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도 바울의 출생과 하나님의 부르심
바울은 헬라어로 '작은 자'란 뜻이지만, 사도 바울은 대사도로서 기독교사에 우뚝 솟아난 거봉이 되었습니다. 그는 길리기아 다소 출신으로 당시의 석학인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엄한 율법의 교육을 받았습니다(행 22:3).
태어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은 이스라엘 족속으로 베냐민 지파에 속하며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었습니다. 바울은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이었고 그리스도 교회를 핍박하는 데 앞장섰으며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빌 3:5-6). 당시 세계 최고라 할 수 있는 로마의 시민권도 갖고 있었습니다(행 22:26-28).
그가 당시 유명한 학자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수학한 사실만 보더라도 그의 가문이 부유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원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까지는 독실한 유대교 신자로서 '사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대교는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영웅, 곧 메시아를 기다렸는데 철저한 유대교였던 사울은 많은 사람이 나사렛이라는 촌 동네 한 목수의 아들을 메시아라고 추종하는 것에 대해 분노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자기 나름대로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했기에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그리스도인들의 박해를 지휘하는 관권을 받아 옥에 가두고 죽일 때 찬성표를 던졌습니다(행 26:10).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복음을 전하는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현장에도 있었고 기독교인을 핍박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울이 대제사장의 공문을 가지고 다메섹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갈 때였습니다. 홀연히 하늘에서 강한 빛이 비취며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하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분은 바로 주님이셨지요. 사울은 자신이 그토록 핍박하던 예수님을 만난 후, 다메섹으로 들어가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하며 지난 날을 회개하였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따르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2. 사도 바울의 고난과 소망
사도 바울은 3차에 걸친 전도여행을 통해 이방 곳곳에 많은 교회를 세워 세계선교의 기반을 이루었습니다. 이렇게 이루기까지 원수 마귀 사단의 많은 방해를 받았으므로 그 길이 결코 평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고린도후서 11:23-28을 보면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처럼 그는 복음을 전하는 과정 중에 여러 번 매를 맞았으며 여러 번 죽을 뻔했고(고후 11:23
감옥에도 수없이 갇혔습니다. 이러한 연단으로 말미암아 사도 바울은 더욱 정금 같은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고 하늘의 소망이 넘쳐났던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후서 12:2을 보면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영적 체험은 자칫하면 교만하게 할 수 있기에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 12:7에서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수많은 연단을 통하여 마음의 할례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고 날마다 죽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을 받았습니다. 수많은 기사와 표적을 베풀며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 오셨다"(행 14:11)는 말을 들을 정도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로마서 2:28-29을 보면 마음의 할례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할례란 하나님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의 첫 언약으로 난 지 팔일 된 남자 아이의 성기 끝을 잘라내는 의식을 말합니다(창 17:10). 하나님께서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의 할례, 곧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 진리에 어긋난 비진리를 버리고 거룩한 성품을 이루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주 안에서 날마다 죽는 것을 자랑하며(고전 15:31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 9:27)고 하면서 온전한 구원을 위해 근신하였습니다. 결국 주님의 형상을 이룬 그는 담대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 4:16)고 권면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빌 2:17
고백할 정도로 사랑이 넘쳐났고 천국의 소망이 있었기에 어떤 핍박이 닥쳐와도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 9:3
하며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좇았습니다.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었기에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선한 싸움을 싸워 승리한 사도 바울의 고백대로 우리도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 4:7-8)고 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소망이 있었기에 사도 바울은 죽도록 충성하며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던 것'입니다(행 20:24). 그러므로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을 변치 않고 믿으며 천국 소망 가운데 어떠한 핍박이 오더라도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08-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