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사람들은 꿈이 있지만 쉽게 이루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공식을 활용하여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신명기 28장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며 모든 복이 임하게 해 주실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며 그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모든 저주가 임할 것'도 알려 주셨지요.
또한 사람의 말이나 마음, 또는 행함에 따라 어떻게 응답이 되고 보응을 받는가도 잘 나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미워하던 대제사장들과 유대 백성들은 예수님을 빌라도 총독 앞에 데리고 와서 십자가에 못박을 것을 요구하며 "예수의 피를 그들과 그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고백하였습니다. 결국 예루살렘은 로마 군대에 의해 함락되고 약 110만 명이나 되는 유대인들이 무자비하게 학살당했으며 그 후로 나라없이 세계를 떠돌아다니다가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또다시 6백만 명이나 학살을 당하는 참혹한 비극을 겪었지요.
이처럼 자기 보기에는 깨끗하여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악을 행하면 축복이 임하기는커녕 저주가 임하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마음의 경영을 이루며 하나님의 축복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마음의 경영이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어야
잠언 16:1에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난다" 말씀하신 대로 마음의 경영 자체가 하나님과 일치되면 당연히 마음 먹은 대로 응답이 오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임의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아서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공식에 사람의 뜻을 대입해서 풀어나가면 만사형통의 길로 나가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사람이 마음의 경영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을까요?
1) 세상 사람들도 악으로 여기는 육에 속한 악을 버려야 합니다
이것은 미움, 시기, 질투, 간음, 살인 등의 육체의 행위로 나타난 바 되는 것들을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5:19 이하를 보면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말씀하시며 이와 같은 육체의 일을 행한 사람은 천국에 들어가지도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니 어찌 응답을 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세상 사람도 당연히 행하지 말아야 될 악이니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더더구나 행해서는 아니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악으로 여기시는 것을 버려야 합니다
이는 마음에는 담고 있으되 행위로는 보이지 않는 '육신의 일'을 말합니다. 미움이나 간음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해도 행위로는 나타내지 않을 수 있으며 미워하면서도 미워하지 않는 척,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사랑하는 척 할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러한 '육신의 일'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악하다 말하지 않으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악하다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마음에 여자나 남자를 보고 음욕을 품어도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요, 하나님께서는 육체의 일은 물론 육신의 일도 버리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하겠습니다.
3) 하나님의 뜻과 일치되지 않는 자신의 의를 버려야 합니다
육체의 일, 육신의 일까지 벗어 버리고 영으로 들어와서 스스로 의인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도 버려야 할 것이 있는데 바로 '자기적인 의'입니다. 결국 이 세 가지 단계를 다 거쳐야만 비로소 온전한 영의 사람으로 변화될 수가 있으며 그래야만 성경에 약속된 축복들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파송한 무리에게 잡히시던 날 밤, 베드로는 갖고 있던 칼을 들어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쳐서 떨어뜨렸습니다. 이는 사랑하는 스승을 지키려는 마음으로 한 의로운 행동인 것 같지만 하나님 편에서 보면 옳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진리에 맞는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성령의 역사를 좇아 순복한 것이 아니라면 온전한 진리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0장을 보면 욥바에 있던 베드로가 기도하려고 지붕 위에 올라가 환상을 본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하늘에서 큰 보자기 같은 것이 내려왔는데 그 속에는 땅에 있는 각색 네 발 가진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베드로야, 일어나 잡아 먹으라"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에 베드로는 "주여,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하며 먹기를 거절하지요.
모세의 율법에 의하면 보자기에 들어 있는 것들은 가증스런 동물들로서 먹지 못하도록 금지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히 주님의 음성인 줄 알면서도 자기적인 의 속에서 불순종한 것이니 하나님의 뜻과는 맞지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깨끗케 한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말씀하시며 이방인에게는 복음을 전할 수 없다고 여겼던 베드로의 고정관념을 깨뜨려 주셨습니다.
2. 자기가 옳다 여기는 자신의 의를 깨뜨려야
1) 진리를 지킨다고 지키지만 자기 생각에 맞춰 지키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해나가며 자기 보기에 자신이 깨끗하다 여기는 분들에게 이런 경우가 많이 있지요.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말씀하셨기에 이에 순종하여 반드시 안식일을 지켜야겠다는 마음을 가집니다. 그래서 열이면 아홉 번은 그대로 지키는데, 한 번 정도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에 자기 편에 맞추어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선한 일이니 이 일을 돌본 후, 다음에 교회에 나가리라" 하며 안식일을 어기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자기 생각이 선하다 여기기에 잘못이라 느끼지 아니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옳다 하지 않으시고 타협하는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기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어느 곳에 있든지 불같이 기도할 수 있으니 혼자서 기도해도 된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모여서 하는 기도회 모임이 있을 때에는 믿음의 한 가족을 이루기 위해 화합해 주는 것이 옳은 것이지요. 나 홀로 있으면서 마음을 모두어 기도하리라는 마음을 먹었다면 이것은 벌써 하나를 이루지 못하는 마음이요, 자신을 굽혀서 하나를 만드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2) 자기 생각으로 잘못된 분야를 감추는 사람
잘못된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집안의 화평을 위해 혹은 사람 사이의 화평을 위해 감추려 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기둥이 썩어가는 것은 생각지도 않고 실상이 드러날까 염려하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일입니다.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제사장의 아들로서 하나님께 드릴 고기 중에서 좋은 부분은 먼저 취하기도 하고 성전의 회막문에서 수종 드는 여인과 동침하는 등 여호와를 심히 멸시하는 큰 죄를 범하였습니다. 그런데 엘리 제사장은 이를 엄히 꾸짖어 돌이키게 하지 않음으로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하나님보다 아들들을 더 중히 여겼다고 말씀하시며 대대로 그 집에 저주가 임할 것을 말씀하시지요. 모든 것을 온전케 하기 위해서는 감추어 두는 것이 아니라 징계해야 할 곳에는 징계를 가할 때 치료가 되고 다시 범죄치 아니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상대가 악으로 나오는 것을 보고 마음에 눌러 참는 사람
상대가 내 교양이나 생각, 내 마음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할 때 다툼과 불화를 피하기 위해 억지로 마음에 눌러 참는 형의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하나님께서는 의롭다 하시지 않습니다. 참고 참으니 그것이 쌓이고 쌓여 악이 되고 미움으로 굳혀지게 되지요. 겉으로 표현하지 않을 뿐 상대의 가치를 인정하려 하지 않으며 영원한 미움으로 쌓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상대가 악으로 나올 때 화를 내거나 마음 속에 쌓아 두고 감정을 갖는 것이 아니라 기도와 금식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힘입어 용서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의 선진들을 연단하셨던 이유도 바로 자기 보기에 깨끗한 것들을 올바로 정립시켜 주시기 위함이었지요.
갈라디아서 5장 22-23을 보면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말씀했는데 바로 이런 것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깨끗한 것들입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원수를 갚는 것이 의지만 하나님께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것이 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의는 섬기는 자가 큰 자라고 하시는데 사람의 의는 높임을 받는 자가 큰 자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식사하시는 모습을 보고 자기적인 의가 강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저 사람이 죄인들과 식사하니 저 사람도 죄인이다"라고 정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로 비추어 보면 "죄인들을 옳은 데로 인도하시는 저 분은 좋은 일을 하시는 분이다"라고 생각해야 마땅한 것이지요.
이처럼 자기 보기에 깨끗하여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깨끗하지 않은 것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아 세상 사람들이 악이라고 여기는 것은 물론,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것, 자신의 의를 모두 벗어 버림으로 하나님의 인정과 사랑을 받으며 모든 마음의 경영을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5-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