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3과 가시 면류관을 쓰고 손과 발에 못 박히신 예수님

읽을말씀 : 마태복음 27:29~30
외울말씀 : 고린도후서 10:5
참고말씀 : 마가복음 9:45~47

왕관은 왕의 위엄과 고귀한 신분을 표시해 줍니다. 꼭 왕관이 아니더라도 군대에서는 장성들이 위엄과 권위를 표시하는 모자를 쓰고, 학교에서는 학위를 받을 때 학위모를 씁니다. 이처럼 사람의 신체 가장 윗부분인 머리에 관을 씌우는 일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길고 단단한 가시로 엮은 면류관을 머리에 쓰시고 손과 발에 못 박히셨습니다.
   
   
   1. 예수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신 이유
   
   마태복음 27장을 보면 빌라도 총독은 예수님께서 죄가 없는 줄 번연히 알면서도 민란이 일어날까 두려워 십자가의 처형을 선고하고 맙니다. 이에 로마 군병들은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힌 후 억센 가시 줄기를 얼기설기 엮어 머리보다 작게 만들어서 예수님 머리에 눌러 씌우지요. 이때 날카로운 가시가 살을 파고드니 예수님의 얼굴은 온통 피로 낭자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이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고 고통당하며 피를 흘리도록 허락하신 것일까요?
   
   첫째로, 사람의 생각에서 오는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과 교통하며 그 음성을 들어 나갈 때에는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생각하고 순종하여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뱀의 유혹을 받아 사단이 주는 생각을 받아들이자 곧 죄를 낳게 되었지요. 전에는 감히 엄두도 못 내던 선악과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워 보였고 결국은 하나님 말씀에 거역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원수 마귀 사단은 지금도 사람의 생각을 통해 죄를 짓게 만듭니다. 사람의 머리에는 기억 장치가 있어서 태어나면서부터 보고 듣고 배운 것을 느낌과 함께 입력하는데, 이것을 '지식’이라고 합니다. 이 지식을 혼의 작용을 통해 되살려 내는 것이 바로 '생각’입니다.
   그런데 사람마다 성장한 환경과 보고 듣고 배운 것이 달라 입력된 지식도 같지 않습니다. 똑같이 배웠어도 각자가 어떤 느낌과 함께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가치관도 달라집니다. 이러한 사람의 지식과 생각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뜻과 위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상에서는 자신이 높아지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남을 누르고 일어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낮추는 자를 높여 준다고 하셨지요(마 23:12). 또한 사람들은 원수를 미워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 하십니다. 이때 하나님께 속한 진리의 생각을 영적인 생각이라 하고, 반대되는 비진리의 생각을 육적인 생각이라고 합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사람의 육적인 생각을 주관하여 하나님의 일을 훼방하고 믿음을 갖지 못하게 합니다. 세상과 짝하며 죄를 짓도록 유혹하지요. 따라서 사람의 모든 이론을 깨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해야 진리를 좇아 믿음의 사람, 영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고후 10:5).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세상의 비진리 생각에서 비롯되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버려야 합니다(요일 2:16).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육적인 생각으로 인해 빚어지는 모든 불의, 불법, 죄악을 대속하시려고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피 흘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만이 사람의 죄를 대속할 수 있기 때문에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고 피를 흘림으로써 우리가 생각으로 짓는 모든 죄를 대속해 주신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에게 좋은 면류관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천국에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예비된 면류관이 많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도 경기에 출전하면 참가자 전원에게 주는 참가상이 있고 금, 은, 동메달 등 순위에 따라 주는 상들이 있지요. 이처럼 천국에서 받는 면류관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먼저, 고린도전서 9장 25절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하신 대로 '썩지 아니할 면류관’이 있습니다. 이는 경기에 참가한 모든 선수에게 참가상을 주듯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를 싸워 버리려고 노력한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는 상입니다.
   또 죄를 버리고 말씀대로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린 사람에게 주는 영광의 면류관이 있고(벧전 5:4),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여 죽도록 충성하며 모든 악을 버리고 성결한 사람에게 주는 생명의 면류관이 있습니다(약 1:12 ; 계 2:10).
   그런가 하면 사도 바울처럼 성결하여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명을 잘 감당한 성도들은 의의 면류관을 받습니다(딤후 4:8). 또한 금 면류관이 있는데(계 4:4), 이는 성결하고 온 집에 충성하는 믿음, 영원히 변치 않는 금과 같은 믿음을 소유한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천국에 수많은 면류관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 동안 얼마큼 죄를 싸워 버리며 사명을 잘 감당해 하나님께 영광 돌렸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면류관을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피 흘려 주신 사랑을 믿기에 정욕을 위해 육신의 일을 꾀하지 않고 단정히 행하며(롬 13:13~14),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함으로 영혼이 잘되고(갈 5:16),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잘 감당하는 만큼 천국에서 큰 자가 되어 좋은 면류관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면류관을 받으려면 합당한 자격을 갖추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 성결되고, 온 집에 충성하면 가장 좋은 면류관을 받게 됩니다.
   
   
   2. 예수님께서 양손과 양발에 못 박히신 이유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 처형장에 이르렀을 때의 일입니다. 로마 군병 한 사람이 쇠로 된 정을 쥐고 또 다른 군병은 망치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백부장의 구령에 맞추어 예수님의 양손과 양발에 못을 박았습니다. 아무 죄 없으신 예수님은 나무 십자가에 달리기 위해 쇠못이 양손과 양발의 생살을 뚫고 들어오는 고통을 당하셔야만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손과 발에 못 박히신 이유는 우리가 손과 발로 지은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생각을 통해 마음에 죄악을 심으면 손과 발을 움직여 죄를 범하므로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영계의 법칙에 따라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고통을 받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하셨습니다(막 9:45~47).
   
   오늘날 사람들이 손과 발로 짓는 죄가 얼마나 많습니까? 혈기가 나면 폭력을 행하며, 도적질과 도박으로 패가망신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심지어 이유 없이 살인하고 총을 난사하며 방화를 일삼는 등 상상할 수 없는 죄악을 행하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합니다. 이렇게 손과 발로 죄를 짓고 지옥에 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잘라 버리고 죄를 짓지 않음으로 천국에 가는 편이 낫습니다.
   또한 눈으로 좋은 것을 보면 탐심이 일어나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봄으로 간음도 합니다. 그러니 죄를 짓고 지옥에 가는 것보다 차라리 눈을 빼 버리고 죄를 짓지 않음으로 천국에 가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엄히 죄를 경계하신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아무 죄 없이 나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채찍에 맞으시고 가시 면류관을 쓰시며 양손과 양발에 못 박혀 십자가 처형을 당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며 다시는 범죄하는 일이 없도록 오직 진리로 마음을 지키며 늘 승리하는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수님이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① 사람의 ( )에서 오는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이다.
   ② 우리에게 좋은 ( )을 주시기 위해서이다.
   
   2. 예수님께서 손과 발에 못 박히신 섭리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상)> 책자 104~111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육신의 정욕’이란?
   육신을 좇아 죄를 범하고자 하는 속성이다. 사람의 마음에 미움, 교만, 혈기, 게으름, 간음 등 죄의 속성이 있는데, 이것이 유발될 수 있는 어떤 환경을 만나면 육신의 정욕이 나온다.
   
   '안목의 정욕’이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을 통해 마음이 동요되고 육의 것들을 추구하게 만드는 속성이다. 안목의 정욕을 차단하지 않고 계속 받아들이면 육신의 정욕을 유발하고 결국 죄를 짓게 된다.
   
   '이생의 자랑’이란?
   현실의 모든 향락을 좇아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자랑하려는 속성을 말한다.

2025-01-17