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憾情)이란 원망하거나 성내는 마음을 말합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감정을 제어하지 못해 서로 언짢게 여기거나 성을 내기도 하고 원수를 맺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원수를 갚기 위해 악을 행하며 서로 고통을 당하기도 합니다. 혹여 여러분은 감정 때문에 부모와 자녀, 형제와 친구, 동료와 이웃 간에 서로 대립되어 있지는 않은가요?
1. 친히 원수를 갚지 말아야 하는 이유
로마서 12장 19~20절에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심판하는 권세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셨으니(요 5:27) 오직 주님 외에는 이 세상 어떤 사람에게도 심판할 수 있는 자격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7장 5절에도 예수님께서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말씀하셨고, 하나님 보시기에 예수 그리스도 외에 의인은 이 세상에 한 사람도 없기 때문에(롬 3:10) 우리는 심판할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은 물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도 자기만 옳고 상대는 그르다고 정죄하는 일이 종종 있지요.
율법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므로 우리가 재판장이 되어 형제를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은 교만이요 큰 죄입니다(약 4:11~12). 심판하는 권세는 흠도 티도 없고 죄가 전혀 없으신 주님에게만 있으니 우리는 누구를 심판해서도, 원수를 갚아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친히 원수를 갚는 것이 아니라 심판 날에 주님께서 갚아 주심을 믿기에 다만 주님께 부탁하고 아버지 하나님께 맡기는 것뿐입니다.
2. 감정을 제어하고 모든 일을 주께 맡겨야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감정을 제어할 수 있을까요? 마태복음 5장 39~42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말씀합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지고 상대를 이해하며 포용하고 수용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 감정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진리 말씀에 의지해서 오로지 이해와 포용과 수용 속에 나아가면 다툼이나 원망, 탄식이 나오지 않습니다.
모든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마서 12장 21절에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말씀한 대로 상대가 악으로 나올 때 악으로 되받아치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말하고 행하면 능히 악을 이길 수 있습니다. 감정이 격해져 다투거나 미워하고 슬퍼하지 말고 감정을 제어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다윗 왕이 자기 아들 압살롬의 반란으로 인해 피난 가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사울 왕의 집 족속 중에 시므이라는 사람이 다윗 일행을 따라오면서 계속 저주하고 티끌을 날리며 돌을 던졌습니다. 한 나라의 왕에게 이렇게 행동하였으니 죽어 마땅한 일이었으나 다윗은 자기가 잘못하여 하나님 앞에 징계와 연단을 받고 있는 처지임을 알았기에 그를 용서해 주었습니다.
그 후 다윗은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을 남겨 결국 그를 죽이게 합니다(왕상 2:9). 다윗 왕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어도 시므이는 악을 쌓은 악한 자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 악으로 멸망할 사람이었기에 신약시대에는 그런 것조차도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즉, 원수를 친히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부탁하라는 말씀이지요.
그러면 사울 왕의 경우는 어떠하였습니까?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을 죽이고 돌아올 때 여인들이 나와 노래하며 춤추며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며 창화하였습니다(삼상 18:6~8). 이 말을 듣고 사울 왕은 불쾌하여 매우 노하였지요. 마음속에 다윗에 대한 시기가 일어나서 악이 나오고, 그것이 감정이 되어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니다가 결국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경우와는 달리 성경 곳곳에는 자기가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맡겼을 때에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일들이 나옵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경우가 바로 그 예입니다. 바사 제국의 대신 하만은 모르드개라는 유다 사람이 자기에게 절하지 않는 것을 보고 심히 노하여 유다인들을 몰살시키려고 흉계를 꾸며 왕의 조서까지 받아 냅니다. 그러자 모르드개와 유다인으로서 왕비가 된 에스더는 오직 금식하며 이 일을 하나님께 부탁하였습니다. 그리고 왕 앞에 나아가 침착하고도 지혜롭게 이 일을 탄원하였습니다. 그랬더니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모두 심판하셨습니다. 하만이 모르드개를 달려고 자기 집에 세워 놓은 나무에 자기 자신이 달려 죽었고, 유다인들을 진멸하려 하던 대적들이 오히려 진멸을 당한 것입니다.
신약 시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헤롯 왕이 교회를 핍박하면서 사도 야고보를 칼로 죽이고 또 베드로를 옥에 가두었으나 교회는 원수를 갚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옥에 갇힌 베드로를 위해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하였는데 하나님은 그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천사가 옥중으로 찾아와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에 매여 누워 자고 있던 베드로를 깨워 옥 밖으로 내보내 준 것입니다. 날이 새어 베드로가 탈옥했다는 사실을 안 헤롯은 파수꾼들을 전부 죽이라 명합니다. 헤롯이 이렇게 악을 발한 결과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 곧 벌레가 먹어 죽었습니다(행 12:23). 하나님의 심판에 맡겼더니 직접 심판하신 것입니다.
3. 선으로 악을 이겨야
감정으로 처리하는 일은 진정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부부간에도, 형제간에도, 성도 간에도 감정 대립이 되었을 때 참지 못하면 엄청난 오해와 다툼을 불러일으키고 심하면 원수를 맺게 됩니다. 정치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가족이든, 이웃이나 일터에서든 여러 가지 분야 속에서 상대가 나에게 해를 끼칠 때에 감정으로 맞부딪치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선을 행하면 그 결과는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또 하나님께서 심판해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선을 행한 사람에게 복을 주고 형통케 하며 머리가 되게 하고 높이 들리게 하십니다. 하나님 자녀인 우리는 진리대로 행해야 합니다. 감정을 제어하고 다만 기도와 간구로, 또한 금식으로 하나님 앞에 아뢰어 그분께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여 악한 상대가 무릎을 꿇게 하십니다(시 37:7~9, 62:12).
따라서 선악 간에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공의롭게 심판하는 것이니 모든 것을 아버지 하나님께 부탁하는 지혜로운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원수 갚을 능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께 기도로 부탁하셨으며(벧전 2:22~23), 예수님 제자들도 핍박을 받을 때에 다만 하나님께 기도하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행 7:60).
우리는 어떻습니까? 누가 기분 나쁘게 하면 얼굴을 붉히며 감정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감정을 제어하고 오직 기도로 모든 일을 주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큰 축복으로 함께하십니다. 어디서든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며 들어가도 복, 나가도 복, 꾸어 줄지언정 꾸지 않으며 가정, 일터, 사업터 등 모든 곳에 축복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혹은 모든 사람 사이에 감정으로 원수를 맺지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또한 내 눈에는 들보가 있으면서 재판장이 되어 판단하거나 형제의 티를 빼려 한다면 교만하고 하나님께 무례한 것입니다. 모든 것을 공의로운 하나님께 맡기고 오직 사랑의 마음으로 선을 행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로마서 12장 21절 말씀을 함께 외워 봅시다.
2. 우리 삶 속에서 감정을 제어하지 못해 힘들었던 일과 영의 생각으로 평안함을 느꼈던 일들을 찾아봅시다.
그리고 앞으로 감정을 제어하고 영의 생각만 하리라 스스로 다짐해 봅시다.
3. 감정을 버려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가지고 있는 것은 없는지 생각나는 대로 한 가지 이상씩 적어 봅시다.
그리고 그것을 버릴 수 있도록 성령님의 은혜를 구하는 기도를 드려봅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11편 '믿음의 행함'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들보란?
건물을 지을 때 칸과 칸 사이의 두 기둥 위를 가로질러서 얹는 지지대로서, 오늘날 건설 현장에서 들보는 보통 목재, 쇠, 철근 콘크리트로 만든다.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본다'(마 7:5)는 말은 자신의 커다란 잘못은 보지 못하고 남의 작은 잘못만을 책잡고 나무라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2009-07-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