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조직과 단체에서 인정받고 사랑받는 사람이 되려면 그 안의 질서와 규칙을 잘 지키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려면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1.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순종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에 비추어 얼토당토 않는 일은 당연히 순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신앙 안에서는 현재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하고, 할 수 없는 것에 순종할 때 그것을 진정한 순종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할 수 없는 것을 행할 때에 의로 여기고 순종의 축복을 주시며 기사와 표적이 따르도록 역사하십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7일 동안 성을 돌았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상식이나 지식과는 도무지 맞지 않는 일입니다. 어떻게 성 주변을 돌면서 큰 소리로 외친다고 해서 성이 무너지겠습니까? 하나님 말씀이니 믿고 순종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순종을 보고 무너뜨려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순종하면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나타납니다.
이러한 순종의 결과를 통해 믿음이 성장하고 더욱 담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실 순종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도 사람 편에서 그런 것이지 하나님 편에서는 결코 순종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생각과 경험, 사고방식이 세상으로부터 입력되어 그 한계가 머리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은 자신도 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마가복음 9장 23절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신 대로 하나님 편에서는 한계가 없습니다. 따라서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단지 믿음이 적기 때문이며, 생각 속에서 사람과 과학, 의학적 한계를 깨뜨리면 능히 순종할 수 있습니다.
2. 순종의 사람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변함없이 무엇이든 하나님 앞에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하셨을 때에 어떻게 하였습니까? 히브리서 11장 8절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한 대로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했으나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이러한 순종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축복을 받았습니다.
하갈의 소생인 이스마엘을 내보낼 때에도 그러합니다. 첩 하갈의 소생인 이스마엘이 본처 사라에게서 난 아들 이삭을 희롱하므로 사라는 이스마엘을 내쫓을 것을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였습니다. 이로 인하여 아브라함이 근심하자 하나님께서는 사라의 말대로 하라고 지시하고 아브라함은 그대로 순종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섭리가 이삭을 통해 이루어졌고, 이스마엘도 한 민족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엄청난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100세에 낳아서 애지중지 기르는 약속의 아들 이삭을 산으로 데리고 가서 짐승처럼 잡아 나무 위에 올려 놓고 불로 태워 번제를 드리라는 것입니다(창 22:1~2). 사실 인간의 생각을 동원한다면 도무지 순종할 수 없는 일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아브라함의 씨라 칭할 것이라' 하셨고(창 21:12), '자손이 심히 번성케 되며 나라들과 열왕들이 나오리라'(창 17:6)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이삭을 죽여서 번제로 바친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러나 아브라함은 아무런 이유를 대지 않고 순종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지시하는 곳으로 갑니다(창 22:3).
이렇게 아브라함이 하나님 말씀에 조금도 주저하거나 머뭇거리지 않고 신속히 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이삭을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하고(히 11:17~19), 결코 선하지 않은 일을 지시하실 리가 없다는 것을 확고부동하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3. 순종의 축복과 불순종의 고통
아브라함은 이런 믿음을 갖고 순종했기에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하나님의 벗이 되었으며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은 참으로 컸지요. 권세로는 왕들이 그를 영접할 정도였습니다. 애굽 왕 바로가 그러했고, 블레셋 산악 도시 그랄의 왕 아비멜렉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고, 주변에 물이 없을 때에도 그에게는 물이 있었습니다. 소돔에 살던 롯이 포로로 잡혀갔을 때에 집에서 연습한 318명을 거느리고 가서 구출할 정도로 많은 종이 있었으며, 자녀의 복과 건강, 장수의 축복도 받았습니다.
그 외에도 하나님께서 그에게 자신이 앞으로 하실 일을 자상하게 설명해 주실 정도로 영적인 축복까지 받았지요(창 18:17).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사람을 얼마나 기뻐하며 그에게 축복하시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혹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어렵고 힘들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힘든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자기 생각과 마음, 자기 계산에 따라 행하기 때문입니다. 오직 순종할 자세를 가진 사람은 자기 유익이나 지금 상황을 따지지 않고 '내가 어찌하면 순종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뿐입니다. 이렇게 생각을 깨뜨리고 순종할 때 놀라운 하나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불순종을 얼마나 싫어하며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고통을 가져다주는지 알아야 합니다.
아담의 아들 가인은 피의 제사를 드려야 함을 알면서도 자기 생각대로 땅의 소산으로 드렸지만 동생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피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 제물만 기뻐 받으셨지요. 가인은 이를 시기하여 아우를 쳐 죽이고 말았습니다. 불순종이 살인을 낳고 저주받은 삶이 시작된 것입니다.
사울 왕은 어떠하였습니까? 이스라엘이 블레셋과 전쟁을 해야 하는데 사무엘 선지자가 정해 준 기한까지 오지 않자 그를 대신하여 자기가 번제를 드렸습니다. 이 일로 인해 사무엘은 사울 왕을 책망하였으나 그래도 사울은 깨닫지 못하고 또다시 불순종의 죄를 범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진멸하라 하셨지만 좋은 것들은 남기고 다 멸하지 않았지요. 사무엘은 다시 사울 왕을 책망하여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삼상 15:22~23) 하였습니다.
이처럼 불순종하는 사람들은 사울 왕처럼 자신의 지위를 잃고 멸망으로 치닫거나 각종 환난을 당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사르밧 과부나 나아만 장군처럼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는 사람들은 죽을 고비도 넘기고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먹을 것이 없어 죽으려고 했던 사르밧 과부는 선지자 엘리야의 말에 순종하여 가뭄이 끝나는 날까지 아무 걱정 없이 살았습니다. 문둥병에 걸린 나아만 장군은 엘리사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여 깨끗이 치료받았습니다. 이 외에도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곳마다 놀라운 축복으로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처럼 오직 믿음으로 모든 이론과 생각을 깨뜨리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영혼이 잘되는 축복은 물론, 자녀의 축복, 물질의 축복, 건강의 축복 등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마가복음 9장 23절을 함께 외워 봅시다.
2. 진정한 순종은 무엇이며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3.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와 불순종할 때의 열매들이 어떠했는지 말해 봅시다.
4. 우리 삶 속에서 자신의 능력이 미치지 못한다 하여 시도조차 해 보지 못한 것이 있나요? 이제부터라도 하나님께 맡기며 행할 수 있도록 노력해 봅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제15편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번제란?
구약시대 제사법 중에 하나로서 제물이 되는 짐승을 불에 태워 그 향기로운 냄새를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이다(레 1:6~9). 희생되는 짐승은 흠이 없는 수컷에만 한하여 주로 소·양·염소 등을 드렸으며, 가난한 이들은 산비둘기·집비둘기 등을 바치기도 했다(레 5:7). 짐승을 잡아 번제로 드리는 것은 우리 생명 자체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번제의 영적인 의미는 하나님 말씀 가운데 온전히 거하여 거룩하게 살며 모든 삶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다. 오늘날 번제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주일 예배를 말한다.
2009-08-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