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7과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읽을말씀 : 마 23:13~33
외울말씀 : 롬 12:9 l 참고말씀 : 마 11:20~24

오늘날 부모 자녀 간이나 부부, 형제, 이웃 사이에 이런저런 악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족 간에 재산 문제로 고소하는가 하면, 자기 유익에 따라 배신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많은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자신에게도 큰 고통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 가운데 계시므로 하나님의 자녀들도 선에 속하기를 간절히 원하시지요. 참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1. 고통과 멸망으로 인도하는 악을 미워하라
   
   세상에서는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사람을 선하다고 하지만 도덕이나 양심도 하나님 말씀에 비춰 보면 선이 아니거나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인 것도 있습니다. 모름지기 선의 절대적 기준은 오직 하나님 말씀이며 이에 어긋난 것은 모두 악입니다.
   마음에 악이 있으면 어느 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알 수 없습니다. 비록 조그마한 악의 모양일지라도 그 악이 자라면 사단이 역사하여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죄 가운데 빠져들지요. 악은 자신과 상대에게 고통과 아픔이 되므로 모양이라도 미워해야 합니다. 악을 미워하면 자연히 멀리하게 되고 생각지도 않으며 행치 않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악을 미워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질병이 틈타거나 시험 환난이 오는 것은 마음의 악을 행함으로 나타내는 육체의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육체의 일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짐승과 다름없으므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며 사람의 본분을 찾도록 징계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있는 비진리의 생각이나 육신의 일 때문에 시험 환난이 오지는 않습니다. 다만 육신의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육체의 일로 발전할 수 있으니 반드시 버려야 합니다.
   
   2. 완악한 마음을 버리고 선에 속한 자가 되어야
   
   만일 하나님의 표적을 보고도 믿지 않는다면 이것도 악 중의 악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0~2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라신과 벳새다가 회개치 않자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책망하시고, 가버나움에 대하여는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셨지요. 예수님께서는 이곳에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는 큰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예수님을 신뢰할 만한 놀라운 권능을 보았으니 그 가르침을 좇아 회개하고 악을 버려야 할 텐데 오히려 그들은 배척하였지요.
   그런가 하면 마태복음 12장 38~39절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몇 사람이 예수님께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하시지요. 가령 하나님을 보여 주면 믿겠다거나, 죽은 자를 살리면 믿겠다는 사람들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믿으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흠을 잡고 배척하며 잡아 죽일까 궁리하면서 믿으려 하지 않았지요.
   오늘날도 하나님의 종과 일꾼들을 통해 수많은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도 믿지 않고 판단 정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마음속에 악이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육신의 일을 버리지 않아 육체의 일을 자꾸 행하다 보니 점점 심령이 무뎌지고 완악해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양심이 무뎌져 화인 맞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사람은 깨닫지를 못하니 회개할 수도 없고 예수님을 영접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육체의 일을 끊고 그 다음에는 마음에 있는 육신의 일을 버려야지요. 이렇게 죄와 악을 버려 나갈 때 하나님과 사귐이 있고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요일 1:7, 3:9). 이런 사람의 얼굴에는 기쁨과 감사가 넘치며 어떠한 질병도 치료받고 가정이나 일터, 사업터 등 어떤 문제라도 해결받을 수 있습니다.
   
   3. 우리가 미워해야 할 악의 모양들
   
   그러면 선에 속한 자가 되기 위하여 구체적으로 어떤 악을 미워해야 하는지 마태복음 23장 13~33절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는 경우
   천국 문이란 복음 안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우리가 진리를 알고 지켜 행함으로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는 말씀을 지키는 척 했지만 마음이 완악하여 하나님 뜻과는 반대로 행했습니다. 그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속에는 불법과 악이 가득하였므로 세례 요한과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온갖 궤계를 꾸며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오늘날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처럼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손가락질받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은 물론 상대도 구원받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2) 교인 하나가 생기면 자기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 경우
   시집살이를 호되게 한 며느리가 정작 시어머니가 되면 더 심하게 시집살이를 시킨다고 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배여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누구에게 배우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가르치는 사람의 마음가짐과 사고방식, 언어 행동이 크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기관이나 바리새인 같은 사람을 만나 신앙생활을 하면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여 함께 악으로 빠지게 되지요.
   예를 들면 교회 온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인도한 사람의 언어와 행동으로 인해 출석하지 않거나 주님을 믿지 않는 경우, 머리 된 일꾼이 본이 되지 못해 교구나, 구역, 기관의 부흥을 막는 경우 등이 있습니다.
   
   3) 탐심, 거짓, 욕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잘못 전달하는 경우
   하나님께 무엇을 맹세하거나 서원한 것은 마땅히 지키도록 가르쳐야 하는데 자신의 탐심, 욕심을 따라 가르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영이 아닌 썩을 육입니다. 가령 교회에서 가르치는 사람이 말씀은 소홀히 하고 헌금 작정에만 강조한다면 그는 소경 된 인도자입니다. 어떻게 하면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천국에 들어갈 것인지를 가르쳐야 합니다.
   
   4)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린 경우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버린 '의와 인과 신'이란 무엇을 뜻할까요? '의'란 죄를 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여 믿음을 좇아 순종하는 것입니다. '인'이란 인간의 삶 속에서 자기 본분을 다하는 것으로, 사람이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짐승만도 못할 수 있고 법 없이 살 수 있습니다. '신'이란 믿음으로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것입니다(벧후 1:4). 악을 버리고 계명을 온전히 지켜야 신의 성품을 참예할 수 있습니다.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은 의와 인과 신은 소홀히 하고 예물만 중요시했기 때문에 책망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물보다도 상한 심령 곧 회개하는 마음을 더 기뻐하십니다(시 51:16~17). 가르치는 사람은 먼저 죄를 지적하여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하고, 십일조나 기타 것을 가르쳐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해야 합니다.
   
   5)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한 경우
   투명한 크리스털 잔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아름답게 빛날 수도, 추하고 더러운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마음 안에 미움, 시기, 질투 등 악이 가득하다면 어찌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니 말씀으로 자신을 조명하여 탐욕과 방탕 등 마음의 악을 버려야 합니다. 마음이 깨끗해지면 겉모습은 자연히 깨끗해집니다.
   
   6) 회칠한 무덤과 같은 경우
   아무리 호화롭게 꾸며 놓은 무덤이라도 속에는 벌레가 우글거리며 시체가 있을 뿐입니다. 이처럼 마음속에는 더러운 악이 있으면서 겉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척 가장하는 가증한 사람을 회칠한 무덤이라 합니다. 즉 마음속에는 미움, 시기, 질투, 간음 등 많은 죄가 있으면서 선하고 지혜로우며 온전한 척하며 상대를 권면하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7) 자신은 여전히 의롭다고 여기는 경우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다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예하지 않았을 것이라"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조상보다 선하거나 의롭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얼마나 악한지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고 진리를 듣고 마음에 걸리는데도 여전히 자신은 의롭다고 생각하며 회개치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신 말씀에 자신을 조명하여 걸리는 부분이 있다면 신속히 벗어 버려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로마서 12장 9절을 다 함께 외워봅시다.
   2. 악을 버리고 선에 속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무엇인가요?
   3. 내 안에서 책망받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같은 모습을 찾아보세요. 혹여 나의 말이나 행동 때문에 상대가 교회나 목자를 멀리한 한 적은 없나요?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6편 '생명으로 이르게 하는 의'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죄'와 '악'의 차이
   
   '죄'란 마음의 악이 구체적인 모양으로 나타난 것이며 '악'은 마음 안에 있는 '죄의 속성'이다. 그래서 '악'은 보이지 않는 땅속의 뿌리와 같고 '죄'는 눈에 보이는 줄기와 잎, 열매 부분과 같다. 뿌리가 없으면 나무의 줄기와 잎, 열매가 있을 수 없듯이 악으로 인해 죄가 성립되는 것이다.

2009-02-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