칙은 영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썩어지는 밀알이 되셨을까요?
이사야 53:5~9을 보면 잘 나와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가 곤욕과 심문을 당하고 끌려갔으니 그 세대 중에 누가 생각하기를 그가 산 자의 땅에서 끊어짐은 마땅히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을 인함이라 하였으리요 그는 강포를 행치 아니하였고 그 입에 궤사가 없었으나 그 무덤이 악인과 함께 되었으며 그 묘실이 부자와 함께 되었도다"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의 독생자이시지만 피조물에게 수욕을 당하시고 많은 고초를 받으셨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이 이 모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고 십자가를 지고 철저히 죽어지실 수 있었던 것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듯이 무수한 영혼을 구원할 것을 믿으셨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2:2에는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고 했습니다.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이란 영원한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던 죄인들을 구원할 수 있다는 사랑과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는 기쁨을 뜻합니다. 또한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될 수 있다는 즐거움을 말합니다. 모세나 사도 바울 선진들도 이런 하늘의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고 오직 하나님 나라를 위해 철저히 죽어질 수 있었습니다.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믿음의 형제들을 위해 철저히 죽어지고 비록 부끄러움을 당할지라도 개의치 않고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2. 죽어지는 밀알이 되려면
첫째로, 자신에게 있어서 자아가 죽어져야 합니다.
왜 '자기'가 먼저 죽어져야 할까요? 사람은 이 땅에 태어나면서부터 부모, 형제, 학교, 친구, 이웃 등 다양한 환경을 통해 보고 듣고 경험하며 지식과 교양을 쌓아 갑니다. 이렇게 쌓은 지식과 교양이 자아를 형성하게 되지요. 우리가 세상으로부터 받아들여 형성된 것들은 대부분 비진리에 속한 것들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속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진리가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두드리게 됩니다. 자신이 마음 문을 여는 만큼 진리가 마음 안에 자리잡게 되며 그때부터 죄와의 싸움이 시작되지요.
왜냐하면 그동안 자신의 자아를 형성했던 것은 진리인 말씀에 위배되는 것이므로 거기서부터 부딪침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내 생각과 이론보다 하나님 말씀이 옳습니다." 하며 자기를 부인할 때 자기가 죽어지기 시작하지요. 즉 말씀에 위배되는 내 생각과 이론이 발견되면 그것을 벗고 진리로 변화시키기 위한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4에 마음의 비진리를 벗는 죄와의 싸움이 얼마나 치열한지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라고 말씀하셨지요. 비진리는 대충 회개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땀 흘리며 부르짖어 기도할 때 벗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노력을 보시고 은혜를 베푸시며 불세례를 내려 죄성을 태우시기도 하고 죄를 버릴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내 안에 있던 죄의 속성을 버리고 주님의 마음을 닮아 가게 되지요. 이렇게 몸과 결합된 죄성이 태워지는 만큼 영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밀알이 죽어질 때 그 속의 내용물이 양분으로 공급되고 껍질도 썩어 없어지듯이 자아를 형성하는 내용물이 진리로 바뀌고 자아라는 틀 자체도 없어야 합니다. 세상으로부터 입력되어 만들어진 자기 의와 틀은 다 구습이므로 이것을 버리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서 진리로 채워야지요. 그래서 중심에서 "나는 없나이다"라는 고백이 나올 때 비로소 영의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가정에서 죽어져야 합니다.
가족이 함께 하나님을 믿음으로 교회에 다니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한 사람이 교회에 나가면서 점차 복음화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도행전 16:31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셨고, 고린도전서 7:14에는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나니" 하셨습니다. 아내가 희생하고 잘 섬겨서 남편을 구원시키면 남편도 진리 따라 거룩해지고 남편도 믿지 않은 아내한테 잘하면 진리로 변화시켜 나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가족복음화를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는 키포인트는 처음 주님을 영접한 사람이 가정에서 어떻게 죽어지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기 때문에 가족복음화를 이루려면 천국 복음과 하나님의 살아 계신 증거들을 가지고 항상 전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전하는 사람이 가족에게 신뢰를 받아야 하지요. 가족은 가장 가까이에서 자신을 지켜보므로 믿지 않을 때와 다름없이 본은 되지 않으면서 입술로만 복음을 전한다면 신뢰할 수 없지요. 반면 가족이 보기에도 "교회 다니더니 착해졌다. 부지런해졌다."고 인정한다면 그만큼 전도해도 받아들이기가 쉽습니다.
가정에서 죽어지는 방법은 많이 있지만 그중에서 자신의 '구습'을 벗어버릴 때 가족들은 그 변화를 금세 느낍니다(엡 4:22). 구습이란 하나님을 만나기 전 '옛 사람'일 때 자신의 몸에 배인 좋지 않은 습관이지요. 예를 들어, 자라온 환경 속에서 욕이 일상의 말이 되었거나 혈기가 많아 작은 일에도 화를 내고 쉽게 손찌검을 합니다. 또 자기 방이 아무리 지저분해도 어머니가 정리할 때까지 둔다든가 바쁘다는 핑계로 자고 난 후에 이불을 개키지 않고, 옷은 벗은 채로 내버려 두는 것들이지요. 이 외에도 좋지 않은 구습들을 벗어버림으로 가족 안에서 섬기고 죽어진다면 늘 웃음이 떠나지 않는 화목한 가정을 이룰 것입니다.
셋째로, 교회 안에서 죽어져야 합니다.
성도는 혈육으로 맺어진 형제보다 더 가까운 하나님의 아들딸로서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토록 함께 할 사이입니다. 그런데 어느 형제의 허물을 들추어내며 다른 사람에게 전한다면 형제로서의 도리가 아니지요. 하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며 용서하고 남의 허물을 덮어 주며 좋은 점은 칭찬해 주라고 하였습니다. 잠언 17:9에는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살아 있는 사람은 상대의 허물을 볼 때 그것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자기 의로움으로 상대를 지적하거나 허물을 전하며 상대 때문에 피해를 입었을 때는 더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교회 안에서 얼마나 썩어지는 밀알이 되었는지는 화평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살아 있어서 자기 의를 주장하고 자기 틀을 고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화평하기가 어렵습니다. 틀이라는 것은 딱딱하여 부딪치기 마련이고 부딪치면 소리가 나니 화평이 깨지지요. 가령 누구와는 잘 지내는데 누구와는 불편하다면 진정으로 화평한 것이 아닙니다. 내게 잘해 주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러지 못한 사람과도 모두 화평을 이룰 수 있어야지요. 또한 상하 관계 속에서 질서를 따라 순종과 섬김으로 화평을 좇았는지, 소속된 곳에서 사랑으로 하나 되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죽어지는 밀알과 같은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화평을 이룹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화평을 좇는 사람을 통해 열매를 맺으십니다.
넷째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죽어져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뤄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 구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도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도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지요(행 1:8). 이처럼 주님의 증인이 되어 복음을 전하며 많은 사람을 구원으로 인도할 때 하나님 나라가 크게 이뤄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전도하는 데도 많은 사랑의 수고가 따릅니다. 그들에게 착한 행실로 빛을 비춰야 그들이 빛이신 하나님을 찾게 되지요. 한 사람을 전도하기 위해서도 많은 시간과 물질과 정성을 투자해야 합니다. 전도된 영혼을 갈무리하는 데도 마찬가지이지요. 우리가 헌신과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을 때 영혼들이 영적 믿음으로 성장하고 부흥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자처럼 아무런 수고도 하지 않고 그저 가지고만 있다면 열매를 남길 수 없습니다. 주님의 사랑을 진정으로 깨달은 사람은 주님의 사랑에 빚진 심정으로 전도와 영혼 갈무리하는 일을 수고롭게 여기지 않지요. 자신의 것을 다 내어주고도 기뻐하고 감사하며 자원함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죽어지는 것입니다.
로마서 8:17에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원한다면 이후로도 더욱 믿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죽어지길 바랍니다. 그래서 많은 영혼을 구원으로 인도하시고 또 영으로 이끌어 들이심으로 하늘의 해와 같은 영광의 자리에 이르시길 바랍니다.
2008-09-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