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원래 의미는 참혹한 사형의 도구요 영적으로 볼 때는 저주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인류를 살리기 위해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우리에게는 그 저주의 의미가 변하여 한량없는 주님의 사랑과 구원을 상징하게 되었지요. 인류의 모든 저주를 예수님께서 한 몸에 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받고 구원받아 천국에 가게 된 것입니다.
1.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신 데에는 깊은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14절을 중심으로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신 이유를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기 위해서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말씀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써 모든 인류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다는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불순종함으로 그의 후손들 또한 죄인이 되어 저주받아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즉 로마서 6장 23절에 기록된 대로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율법의 저주 아래 놓인 것입니다.
이러한 저주에서 속량하려면 영계의 법칙에 따라 저주를 받은바 되어 나무에 달려야 합니다(신 21:23).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하고자 대신 저주를 받아 나무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이로써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롬 5:17~19).
레위기 17장 11~14절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말씀했습니다. 모든 육체에는 피가 있어야 생명이 유지되고 없으면 죽습니다. 때문에 생명과 일체라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영생할 수 있는 영의 생명을 얻으려면 죄를 용서받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하신 대로 반드시 생명과 일체인 피를 흘려야 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죄를 지을 때마다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원죄와 자범죄가 없는 깨끗한 피, 곧 영에 속한 피를 단번에 흘려주심으로 모든 사람이 온전히 죄를 용서받고 영생의 길로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제는 짐승을 잡아 제사드릴 필요가 없으며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를 용서받아 구원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둘째로, 아브라함의 복을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4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허락한 복이 선민 이스라엘뿐 아니라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믿음으로 의롭게 된 모든 사람에게 미치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하나님의 벗이라는 영혼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녀, 건강, 장수, 물질 등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복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22장 17~18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크게 축복받은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 하셨을 때도 믿음으로 순종하였습니다. 또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창 22:2) 하셨을 때도 어떤 이유나 핑계를 대지 않고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 믿었기 때문입니다(히 11:19). 아브라함은 확고한 믿음을 가졌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축복을 받아 믿음의 조상이요, 복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하나님 자녀들은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소유할 수 있고, 모든 복을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셋째로, 믿음으로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4절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했습니다. 이는 나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마다 율법의 저주에서 풀려나 믿음으로 성령의 약속을 받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고 그 증표로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요 1:12 ; 롬 8:16). 성령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고, 그 이름이 하늘나라 생명책에 기록되어 하늘나라 시민권을 가진 천국 백성이 됩니다(롬 8:15 ; 눅 10:20 ; 빌 3:20). 하나님의 마음이며 능력인 성령께서 우리 마음 안에 계시면 하나님 말씀을 깨닫고 진리 안에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위로부터 믿음을 주어 영생에 이를 수 있도록 도와주시지요.
그런데 로마서 10장 9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을 구세주로 시인할 뿐 아니라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것을 마음에 믿어야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수 마귀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시험 환난과 온갖 고통을 당하며 마침내는 지옥에 떨어져 세세토록 형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받음으로 구원과 영생, 부활의 영광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겪으신 고통
예수님 당시 죄인들의 처형법은 칼로 죽이거나, 사자굴에 던지거나, 십자가에 매달거나, 시체와 함께 묶어 매장하는 등 잔인하고 끔찍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십자가의 처형이 가장 가혹한 처형법이었지요. 그러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어떠한 고통을 받으셨을까요?
십자가의 처형법은 큰 나무로 만든 십자가에 사람을 묶어 놓고 양손과 양발에 큰 못을 박아 수 시간 매달아 죽게 하는 방법입니다. 참수형을 당한다면 죽음의 고통이 순간에 끝나지만 십자가 처형은 죽을 때까지 십자가에 매달려 피와 물을 쏟아야 하기 때문에 갈증과 탈진으로 인한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체중으로 인해 못 박힌 양손과 양발이 찢기는 심한 고통을 겪으셔야 했지요.
또한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시고 온몸은 채찍에 맞아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나무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께서는 뜨거운 햇볕 아래 여러 시간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어디선가 피 냄새를 맡고 몰려온 벌레들은 상처 난 부위를 물어뜯었지요. 그뿐 아니라 악한 자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향해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모욕하며 저주하였지요(마 27:39~43).
이같이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은 참으로 인간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엄청난 고통이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정작 고통스러워한 것은 육체의 괴로움이나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가 아니었습니다. 인류의 저주를 한 몸에 담당했건만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영혼들, 마음이 완악하여 믿지 않으므로 여전히 사망의 길로 가게 될 불쌍한 영혼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의 고난을 기억하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의 죄를 속량해 주신 주님의 은혜에 어찌하면 보답할까 하는 심정으로 날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입니다. ( ) 안을 채워 보세요.
① 율법의 ( )에서 ( )하기 위해서이다.
② ( )의 복을 ( )에게 미치게 하기 위해서이다.
③ 믿음으로 ( )의 약속을 받게 하기 위해서이다.
2. 모든 육체에는 피가 있어야 생명이 유지되기 때문에 피는 생명과 일체라 말씀합니다. 관련된 성구가 아닌 것을 고르시오.
① 레위기 17:11 ② 히브리서 9:22 ③ 레위기 17:14 ④ 요한복음 1:1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예수'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란 뜻이다.
'그리스도'란? 메시아라는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번역한 것으로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뜻이다. 즉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화목자이고 중보자인 구세주의 직임을 가리킨다. 따라서 예수는 구원할 자라는 미래형의 표현이고, 그리스도는 구원자로서 완성형의 표현이다.
2011-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