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1과 마음을 하나로

읽을말씀 : 수 1:6~9
외울말씀 : 히 10:38

축복의 새해를 맞이하여 하나님께서 교회와 개개인에게 주신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며 자신과 화평을 이룰 뿐아니라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당부한 것처럼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지지 않는다면 만사형통한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가정이나 학교, 교회, 직장, 사회 등 여러 공동체 안에서 하나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갑니다. 서로 마음이 하나되어 화평을 이룬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넘치는 축복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주 안에서 마음이 하나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1) 범사에 믿음의 눈으로 바라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정복한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강을 건너고 여리고 성을 함락시킬 때 모두가 하나 되어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제사장들에게 범람하는 요단 강물을 밟으라 할 때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급하고 거센 물살이 아닌 하나님 역사를 바라보고 발을 내디뎠습니다. 이렇게 한마음으로 강물을 밟을 때, 요단강은 흐름을 멈추었습니다(수 3장).
   하나님 일을 이룰 때 몇몇 사람이 불신의 눈으로 보면 전체적인 사기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철벽 같은 여리고 성을 돌 때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침묵을 지켰습니다. '적군이 화살이라도 쏘면 그대로 맞을 텐데 이런 위태로운 상황에 성 주위를 돌면 어쩌나.' 하며 불평불만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며 한마음으로 순종했습니다. 그러자 굳건한 성벽이 무너졌습니다(수 6장).
   '믿음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현실이나 세상 이치를 모르고 사람이 해야 할 바를 하지 않으면서 하늘만 바라본다는 뜻이 아닙니다. 만약 믿음이 그런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열두 정탐꾼을 보내어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할 이유가 없습니다.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에도 여호수아는 정탐꾼을 보내 상황을 파악하게 했습니다. 현실은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이기에 믿고 그 뜻을 구해 나간 것입니다.
   모세가 열두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냈을 때 여호수아와 갈렙 만이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나머지 열 명의 정탐꾼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현실을 바라보니 불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도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하나님을 원망하였고 40년 광야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민 13, 14장). 하나님께서는 광야생활을 통해 출애굽 2세대의 믿음이 성장하게 하셨고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을 받으려면 사람이 최선을 다해 믿음의 받침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개척 이후 우리 교회도 이처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이뤄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니 안일하게 있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후 11:28)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힘쓰고 애썼습니다. 요단강이 범람하는 것처럼 어려운 현실에 직면할 때도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변함없는 믿음의 고백과 행함으로 하나님 뜻을 이뤄 갔습니다.
   
   2) 소망으로 새 예루살렘을 바라봄
   우리가 하나님 일을 하는 것은 이 땅에서 영광이나 칭찬받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충성할 때 이 땅에서도 축복을 주시지만, 혹여 아무런 상이 없다 해도 장차 누릴 천국의 상급을 바라보고 기쁨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두가 온 영으로,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오기를 원하십니다(계 21장, 『천국』 책자 참조). 이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가장 큰 소망이며, 진정한 의미에서 주님의 피 값을 찾아드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히브리서 10:38에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앞서가는 몇몇 일꾼뿐 아니라 모두가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고 그 소망 가운데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노력해 나갈 때 자신의 마음 그릇이 변화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단지 소망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새 예루살렘이 마음 안에 임하는 것입니다.
   
   2. 마음을 선한 것에 두어야 합니다
   
   아무리 같은 목적을 가지고 일을 해도 서로 선을 마음에 품을 때라야 진정으로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얼마나 선으로 하나 되었느냐에 따라, 일이 쉽게 풀릴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지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서로 마음이 하나된 것처럼 보였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간은 물질에 대한 욕심으로 범죄하였고 결국 그로 인해 이스라엘도 아이 성을 정복하지 못했습니다(수 7장).
   그러므로 하나님 일을 할 때에는 함께 선한 것을 품어야 합니다. 각 사람이 선을 품었는지, 욕심을 품었는지, 또 하나님 영광을 위하는 마음인지, 자기 명예를 구하는 마음인지에 따라 마음이 하나 될 수도 있고 흩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일을 할 때에 하나님 나라를 위하며 교회와 목자를 사랑해서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열정적으로 해도 마음에 선한 것을 두지 않으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항상 양보와 용서, 화평과 섬김, 희생과 인내 등 선의 마음을 기반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윗 사람이 열심히 어떤 행사를 추진할 때에 아랫 사람은 '교회에 힘이 되고자 하는데 나도 최대한 힘을 모아야겠다.'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이 일이 잘되어도 주도하는 사람들만 인정받고 칭찬받는데 왜 내가 굳이 힘든 일을 해야 하나.' 하지는 않았는지요.
   또한 윗사람의 입장에서 전체를 위해 일을 추진하는데 일꾼들의 마음이 잘 모이지 않을 때, 감사와 기쁨으로 '내가 더 기도하고 능력을 받아야겠다.' 했는지요. 아니면 '교회와 전체를 위해 하는 일인데 왜 이렇게 마음을 써주지 않는가.', '당연히 질서를 따라 순종해야 하는데 왜 순종해 주지 않는가.' 불편해하며 상대를 노여워하지는 않았는지요. '일꾼들이 자기가 맡은 분야만 생각하고 자기 유익을 구하니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너무 힘들다. 다음에는 애쓰지 말고 각자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둬야겠다.' 하며 서운해 하지는 않았는지요.
   영육간에 질서는 지켜야 하지만 질서를 주장할 때에도 상대의 입장을 한 번 더 헤아려 주는 것이 선인 것입니다. 또한 더 좋은 의견이 있어서 건의했는데, 다른 일꾼이나 머리가 그 의견을 수용하지 않습니다. 이때 항상 선을 좇는 사람이라면 겸비하게 전체의 입장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내 의견이 더 낫다 해도, 혹은 전체의 의견대로 하면 내가 희생한다 해도 따라 줍니다. 비진리가 아니면 결정된 사항에 대해 최대한 마음을 모아 주지요. 이처럼 하나님 일을 이루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선입니다. 누가 더 옳고 그른지, 조금 열매를 더 내고 덜 내는지가 핵심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며, 섬겨 주고 용서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닮은 자녀들이 선한 마음으로 하나 되어 일할 때, 그 열매는 하나님께서 책임지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음성을 들려 주셔서 안 될 것도 되고 될 것은 더 잘되게 인도하시지요. 하나님 일은 사람의 능력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해에는 모든 일을 믿음과 소망의 눈으로 바라보고 선으로 마음을 모아 하나님 나라를 크게 이루며 영육간에 풍성한 축복의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2009-0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