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참 자녀를 얻기 위해 베푸신 섭리 가운데 가장 중요한 대목은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인류 구원의 섭리를 완성하신 순간입니다. 천지 만물의 창조 이후로 가장 감동적이며, 하나님의 한량없는 사랑이 극적으로 나타난 사건이지요. 우리가 십자가의 섭리를 알고 마음 중심으로 믿을 때 가난이나 질병, 그 외 어떤 문제도 해결 받고 영원한 천국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로마 군병이 예수님의 다리를 꺾지 않은 이유와 창으로 찔린 예수님의 옆구리에서 물과 피를 쏟으신 섭리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의 다리를 꺾지 않은 이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운명하신 날은 안식일 바로 전날인 금요일이었습니다. 다음 날 토요일은 유대인들이 크게 여기는 거룩한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그대로 방치해 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빌라도 총독을 찾아가 십자가에 처형한 사람들의 다리를 꺾어 시체를 치워 달라고 하지요. 총독의 허락이 떨어지자 로마 병사는 확실히 죽었는지 확인코자 먼저 강도들의 다리를 꺾어 처리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운명하신 것을 확인하고는 다리를 꺾지 않았지요. 여기에는 하나님의 크신 섭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전혀 죄가 없는 분입니다. 그런데 모든 인류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기 위해 대신 저주를 받아 나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린 것이지 결코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닙니다. 그래서 그 몸의 뼈까지는 꺾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시편 34편 20절에 보면 "그 모든 뼈를 보호하심이여 그중에 하나도 꺾이지 아니하도다" 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뼈가 꺾이지 않도록 보호해 주셨습니다.
또 민수기 9장 12절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린 양을 먹되 그 뼈를 하나도 꺾지 말라고 하셨지요(출 12:46). 여기서 어린 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합니다. 자신을 화목제물로 내주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을 비유하였지요. 그래서 '어린 양의 뼈를 꺾지 말라' 하신 대로 예수님의 뼈는 꺾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2. 창으로 옆구리를 찔리신 예수님
요한복음 19장 33~34절을 보면 "예수께 이르러는 이미 죽은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아니하고 그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말씀합니다. 로마 병사가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했음에도 창으로 옆구리를 찔러 피와 물을 쏟게 한 것은 사람의 악함을 단적으로 증명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과 본체이나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습니다.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죽음으로써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지요(빌 2:6~8). 이 땅에서 사역하시는 동안에도 기사와 표적을 베풀며 포로 된 사람에게 자유를 주고, 가난한 사람을 부요케 하며 병든 사람, 약한 사람들을 치료해 주셨지요.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시고자 제대로 드시지도, 주무시지도 못한 채 복음을 전하셨고, 틈만 나면 산에 올라 기도하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영혼들을 위해 선만 행하셨는데도 유대인들에게 갖은 핍박과 멸시 천대를 받고 끝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더구나 십자가에 달려 죽은 줄 번연히 알면서도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으니 사람이 얼마나 잔인하고 악한지를 여실히 말해 주고 있지요.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이 같은 사람들의 악함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속하게 하셨으니 이 얼마나 큰 사랑인지요. 그래서 로마서 5장 8절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3. 예수님께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신 섭리
창으로 옆구리를 찔린 예수님의 몸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는데. 그 의미는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오신 증거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을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말씀입니다. 죄인은 하나님을 보면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죄인 된 사람들에게 직접 나타나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증거를 나타낸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이 우리와 같은 성정을 지녔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3장 20절에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하였고, 마태복음 8장 24절에는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물결이 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는 주무시는지라" 하였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 어찌 배고픔과 고통을 느끼겠느냐고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이 뼈와 살이 있는 육체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때문에 때가 되면 드시고 주무시며 아픔을 느끼셨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을 확증해 주시기 위해 피와 물을 쏟으신 것입니다.
둘째, 육신을 가진 사람도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신의 성품에 참예할 수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고 온전한 분이므로 자녀들 역시 거룩하고 온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벧전 1:16).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하셨지요.
또 베드로후서 1장 4절에 보면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신의 성품에 참예한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거룩하고 온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마음의 죄악을 버리고 거룩하고 온전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육신을 입으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에 죽기까지 온전히 순종하심으로 모든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사람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시험도 묵묵히 담당하시며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셨지요.
이처럼 사람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께서 친히 본을 보여 주셨기 때문에 우리 또한 모든 죄악을 벗고 거룩한 행실과 마음을 가져 신의 성품에 참예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라 연약하여 할 수가 없습니다."라고 핑계 대거나 변명할 수가 없지요.
셋째, 참 생명과 영생으로 인도하는 능력의 피와 물이라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은 원죄와 자범죄가 없기 때문에 흘리신 피와 물은 흠과 티가 없는 보배로운 것입니다. 이는 영적으로 볼 때 부활할 수 있는 능력의 피와 물이지요. 예수님은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으셨지만 우리의 물과 피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이처럼 흠도 점도 없는 예수님께서 거룩한 피를 흘리셨기 때문에 우리가 죄를 용서받고 참 생명을 얻어 부활할 수 있으며 영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흘리신 물은 영생수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즉 우리가 말씀을 듣고 깨우쳐 그대로 행하는 만큼 죄악을 벗고 진리로 채워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될 수 있지요.
따라서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피와 물을 쏟으셨다는 것은 우리가 죄를 용서받고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능력을 받아 참 생명을 얻었음을 뜻합니다.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로 값없이 생명을 얻었습니다. 그 받은바 은혜에 보답해 드리기 위해서는 철저히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온 집에 충성해야 하지요. 여러분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과, 독생자 예수님을 아낌없이 십자가에 내어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결단코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다리가 꺾이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예수님께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신 섭리에 대해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오신 증거이다.
② 우리도 주님을 닮아 신의 성품에 참예할 수 있다는 증거이다.
③ 참 생명과 영생으로 인도하는 능력의 피와 물이라는 증거이다.
④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으셨기에 능력의 피와 물이 될 수 없다.
3.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물과 피를 다 쏟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것을 얼마나 마음에 믿고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나요?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란?
라틴어로 '슬픔의 길'이라는 뜻으로서 빌라도 법정에서 골고다 언덕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수난의 길을 말한다. 예수님께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신 곳으로부터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향해 걸으시던 약 800m 되는 길이다.
2011-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