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45과 주여 저를 도우소서

읽을말씀 : 마 15:24~28
외울말씀 : 마 15:27 ㅣ 참고말씀 : 삼상 21장, 왕하 25장

자존심이란 '자기 몸을 굽히지 않고 스스로 높이는 마음'을 뜻합니다. 간혹 자존심을 내세우다가 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존심을 버림으로써 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존심을 버리고 그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여 도움 받기를 원하십니다. 이스라엘의 다윗 왕은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겸손한 자였기에 이 땅에서는 물론 천국에서도 큰 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1. 자존심을 굽힘으로 좋은 결과를 얻은 다윗
   
   다윗은 블레셋 최고의 용사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어 백전백승하였습니다. 그러자 시기심에 사로잡힌 사울 왕은 국가 기관을 총동원하여 다윗을 죽이려 하였지요. 사무엘상 21장을 보면 다윗은 얼마나 다급하고 절박했던지 블레셋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도망을 칩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적국이며 '가드'라는 성읍은 다윗이 죽인 골리앗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아기스 왕의 신하들은 자기 나라 최고의 전사를 죽이고 병사들을 수없이 죽인 다윗을 당장에 처치하라고 권합니다. 다윗은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채고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미친 척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질질 흘리기까지 합니다. 아기스 왕은 다윗의 이런 행동을 보고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 이 자가 어찌 내 집에 들어오겠느냐" 하며 쫓아냈습니다.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다윗은 자존심을 버림으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훗날 다윗은 왕이 되어 블레셋을 완전히 굴복시켜 조공을 바치게 했고, 견고한 통일왕국을 이룩하였습니다. 만일 다윗이 자존심을 내세우다 죽었다면 얼마나 헛된 삶입니까. 만약 여러분이 그러한 상황에 처했더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죽을망정 그렇게는 못하겠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 자존심이 가치가 있는지, 자존심을 세우는 것이 옳은지 분별해 보시기 바랍니다.
   
   2. 자존심을 세우다 비참한 결과를 맞이한 시드기야 왕
   
   남유다 왕국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어떠했습니까? 바벨론의 피지배국이었던 유다는 두 차례에 걸쳐 강대국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풍전등화의 위기에 있었습니다.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똑똑한 귀인들은 다 바벨론으로 잡혀 가고, 평범하고 힘없는 백성들을 대상으로 유다를 다스린 왕입니다. 그는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에게 한 번 소환을 당해 국정을 보고하고 조공을 바치고 돌아온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애굽 왕 바로와 비밀리에 동맹관계를 맺고 내통하다가 바벨론을 배반하기에 이릅니다.
   이에 예레미야 선지자가 바벨론에 항복하라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지만 수치스럽게 여기며 오히려 선지자를 감옥에 가둬 버립니다. 아무 힘도 없으면서 자존심만 내세우다가 결국 바벨론에게 세 번째 침략을 당합니다. 예루살렘 성은 바벨론에 무려 1년 7개월간 포위되어 성안의 보급 물자들이 완전히 끊기고, 식량도 떨어져 사람들은 굶어 죽어 갔습니다. 게다가 바벨론 군대가 성벽을 뚫고 들어와 시드기야와 군사들은 한밤중에 도망치다 결국 붙잡히지요.
   결국 예루살렘 성전은 불탔고 완전히 함락되었습니다. 바벨론 왕은 배반한 시드기야 목전에서 그의 아들들을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버리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고 가 죽는 날까지 옥에 가두었습니다. 남유다 왕은 자존심을 굽히지 않음으로 자신뿐 아니라 나라가 망하는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그러니 자존심 때문에 자기를 낮추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깨우쳐야 합니다.
   
   3. 겸비한 마음을 소유하여 응답받은 수로보니게 여인
   
   예수님께서 수로보니게 지방에 가셨을 때 더러운 귀신 들린 딸을 둔 여인이 예수님께 나와 자기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 주시기를 간구하였습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나이다" 하며 간청하지만 예수님은 한 말씀도 하지 않습니다. 여인이 계속하여 소리 지르며 애원하자 제자들이 나서서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라고 하지요. 그제야 예수님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답변하십니다.
   여인이 예수님께 절하며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하지만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며 이방 여인을 개에 비유하셨지요. 이는 여인을 시험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을 개 취급하는 말에 자존심이 상해 돌아갈 수도 있지요. 그러나 여인은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지요. 겸손히 대답한 여인의 말에 감동한 예수님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여인의 딸이 그때로부터 나았습니다. 자기를 철저히 낮춤으로 믿음의 시험을 잘 통과하여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은 것입니다.
   
   4. 의로운 중심에서 나오는 믿음의 고백
   
   수로보니게 여인이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며 자신을 낮춘 것은 단지 딸을 고치겠다는 일념으로 분을 삭히거나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계산하여 한 말이 아닙니다. 여인의 중심이 의롭고 겸비하기 때문에 그런 대답이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즉 순간에 지혜를 짜내 '내가 이렇게 대답해서 예수님의 마음을 사야겠다' 한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에 있는 선과 온유와 겸손이 그대로 나온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려면 교만을 버리며, 마음을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진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야 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갚으며, 육의 마음을 온전히 버리고 영의 마음, 의로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문제이든 응답받을 수 있고 믿음으로 행하는 모든 일에 거칠 것이 없습니다.
   로마서 1장 17절에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했는데 수로보니게 여인은 그 중심이 겸비하고 의로웠기 때문에 끝까지 믿음의 고백을 하여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러한 중심이 되면 어떤 문제에 부딪힌다 해도 믿음의 행함이 나오게 되므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로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는 것입니다. 믿음은 신뢰하는 것이고 그 신뢰에 변함이 없으며 또한 순종하는 것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그것을 믿고 예수님을 신뢰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어떤 행동과 말씀을 하셔도 요지부동하고 변함없는 마음으로 믿어 드렸습니다. 그러면 순종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예수님께서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시니 여인은 "주여, 옳소이다"라는 대답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서운함이나 자존심 상한다는 감정을 품지 않고 그 말씀에 긍정의 말로써 순종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감동시켜 드리는 말을 하였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의롭고 겸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내보이면 무엇이든지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와 명예 등 결국은 없어지고 마는 육의 것들을 얻기 위해 얼마나 땀 흘리며 수고합니까? 그런데 그러한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영생과 아름다운 천국의 삶을 얻기 위해 정녕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겸비하여 낮아지고 영원한 것을 취하기 위하여 수고하며 인내하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내 안에 있는 자존심, 높아지고 섬김 받고자 하는 마음, 자랑하고 싶은 마음,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 이런 어둠의 마음을 버리고 참으로 겸비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을 내보임으로 모든 것에 응답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마태복음 15장 27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2. "나는 남왕국 유다의 마지막 왕으로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바벨론에 항복하라고 하나님의 뜻을 전했는데도 자존심을 내세우다가 멸망당했습니다. 아들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도하고 두 눈이 뽑혀 바벨론 포로가 되었습니다." 나는 누구일까요?
   3. 혹여 "나는 자존심을 빼면 시체야! 다른 건 몰라도 내 자존심 건드리면 누구도 용서 못해!" 했던 적은 없습니까? 자신의 변화된 모습에 감사하며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겸손한 자가 되기 위해 합심으로 기도합시다.
   
   ● 금주 과제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보시며 더욱 감사하는 한 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 갑시다!
   
   수로보니게
   팔레스타인 북부 수리아 지역의 베니게를 이르는 말이다. 수로보니게는 로마의 지배 아래 있는 수리아의 베니게란 뜻이다(막 7:26). 마태복음 15:22에 나오는 수로보니게 여인이 가나안 여자로 기록되었는데 가나안이 베니게의 옛 이름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2009-1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